정부가 지난 17~19일 발생한 행정전산망 먹통 원인을 ‘장비 불량’으로 결론 냈다.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테스크포스(TF)’는 25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원인은 라우터 장비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모듈에 있는 포트 중 일부가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네트워크 장비가 망가져 행정망이 마비됐고, 일각에서 제기됐던 해킹이나 프로그램 결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게 진짜 이유라면, 행정망이 장비 하나로 먹통이 됐다는 소리인데 어이가 없다.
행정안전부 TF는 당초 인증 네트워크 장비인 ‘L4 스위치’를 문제 삼았다가 뒤늦게 라우터 장비 쪽에서 이상을 일으켰다고 수정했다. 정부나 전문가들도 네트워크 장비 문제로 데이터를 제대로 전송하지 못해 민원 발급시스템이 멈췄다면서도, 지금껏 근본적 장애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나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사이 정부 행정망 장애만 네 차례 발생했다. 추가 장애 때마다 ‘과부하’가 원인일 뿐이란 해명이 전부였다. 이래서야 고장난 장비를 교체해도 언제 어디서든 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표방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국가 전산망 마비에는 내내 속수무책이었다. 정보망 집적으로 빚어질 수 있는 대형 사고 가능성엔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이다.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25일 브리핑에 또 빠졌다. 그날 부산에서 디지털플랫폼 혁신 사례를 알리는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에 참석하느라 불참했다고 한다. 민원시스템이 통째로 멈춰선 정부의 주무장관이 대통령 따라 순방 갔다 오고 낯 두껍게 디지털 정부를 홍보할 때인가. 행정망 마비로 발을 동동 구르고 일상의 혼란을 겪은 국민 입장에선 무책임한 언행일 뿐이다. 이태원 참사와 숱한 재난 때마다 사고원인 규명과 현장 지휘에 소홀했던 이 장관의 흑역사가 또 하나 더해졌다.
불안이 가시지 않은 행정망 마비 사태는 정부의 총체적 관리 부실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오래된 장비들을 모두 점검하고 재발 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나 장비 납품 업체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내면 이런 사고는 또 반복될 것이다. 원인을 철저히 밝히고 책임을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한다. 정부가 행정망 마비를 ‘재난’에 포함시켰다. 그에 상응해 전문적인 대응이 가능할 수준의 인력·예산 투자도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