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유산 등재는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이 모두 동의해야 표결 없이 이뤄지는데, 한국 정부가 찬성했기에 가능했다. 이 와중에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8일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가해자인 일본은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인 한국이 전쟁범죄의 흑역사를 묵인해줬다는 건 충격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역사가 두렵지 않은가.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겐 참혹한 노역장이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1500명이 넘는 조선인이 이곳에서 전쟁 물자를 캐느라 피눈물을 흘리고, 목숨까지 잃었다. 이런 곳이 인류가 기념할 세계유산이 된다는 건 온당치 않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전시물 설치와 노동자 추도식 매년 개최 등을 약속해 등재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 (군함도를 세계유산에 등재할 당시) 이미 정리됐다. 이번에 일본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 전시시설에서 노동환경의 가혹함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고, 이를 한국이 수용했다는 요미우리신문 보도는 뭔가.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표현이 빠지는 걸 눈감아주기로 해놓고선 딴소리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전시물이 설치되는 곳은 세계유산 등재 지역에서 2㎞가량 떨어진 소규모 향토박물관이라고 한다. 조선인 강제노동을 알린다는 게 구색일 뿐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일본은 군함도 등재 당시 강제노역을 인정하고 조선인 피해자를 기리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 유네스코가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전체 역사를 제대로 반영하라”고 촉구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 등재에 앞서 강제노역장임을 알리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요구해 확답받고, 불응하면 반대했어야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이제 와서 “일본이 후속조치 이행에 있어 진정성을 보여달라”고 말하는 건 앞뒤가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등으로 일본의 과거사 책임에 면죄부를 줬다. 일본군 위안부, 독도 등을 둘러싼 망언이 거듭돼도 ‘성의 있는 조치’만 되뇌고 있다. 그러니 일본은 점점 안하무인이다. 일본이 퇴행적 역사 인식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미래세대에 부담만 줄 이런 식의 관계 개선은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