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일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에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안 내정자는 인권 감수성이 문제된 발언도 적잖고, 그간 인권위가 권고해 온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도 앞장섰다. 최후의 인권 보루인 인권위 수장엔 부적합한 인물이다. 그렇잖아도, 김용원·이충상 두 상임위원의 반인권적 언행으로 ‘개점휴업’ 중인 인권위는 나라 밖에서까지 우려·비판 대상이 됐다. 윤 대통령은 인권위를 망가뜨리는 두 상임위원만으로 모자라, 인권위 취지에 반하는 위원장을 앉히려는 건가.
안 내정자의 부적격 사유는 차고 넘친다. 그는 헌법재판관 시절 간통죄 폐지를 반대했고,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역 반대 의견을 냈다. 사형제 존치 뜻을 밝히기도 했다. 퇴임 뒤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섰다. 지난 6월 출간한 <왜 대한민국 헌법인가>에선 “차별금지법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모두 인권위 출범 후 지속적으로 해온 인권 개선 방향과 배치된다. 안 내정자는 과거 강연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건국을 부인하는 뉴라이트 사관으로 의심받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야말로 인권위원장으로 가당치 않다.
윤석열 정부 들어 반인권적 인사들이 장악한 인권위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김용원·이충상 두 위원이 전원회의 보이콧 등으로 인권위 활동을 무력화시킨 결과다. 법이 정한 독립기구로서의 위상뿐 아니라 존재 이유에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위였다. 오죽하면 새 인권위원장 지명을 앞두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윤 대통령에게 “인권위 독립성을 잘 지켜나갈 인사를 선택해달라”는 취지의 특별 서한을 보냈겠는가. 인권위가 어쩌다 이런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반인권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는 인권단체들의 우려에도, 안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유감스럽다.
인권위는 인권 침해와 차별을 바로잡는 데 소금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위 숙원 사업이다. 이 법을 반대하는 안 내정자가 이끌 인권위에 이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야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의 인권감수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부적격 사유가 드러나면 적임자를 다시 찾는 것이 옳다. 어떤 논란을 불러올지 뻔히 알면서도 부적격자 임명을 강행하는 건 인사권 남용이고, 인권 진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