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대란’ 우려 속에 추석 명절을 맞이하게 됐다. “추석엔 아프지 마세요”라는 인사가 오갈 정도로 국민적 불안감은 커지는데 의·정 협의는 한 걸음도 못 나아가고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이러다 정말 국민들이 죽어나가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것인가.
정부는 14~18일 추석 연휴 동안 하루 평균 병원 7931곳이 문을 연다고 밝혔다. 연휴에 병의원이나 약국을 이용할 땐 ‘토요일·야간·공휴일 진료비 가산제도’가 적용돼 평소보다 본인 부담 비용을 더 내야 한다. 특히 응급상황으로 마취·처치·수술시엔 진료비에 50%의 가산금이 붙는다. 연휴 기간 응급실을 찾는 경증 환자를 분산시키려는 취지지만, 민심은 제때 병원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보니 많은 시민들이 응급 상황 발생을 막기 위해 약을 준비하거나 만남과 활동계획을 줄이는 ‘고육책’을 찾고 있다. 소아응급의학과 전문의 출신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목에 가시가 박힐 수 있으니 생선전을 멀리하고 교통사고와 벌 쏘임을 막기 위해 장거리 운전과 벌초도 자제하라고 권했다. 응급실 인프라가 무너져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석엔 아프지 마세요”라는 인사말이 오가는 세상이 어이 없을 뿐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전공의 이탈 후 7개월째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 책임이 가장 크다. 사회적 협의나 치밀한 준비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증원 숫자를 발표한 후폭풍이다. 그러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의료대란은) 전공의에게 첫 번째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또 ‘국민이 죽어나간다’ 지적에는 “가짜 뉴스다. 어디에 죽어나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일 교내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조선대 학생이 100m 앞 응급실을 가지못해 13일 결국 사망했고, 지난 2일 세종충남대병원 성인 야간응급실 중단으로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한 70대 응급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의식을 찾지 못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가장 큰 책무인 국무총리가 이런 황급한 사건들은 보고받지 않는 것인가. 국민들의 커지는 불안과 고통을 자성하기는커녕 총리가 고압적으로 책임전가에 급급하고 있으니 후안무치가 따로 없다.
의료대란은 최대의 민생 현안이다. 하지만 지금 여당에서조차 “정부가 추석 응급실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환자 생명을 지켜야 할 의료인들이 ‘의대정원 원점 재검토’만 외치는 것도 무책임하다. 벼랑끝 의·정 대치가 길어지면서 여·야·의·정 협의체의 추석 전 출범은 사실상 불발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리더십이 시급하고, 정부와 의료계는 전제조건 없이 협의체에 참가해 논의 물꼬를 만들어야 한다. 생명을 볼모로 벌이는 이 치킨게임을 보는 국민 분노도 일촉즉발 직전임을 무겁게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