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3일 관영매체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우라늄 농축시설 시찰 장면을 공개했다. 무기급 우라늄 농축시설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은 미국 핵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의 2010년 영변 방문을 통해 알려졌지만, 북한이 직접 밝힌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이곳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고 만족해 하며 “전술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 주력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18일엔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주변국을 긴장시켰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로 가득 찬 방에서 참모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시설의 위치를 밝히진 않았는데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요인 중 하나인 강선 핵단지일 가능성이 있다. 고농축 우라늄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는 플루토늄과 더불어 핵무기에 필요한 핵분열 물질이다. 플루토늄과 달리 소규모 시설에서 만들 수 있어 외부 감시를 피하는 데 유리하다. 지난 30년간 북핵 협상의 주요 고비마다 그 뒤에는 우라늄 농축 문제가 있었다.
북한이 이 시설을 공개한 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핵무장국이 됐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시점을 택한 것은 11월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듯하다. 제재를 뚫고 핵무기 양산 체제에 돌입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부각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북한은 핵탄두 50개를 가졌고 40개를 더 만들 수 있는 핵분열 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이 방치하는 동안 그 개수가 계속 늘고 있다. 결국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차기 미 행정부를 향해 자신들이 정하는 조건에 따른 대북 접근을 강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냉정하게 본다면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현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을 합법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지금까지 해온 한·미 확장억제 강화, 대북제재 방식만으로는 북한의 핵무력 증대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한·미가 확장억제 협력을 이어가면서도 악화되는 상황을 전환시킬 대북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결국 군사·외교적 강압 요소에 더해 대화라는 수단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오직 비핵화 협상을 고수하며 북한과의 모든 대화에 반대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경직된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