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정부가 2026~2030년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이 2026년 부담할 주한미군 방위비는 전년 대비 8.3% 늘어난 1조5192억원이다. 그 뒤로는 매년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에 연동해 늘어난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액은 1991년 1073억원에서 시작해 매년 커지다 처음으로 1조5000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정부는 “한·미가 상호 수용가능한 합리적 결과를 도출했다”고 자평했다. 미국 대선 등 불확실성에 대비해 “신속한 타결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을 마련”했고, 국방비 증가에 연동한 기존 협정과 비교해 분담액 증가율을 낮췄다는 것이다.
정부 설명대로 몇 가지 소소한 제도 개선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이전 것이 워낙 나빠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을 정말 개선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한국이 국방비를 늘리면 미국 무기 수입도 늘어나고 한국군 전력도 증강되는데 왜 주한미군에 주는 돈도 그만큼 더 늘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도적인 증액 요구에 대응하면서 만들어진 허술한 논리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물가지수 연동은 기껏해야 트럼프 이전 방식으로 돌아간 것일 뿐이다.
문제는 분담금이 무엇에 얼마나 필요한지 최소한의 명세도 없이 총액 단위로 지급하도록 한 방식에 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는 한국이 주한미군 기지를 제공하고, 미군 주둔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게 돼 있다. 하지만 1991년 예외를 두기로 하고 ‘한국인 근로자 고용을 비롯한 다른 경비’를 한국이 부담토록 한 게 방위비 분담의 시작이다. 처음엔 액수가 적었으나 분담금 협정을 개정할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2019년 1조원을 돌파했고, 7년 만에 다시 1조5000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이 돈은 미군부대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등에 쓰도록 돼 있지만 미군이 구체적으로 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 얼마나 많은 돈이 불용액으로 남아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끝난 뒤로 대규모 군사건설비가 필요하지도 않다. 국가는 물론이고 개인도 실제 쓴 비용, 앞으로 쓸 비용을 꼼꼼히 따져본 뒤 예산을 짠다. 아무리 안보를 의존하는 동맹국이라지만, 덮어놓고 매년 분담금 액수가 증가하도록 설계된 이 방식은 더이상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이 매년 더 많은 돈을 내도록 한 ‘총액형’에서 실제 쓰일 비용만큼 내는 ‘소요형’으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다. 미·일은 주일미군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고 있다. 정부도 이번에 소요형으로 바꾸는 방안을 제기했지만, 미국이 반대해 관철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얼마나 제도 개선 의지를 보였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분담금 협상이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난 뒤인 지난 7월에야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바꾸는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국회는 협정 비준에 앞서 현행 방식이 합리적인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