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고시 낭인(浪人)

2007.08.03 17:31

세월이 어지러울수록 공무원들에 대한 선호도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신분이 보장되는 데다 각종 사업에 대한 인허가권을 거머쥐고 있으니 업무상으로 남에게 굽실거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쥐꼬리’에 비교되던 봉급 수준도 지난날에 비해 상당히 현실화됐으며 퇴직 후에도 산하기관에 자리가 적지 않다는 이점까지 두루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생들의 취업희망 분야나 예비 신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배우자 직업 선호도 등의 조사결과도 대체로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여적]고시 낭인(浪人)

우리 사회에서 관직을 존귀히 여기는 풍토는 오랜 역사를 두고 형성되어 왔다. “감투를 쓴다”느니, “벼슬길에 올랐다”느니 하는 선망에 가득찬 표현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과거시험 합격자를 배출하게 되면 온 마을이 잔칫집 분위기로 들썩이며 더불어 자랑으로 여기곤 했다. 일반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는 자긍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양에서도 민주주의 사상이 뿌리내린 이래 공직자를 국민의 심부름꾼, 또는 대리인으로 여겼으면서도 공직에 대한 선망도와 존경심은 우리나 거의 마찬가지였다.

지난날 과거시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행정고시와 외무고시, 사법시험 등이다. 하지만 외무고시는 외교관 지망생만을 뽑으며, 사법시험은 판·검사를 충원하는 외에 변호사 자격을 준다는 점에서 행정고시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머리 좋고 애써 노력한 인재들이 합격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시대에 따라 고시의 우열이 갈렸던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사법시험 선발인원이 대폭 늘어나 변호사들의 사건수임 경쟁이 치열해짐으로써 요즘은 사법시험보다 행정고시로 지망생이 더 많이 쏠린다는 얘기도 그런 세태를 반영한다.

그러나 고시에 합격한다고 해서 모두 능력과 자질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과 공부는 젖혀놓고 고시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는 얘기도 진작부터 들려오던 터다. 이른바 ‘고시 낭인(浪人)’들이다. 중앙인사위원회가 행시에 합격하더라도 능력이 모자라다면 20~30%라도 임용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한다. 앞으로는 행시에 합격하고도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 채 관청 주변을 떠도는 낭인들의 모습까지 바라봐야 할 모양이다.

〈허영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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