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파부침주(破釜沈舟)

2010.06.20 17:52 입력 2010.06.20 23:04 수정
김태관 논설위원

허정무 감독이 23일의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파부침주’라는 고사성어로 임전 각오를 밝혀 화제다. 이 말은 <사기>의 항우본기에 나온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올 배를 가라앉혀’ 결사의 각오로 싸운다는 뜻이다. ‘배수의 진(背水陣)’과 비슷한 의미다.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항우는 초군(楚軍)을 이끌고 직접 출병한다. 항우본기의 기록이다. “강을 건넌 항우는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고, 막사를 불태운 후에 3일치의 식량만을 나눠줘 사졸들에게 필사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도록 했다.” 퇴로가 끊긴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돌진해 아홉번 싸워 모두 이기는 대승을 거둔다.

[여적]파부침주(破釜沈舟)

항우의 파부침주는 원래 <손자병법>의 구지(九地)편에 언급돼 있다. 용병법에는 9가지의 지형이 있다고 한다. 즉 산지(자기 땅에서 싸우는 경우), 경지(남의 땅으로 깊지 않은 곳), 쟁지(점령하면 서로 유리한 곳)와 교지(피아가 공격하기 좋은 곳), 구지(여러 나라가 접해 있어 점령하면 유리한 곳), 중지(重地·적의 땅에 깊이 있어 돌아오기 힘든 곳), 그리고 비지(행군하기 어려운 곳), 위지(들어가는 길이 좁은 곳), 사지(자칫하면 포위돼 죽는 곳)가 그것이다. 손자는 “적의 땅 깊숙한 곳(重地)에 들어가면 마치 쇠뇌를 쏘는 것처럼 곧장 치고 나아가라. 강을 건넌 뒤 타고 온 배를 태워버리고(焚舟), 식사를 마친 다음 가마솥을 깨뜨려서 오직 전진만 있을 뿐이라는 결의를 표하라”고 가르친다.

손자의 ‘분주파부’나 항우의 ‘파부침주’는 같은 말이다. 흔히 쓰는 말로 ‘배수진을 쳤다’는 뜻이다. 강을 등에 지고 스스로 퇴로를 끊는 ‘배수진’은 상식적인 병법에 어긋난다. 그러나 명장 한신(韓信)은 이 진법으로 승리해 두고두고 역사에 남는다. <사기>의 회음후열전에서 한신은 이렇게 설명한다. “죽을 곳에 빠져야 살려고 버둥거리는 법이오. 우리 군사들은 오합지졸이었소. 사지로 내몰지 않으면 다들 도망갔을 것 아니오.”

‘배수의 진’이 냉정한 판단이라면 ‘파부침주’는 격한 독전(督戰)이다. 솥을 깨는 따위는 불 같은 항우의 성격 그대로다. 둘 다 같은 뜻인데 굳이 격한 말을 쓴 허정무 감독의 속내는 무얼까. 공교롭게도 항우와 한때 그의 부하였던 한신은 역사의 명암이 다르다. 축구는 말이 아닌 발로 하는 것이니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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