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녹색평론 휴간

2021.11.14 20:31 입력 2021.11.14 22:12 수정

녹색평론 30돌 기념호

녹색평론 30돌 기념호

녹색평론을 처음 접한 때는 2009년 초여름이었다. 지인으로부터 1년 정기구독권을 선물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마침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에 대한 비판이 나오던 시기여서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뽁뽁이도 없는 우편봉투에서 재생지로 제본된 책을 꺼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라한 외형이었지만 책이 다루는 범위와 깊이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환경 서적이 아니라 현대문명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경고하는 문명비판서였다. 12년 넘게 이 잡지를 구독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녹색평론의 매호 서문은 1991년 이 잡지를 창간한 고 김종철 선생이 썼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살 수 없는가’ ‘선거로 대표되는 대의민주주의는 옳은 것인가’ 등 고정관념과 배치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던져졌다. 그는 과학기술과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성장만능 사회가 기후위기와 인간파괴를 불렀으며, 선거로 선출된 소수 엘리트 권력이 근본적 사회변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일관되게 외쳤다. 기본소득, 풀뿌리 민주주의, 소농체제 회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반 일리치, 레이철 카슨, 장일순, 아룬다티 로이 등 생태 사상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일부 주장은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급진적인 제언에 그것이 과연 실현될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녹색평론의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더 조명받았다. 근대문명의 생태계 훼손, 기후위기 등 팬데믹 원인들은 녹색평론에서 오랫동안 경고해온 문제들이기도 했다. 녹색평론이 국내에 소개한 기본소득은 내년 3월 대선 의제로 부각돼 있다. 이 정도면 문명비판서로서 녹색평론의 가치가 입증됐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녹색평론이 최근 발간된 창간 30돌 기념호(181호)를 끝으로 1년 휴간에 돌입했다. 인력 보강 등 재정비를 거쳐 2023년 초 재출간하겠다고 했지만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구독자 수 감소로 인한 재정난, 녹색평론 그 자체로 여겨지는 김종철 선생의 지난해 6월 작고 등이 겹친 결과이다.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하는 절박한 이때 대안을 모색할 녹색평론의 부재가 아쉽다. 녹색평론의 복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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