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TV토론이 10일 열렸다. 전 세계가 지켜본 토론은 올 대선의 최대 고비였다. 유권자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1%포인트 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중에 여전히 5%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초박빙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대선 전 추가 토론이 있을지 불확실해 이번 토론에 시선이 집중됐다.
78세 트럼프는 지난 두 번 대선 때 못지않게 정력적이었다. 과도한 단순화와 사실 왜곡을 무릅쓴 쉬운 화법도 한결같았다. 해리스는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한 듯 때론 단호하고 때론 부드러운 발언으로 덜 알려진 자신의 모습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원래는 정권심판론이 압도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돌연 교체되며 트럼프의 화살은 “나는 바이든이 아니다”라는 해리스의 앞에서 과녁을 빗나갔다. 이미 대선에 3번 연속 나와 비슷한 얘기를 반복한 트럼프가 심판 대상처럼 보였다.
토론은 경제·에너지 분야에서 ‘네 탓’ 공방으로 큰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임신중지·외교·이민 등에서 상이한 세계관을 보여줬다. 해리스의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트럼프의 ‘주(州)의 결정권’이 붙었고, 해리스의 ‘여전히 중요한 미국의 역할론’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맞섰다. 해리스가 환경을 해치는 셰일가스 수압파쇄법을 옹호하며 진보 진영 점수를 잃었다면, 트럼프는 전국적 낙태금지 입장을 유보해 보수 진영을 실망시켰다.
두 사람의 악수로 시작한 치열한 토론은 90여분 뒤 악수 없이 끝났다. 트럼프는 토론 후 SNS에 “3 대 1 대결이었지만 이겼다”고 썼다. ABC방송 토론 진행자가 편파적이었다는 항의이자 정신승리다.
1960년 케네디·닉슨 대결 때 처음 도입된 생중계 TV토론은 뉴미디어 시대에도 중요하다. 지난 6월 첫 토론에서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가 드러나 이례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날 토론만 놓고 본다면 해리스에게 약간 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삶의 위기로 집약되는 미국인의 불만의 깊이를 감안하면, 54일 뒤 그들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 단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