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 경고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타계

2015.01.04 21:19 입력 2015.01.04 22:00 수정

급속한 근대화 비판한 저서, 사회학 고전으로

“한국 위험요소 신뢰 상실” 세월호 대응 비판도

독일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지난 1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슈피겔 등 독일 언론들이 3일 보도했다. 향년 70세.

벡은 1986년 저서 <위험사회>를 출간한 후 지난 30여년간 앤서니 기든스,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사회학자 중 한 명이었다.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돼 현대 사회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위험사회>는 국내에도 번역본이 출간돼 사회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위험사회’ 경고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타계

그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계기로 집필한 이 책에서 서구 중심의 급속한 근대화가 사회를 더욱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른바 ‘위험사회’ 개념과 ‘제2의 근대성’이란 용어를 이론화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제1의 근대성’ 시대에서는 민족·계급별로 우리와 타자(他者)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졌지만, ‘제2의 근대성’ 시대에서는 이 경계가 무너지면서 기존의 민족국가 형태로는 통제할 수 없는 전 지구적 위험이 도래하게 된다. 그는 그 예로 “기존의 경제적 위험은 계층별로 차별적이었지만 스모그 같은 새로운 위험은 ‘민주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원자력 발전, 테러 등은 민족과 국가, 계급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에 초국가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정치의 재발견> <지구화의 길>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 <세계화 이후의 민주주의> 등 수많은 저서를 남기면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열정적인 코즈모폴리턴’이라고 불릴 만큼 세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만 추진되는 지금의 세계화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는 ‘진정한 세계화’는 민족국가를 탈피한 초국민적 국가모델, 초국적 기업을 제어하기 위한 소비의 정치화, 공공노동과 시민노동의 강화 등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 비판적 사회학 이론을 주도하는 국내 사회학자들과도 빈번하게 교류했던 그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2008년과 2014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바 있으며, 지난해 7월 방한 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위험요소 중 하나는 ‘신뢰 상실’ ”이라며 “정부가 잘못된 내용의 정보를 발표하고, 거짓 주장을 하면서 국민의 분노를 키웠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정치인들은 다시 과거 관행으로 돌아가겠지만,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며 “시민들이 이런 사태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44년 독일 슈톨프에서 태어난 그는 뮌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뮌스터대와 프라이부르크대,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등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2013년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경제위기의 정치학>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해서도 통렬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그는 독일이 유로화의 위기를 이용해 유럽연합의 권력을 쥐려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독일은 밖으로는 잔인할 정도의 신자유주의를, 내부에는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메르키아벨리(마키아벨리와 메르켈의 합성어) 모델’을 구축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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