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축구황제 펠레 은퇴 경기

2010.09.30 22:04 입력 2010.10.03 11:29 수정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킨 골잡이

1977년 10월1일 뉴욕 자이언트 구장. 축구 황제의 마지막 경기를 보려는 관중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7만명이 넘는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펠레는 자신이 뛰었던 뉴욕 코스모스팀 유니폼과 브라질 산토스팀 유니폼을 전·후반 각각 번갈아 입으며 뛰었다. 그의 고별경기가 끝나자 관중은 열광적인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로 펠레를 연호했다. 생애통산 1363경기 출장에 1281골, A매치(정식 국가대표팀 간 대회) 7차례를 포함해 모두 92차례 해트트릭을 달성한 ‘축구의 신’ 펠레는 그렇게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펠레가 브라질이 아니라 미국에서 은퇴경기를 치른 것은 74년 산토스팀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코스모스팀에서 다시 2년여간 선수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어제의 오늘]1977년 축구황제 펠레 은퇴 경기

1956년 브라질 명문 구단 산토스팀에 입단해 처음 선수생활을 시작한 펠레는 17살의 나이로 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처음 출전해 준결승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20대를 거쳐 30대에 은퇴할 때까지 내내 슬럼프 없이 완벽한 기량을 선보였다. 모두 31차례 한 경기에 4골을 넣었고 한 경기에 5골 이상을 넣은 횟수도 무려 6번이나 됐다. 이뿐만 아니라 62년 칠레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두번째 우승을 이끌자 브라질 정부가 유럽팀으로의 이적을 막기 위해 국보로 지정할 정도였다. 부상으로 64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선 예선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지만 70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하면서 조국 브라질에 월드컵 3회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겼다. 이 대회 결승에서 펠레는 선제골을 비롯해 어시스트 2개를 추가하며 아주리군단 이탈리아를 4-1로 대파, 전승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후 그의 명성은 더욱 치솟았다. 그는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킨 타고난 골잡이였다. 99년 유니세프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에 선정됐고 2000년 국제축구연맹(FIFA)은 그를 마라도나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꼽았다.

은퇴 후에도 펠레는 사업가로, 정치인으로, 축구해설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가 예언하는 것마다 현실은 반대로 나타난다고 해서 펠레의 저주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네덜란드와 스페인 간 결승전을 앞두고 그의 예상대로 스페인이 우승하면서 징크스를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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