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재 투쟁’ 해외 알리고…‘인권 사각’ 여성 보듬다

2022.03.13 22:49 입력 2022.03.13 22:51 수정

한국 민주화·기지촌 여성 인권 운동가 문혜림 여사 별세

고 문혜림 여사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미군 기지촌 여성의 인권운동에 앞장섰다. 왼쪽 사진은 문 여사(왼쪽)가 1987년 서울 종로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추모 집회에 남편 문동환 목사(가운데), 문 목사의 형수이자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여사(오른쪽)와 함께 참가한 모습. 오른쪽 사진은 문 여사 부부가 2009년 9월 서울 사직동 수도교회에서 열린 <문동환 자서전-떠돌이 목자의 노래> 출판 축하 모임에 참석한 모습. 문영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정지윤 기자

고 문혜림 여사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미군 기지촌 여성의 인권운동에 앞장섰다. 왼쪽 사진은 문 여사(왼쪽)가 1987년 서울 종로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추모 집회에 남편 문동환 목사(가운데), 문 목사의 형수이자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여사(오른쪽)와 함께 참가한 모습. 오른쪽 사진은 문 여사 부부가 2009년 9월 서울 사직동 수도교회에서 열린 <문동환 자서전-떠돌이 목자의 노래> 출판 축하 모임에 참석한 모습. 문영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정지윤 기자

미국의 영국 이민자 가정서 태어나
유학 중이던 문동환 목사 만나 결혼
문 목사 투옥 때 석방 운동 나서고
민주화 지지 선교사들과 월요 모임

미군부대에서 군인들 상담하다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을 알게 돼
‘두레방’ 만들어 교육·자활 돕기도

한국 민주화운동과 기지촌 여성 인권운동에 헌신한 운동가 문혜림 여사(본명 헤리엇 페이 핀치벡, Harriett Faye Pinchbeck)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문 여사는 고 문동환 목사(1921~2019)의 부인이다.

고인의 딸 문영미 사단법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는 “미국에 계신 어머님이 소천하셨다. 주무시다 편안하게 가셨다”고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알렸다.

고인은 1936년 미국 코네티컷주 장미 농장에서 태어났다.

문 이사는 지난해 계간지 ‘이야기꽃(storyblossoms.com)’에 올린 ‘나의 어머니 문혜림, 두레방 이야기’ “영국에서 이민 와 자수성가한 외할아버지는 조랑말을 사줄 정도로 딸에게 풍족한 생활을 누리도록 해줬다. 그러나 어머니는 풍요로움 속에 안주하지 않고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셨다. 교회 선생님들을 통해 1950년대 미국에서 불었던 흑인인권운동을 접하였고, 방학에는 뉴욕 할렘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이들의 삶을 접하였다”고 썼다.

고인은 “소외된 이들을 돕겠다는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 1960년 하드포드 신학대학원에서 사회사업을 전공했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문 목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이듬해 12월 서울 경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에 온 고인은 남편과 함께 ‘새벽의 집’ 공동체를 시작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복하는 삶을 실험했다고 한다. 문 목사가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과 1979년 YH무역노조 사건으로 두 차례 옥살이를 하는 동안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고 박용길 여사,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이희호 여사 등과 함께 석방 운동에 나섰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선교사들과 ‘월요모임’을 꾸려 한국의 반독재 투쟁을 해외에 알렸다.

문 이사는 “그 당시 어머니는 미군부대에서 사회사업가로 일하고 있었다. 알코올과 약물 중독 미군들을 상담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미군의 우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다. 검열을 받지 않고 신속하게 한국의 인권 상황을 해외에 알리고, 빅토리 숄 등 다양한 물품들을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고 적었다.

1986년에는 경기 의정부·동두천 등에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기지촌 여성을 위한 선교센터 두레방을 열었다. “사회사업가로 미군의 상담을 해주던 어머니는 미군들의 옆에 있지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기지촌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어머니는 언젠가 이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작은 꿈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후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그 씨앗은 싹을 피워 올린다.”(문 이사) 그 결과가 두레방이었다. 두레방은 영어 수업에서 시작해 상담과 공동식사, 어린이 놀이방, 여성들의 자활을 위한 빵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문 이사는 “(어머니는) 고아원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을 견디며 가난하게 자라난 여성이 어쩔 수 없이 기지촌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 사연에 안타까워했고, 그러한 환경에서도 이웃을 더 아끼고 사랑을 나누는 이들을 보며 감동받았다. 기지촌 여성들의 모습에서 예수를 만났다고 고백하곤 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어머니는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 정말로 편견이 없었다. 편견이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했다.”

문 이사는 고인의 두레방 활동 의미를 두고 ‘양공주’로 낙인찍힌 여성들이 이웃이자 가부장적 군사문화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사회에 알린 것이라고 했다. 이 운동은 여러 성매매여성을 돕는 단체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1992년 미국 뉴저지로 가서는 한국인 여성 인권보호를 위한 공간 ‘무지개의 집’을 세웠다.

고인은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9년 3월 남편 문 목사 별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요양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창근·태근씨, 딸 영미·영혜씨, 사위 정의길씨(한겨레 선임기자) 등이 있다. 장례는 뉴저지에서 치러진다. 20일 오후 3시 서울 미아리 한빛교회에서 추모예배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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