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정치개입’ 국정조사 무력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2·사진 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55·오른쪽)을 상대로 16일 열린 국정원 댓글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의 청문회가 무력하게 끝났다. 두 사람은 청문회에 출석, 증인선서를 거부한 뒤 선별적으로 증언했다. 특위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채 안하무인적 태도를 보인 두 증인에게 농락당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 전 원장은 “형사재판과 직결돼 있는 내용이라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선서를 거부했다. 김 전 청장도 “이 사건으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증언이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는 과정에서 진위가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지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1948년 제헌 헌법으로 국정조사 및 국정감사 제도가 도입된 후 국조나 국감에 출석한 증인이 증인선서를 거부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변론은 적극 펼친 반면 야당 의원들이 제기하는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겠다” “기억나지 않는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이들은 검찰의 공소사실도 전면 부인했다.
원 전 원장은 대선개입 혐의로 기소된 데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선개입 부서로 지목된 심리전단을 확대개편한 것을 두고는 “댓글 작업은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대선개입이 아니다”라고 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당시 국정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 남북정상회담 찬성 등 정권 홍보 댓글 작업을 했느냐”고 묻자, “그렇게 보고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당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이날 밤 트위터를 통해 “2006년 국정원 국내 책임자가 찾아와 홍보 댓글 작업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며 “원 전 원장의 진술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김 전 청장은 대선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16일 밤 11시에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경찰 수사결과를 서둘러 발표한 배경에 대해 “몇몇 언론사에서 특종보도할 거라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언론사의 특종을 막기 위해 한밤중에 발표했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의 축소·은폐 사실을 밝혀낸 검찰 수사에 대해선 “검찰 공소장 전체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면 부인한다”고 말했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전 정권의 권력기관장들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자리에 성실하게 소명하지 않은 것은 국민과 국회를 우롱한 것”이라며 “야당도 똑같은 얘기를 재탕, 삼탕한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