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전 대표 측 의원들과 정세균 전 국무총리 측 의원들이 3일 ‘계파 모임’ 해체를 선언했다. 대선과 6·1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둘러싼 당내 논쟁이 계파갈등으로 비치며 당 쇄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차기 총선 공천권을 가진 당대표를 뽑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둔 터라 계파 단위의 움직임이 사그러들지는 불분명하다. 이들 계파 모임 해체도 ‘친이재명계’를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에선 이날도 ‘이재명 출마 책임론’에 ‘이재명 사당화’ 논란까지 나오는 등 계파 갈등이 가열됐다.
이 전 대표 측 이병훈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이 전 대표를 도왔던 의원들은 당시 인연을 이어가고자 몇차례 친목을 다진 바 있다”며 “이 전 대표를 지지했던 국회의원들의 친목 모임을 해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총리 계파(SK계) 좌장인 김영주·이원욱 의원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포럼’ 해체를 선언했다. 정 전 총리를 주축으로 민주당 의원 61명이 소속된 광화문포럼은 당내 공부모임으로 출발했지만 대선 경선 등을 거치며 정 전 총리 계파 모임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전 대표 측과 정 전 총리 측 모두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 쇄신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병훈 의원은 “당내에 남아있는 분란의 싹을 도려내고 당이 새로 태어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했다. 이원욱 의원은 “정세균 계파 먼저 해산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민주당 위기 극복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계파 모임 해체 선언은 지방선거 참패 책임론을 놓고 친문재인(친문)계를 포함한 비이재명(비명)계와 친이재명(친명)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보다는 당내 세력 다툼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국민들 눈에 비치며 향후 당 쇄신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는 게 이들 의원들의 설명이다.
당내 주도권 잡기 경쟁의 일환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원욱 의원은 광화문포럼 해체를 발표하며 “민주당의 재건은 당내 모든 계파 정치의 자발적 해체만이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확보하려는 친명계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계와 정 전 총리계는 비명계로 분류된다. 결국 당 쇄신과 계파정치 타파라는 명분을 앞세워 당내에서 목소리를 키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계파 모임 해산 움직임이 당 전반으로 확대될지는 미지수다. 당장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에서 뽑히는 새 당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의원들 명줄을 손에 쥔 당대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의원들의 이합집산과 공동 행동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가열되고 있는 비명계와 친명계의 갈등도 이재명 의원의 당대표 출마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에 힘이 실린다.
비명계와 친명계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이 의원의 지방선거 참패 책임론을 놓고 대립했다. 비명계 김종민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대선 시즌2가 되면서 (각 지역)후보들 경쟁력이 살아날 수가 없었다”고 이 의원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비판했다. 친명계 A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지도부의 지리멸렬과 박완주 의원 성비위 사건 등으로 지지층 민심이 이반됐는데, 이 의원에게 패배 책임을 전부 지라는 건 말도 안된다”라고 반박했다.
비명계는 대선 이후 이 의원이 민주당을 ‘사당화’했다고도 비판했다. 차기 당권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홍영표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밀실에서 누가 임명하듯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며 “당 전략공천위원회가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를 컷오프(공천배제)시켰는데 누군가의 영향력에 의해 하루 아침에 없던 일이 됐다”고 주장했다. 친명계 B의원은 통화에서 “이 의원이 당권을 잡은 적이 없고 심지어 대선 후보일 때도 전권을 휘두르지 않았다”며 “대선 패배 후 자택에 사실상 유폐돼있었는데 무슨 힘이 있었겠나”라고 반박했다.
당 안팎에선 ‘비명 대 친명’ 갈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야권 원로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SNS에 “민주당은 내부 총질에 혼연일체가 돼있다”며 “진짜 싸움은 밖에, 민생, 경제에 있다”고 밝혔다.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SNS에 “‘친문 대 친명’ 삿대질이 웬말인가”라며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조차 없다”고 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SNS에 “출구 없는 내홍으로 가다가는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당이 ‘폭망’할 것”이라며 “대선과 지방선거는 물론 지난 5년 민주당 모습에 대한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평가가 우선”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