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가 승리로 끝난 다음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 조직과 공천 개혁을 위한 혁신위원회 출범을 선언하면서 여당이 2년 가까이 남은 총선 준비에 일찌감치 발을 뗐다. 공천을 포함한 당내 의사 결정 과정에서 당원 뜻이 민주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어 정치 효능감을 높여야 차기 총선까지 승리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 생각이다. 이 대표가 친윤석열계에 맞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차기 당대표 선거와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갈등이 벌써부터 물밑에서 확산하고 있다.
이 대표와 혁신위원장을 맡은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1시간여 만나 혁신위 구성과 의제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다음주를 목표로 혁신위를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출범시키기 위해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 출국 전 만난 것이다. 최 의원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의 체질을 강화하고, 모호했던 (공천) 규정을 재정비해 예측 가능한 공천 시스템”을 만드는 방안을 이 대표와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혁신위 인선과 관련해 최 의원 의사를 존중할 뜻을 밝혔다. 혁신위는 최고위원 추천 인사뿐 아니라 “당 내외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신망 있는 인사”로 10명 내외 규모로 꾸려질 전망이다.
혁신위가 다룰 핵심 의제는 공천 문제다. 최 의원은 “이해할 수 없는 전략 공천은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며 “시스템 안에서 (공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떤 개인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닌 예측 가능한 (공천) 시스템” “‘찍어 내리는 공천’이 자리잡을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차기 총선에서 이른바 ‘윤심’이 반영된 공천이 이뤄질 거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이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당대표로 취임한 뒤 20만명에서 80만명으로 불어난 당원들이 당에 남을 유인이 있는 정당 구조를 만드는 게 총선까지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CBS 라디오에서 “지금의 당 의사 반영 구조는 젊은 세대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렵다”며 “당원들에게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이벤트를 가져가지 않으면 선거가 없는 2년 동안 당원들이 줄줄이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매달 1000원 이상만 내면 되는 ‘책임당원’보다 당 정체성을 높은 수준으로 공유하는 ‘으뜸당원’을 도입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청년을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미래 정치인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표는 총선까지 “길어보이는 시간이지만 누적된 정당 내 모순들을 풀어나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이른 시점에 공천 룰을 다루는 이유를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말인 2016년 ‘친박공천’ 논란으로 총선에서 패하면서 여당 위기가 가속화한 사례를 반복할 수 없다는 명분이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총선이 2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혁신위를 띄운 데 의구심을 제기한다. 당내 우호세력이 부족한 이 대표가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당대표직을 마친 뒤 총선 출마 가능성이 큰 이 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가진 차기 당대표 취임 전 ‘시스템 공천’을 도입해 친윤 중심 당 재편과 총선 공천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가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한 대변인단처럼 혁신위원과 으뜸당원이 ‘이준석계’로 당내 세력을 구축할 수도 있다.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이 대표 성비위 의혹이 회부된 상황에서 이를 잠재우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당내에서는 일단 공개적인 불만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이 대표가 자기 사람을 혁신위원에 임명할 경우 갈등이 표면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대통령실도 혁신위 출범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최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을 맡긴 것도 전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항한 감사원장 출신의 중량감 있는 인사를 임명해 친윤 의원들과 안철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 등 당내 견제세력이 쉽사리 비판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 대표가 차기 대권을 노리는 최 의원과 연합전선을 구축한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