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을 위한 법치주의는 가라···진화한 ‘노란봉투법’

2022.09.11 16:5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국회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국회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이 민생입법 과제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꼽았다. 민주당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윤석열 정부의 ‘부자들을 위한 법치주의’를 비판하면서 이 법에 주목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함께 추진하는 야권 민생연대 법안 1호다.

민주당은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할 22대 민생입법 과제 중 6번째로 노란봉투법을 선정했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5일 BBS 라디오에서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나 가압류 조치는 노동 기본권을 넘어 노동자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한 입법이 시급하다”며 “반드시 정기국회 안에 처리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도 노란봉투법 처리에 긍정적이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일 취임 인사차 정의당을 찾아온 이 대표에게 노란봉투법을 포함한 민생입법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정의당이 지향하는 바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진화한 노란봉투법, 하청 파업 정당성 담아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노란봉투법은 파업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회사의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법이다.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2014년 가해진 47억원 손배가압류 폭탄을 막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돕는 시민의 모금을 담은 노란봉투에서 착안했다. 19대 국회가 출범한 2016년부터 노란봉투법이 발의됐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흐지부지됐다.

잠자던 노란봉투법은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야권에서 다시 주목받았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유최안씨가 한 달 200만원 수준이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가로·세로·높이 1m 철제구조물에 31일간 스스로 가뒀다. 노사 합의로 파업은 일단락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주도한 하청노조 간부 5명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한 명당 94억원으로, 하청노조 간부들이 200년 이상 일해야 갚을 수 있는 돈”이라고 했다.

노란봉투법은 진화했다. 쌍용차 파업 손배 사태에서 비롯한 19대 국회의 노란봉투법은 하청노조 파업의 정당성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는 하청노조도 보호하는 법이 새로 발의됐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하청노동자 파업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노란봉투법을 대표발의했다. 회사의 손배가압류 제한 적용 대상을 정규직노조에서 하청노조로 확대한 것이다.

이는 유럽 모델을 참고한 것이다. 노란봉투법의 모델이 된 영국은 파업 참여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배 청구를 금지한다. 노동조합에 청구할 수 있는 불법 파업에 대한 손배 상한액도 25만파운드(약 4억원)로 제한한다. 유럽에서는 파업권을 광범위하게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하청 노동자가 원청기업을 상대로 한 파업을 합법으로 규정한다.

민주당 “파업 구조적 원인 봐야” VS. 국민의힘 “불법 파업 면죄부 반대”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유최안 씨가 점거 농성을 펼친 철골구조물과 동일한 크기(0.3평)의 사진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펼쳐 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유최안 씨가 점거 농성을 펼친 철골구조물과 동일한 크기(0.3평)의 사진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펼쳐 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정책적으로 차별화하려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하청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정부를 비판하며 각을 세웠다. 이탄희 의원은 지난 7월2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불법 점거라는 사실을 재판하지 않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라며 “통일부 장관은 북송된 살인 혐의자를 수사나 재판하지 않고 살인자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자국민인 하청노동자는 왜 그렇게 대하나”라고 질타했다.

이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는 유씨가 농성한 공간 만한 현수막을 펼쳐 보이면서 “여기서 허리 굽히고 기저귀 차며 한 달 버틸 수 있겠나”라고 묻기도 했다. 한 총리는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같은 달 21일 “파업은 다단계 하청 구조와 저가 수주 방식이라는 조선업 구조적 문제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선명한 야당 전략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불법 점거라는 사실을 재판하지 않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통일부 장관은 북송된 살인 혐의자를 재판하지 않고 살인자라고 하면 안 된다던데, 자국민인 하청 노동자는 왜 그렇게 대하나.

-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7월2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한 질의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을 ‘기업 죽이는 법’으로 보고 반대했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일 MBC 라디오에서 “강성 노조의 불법 파업에 면죄부까지 주는 결과가 된다”며 “기업을 두 번 죽이는 방향이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와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파업에 대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노동법 체계는 근본적인 노사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민이 합의해서 만들어 놓은 체제”라면서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래도 안 된다고 할 때는 법에 따라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민사회는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손배 폭탄이야말로 ‘노동자 죽이기’라며 국회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연구실장은 “윤석열 정부는 횡령·배임·조세 포탈 등 경제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별 사면으로 면죄부를 주고, 한 달에 200만원 버는 하청 노동자 파업에는 엄벌을 예고하는 ‘선택적 법과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을 향해선 “지금 ‘김건희 여사 특검법’보다 시급하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태워야 할 법안은노란봉투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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