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아무래도 투 트랙은 없다

2024.08.26 20:58 입력 2024.08.26 21:01 수정

지난 5월8일 아침,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날이다. “선배, 혹시 내일 전세사기 관련 질문이 나올까요? 피해자 지원 활동하는 분이 물어보시네요. 8번째 사망자가 나왔어요.” 그분이 듣고 싶던 대답은 “장담은 못하지만 나올 수 있습니다. 질문 기회가 오면 제가 물을 거라서요”였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답하지 못했다.

당시 3~4개 질문을 마련해 뒀는데 이 문제는 없었다. 새삼 놀랍지만, 그때도 정국 최대 쟁점은 해병대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 의혹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이었다. 결국 질문 기회는 못 얻었고 회견은 여러모로 허무하게 끝났다. 여러 번 이 통화를 생각했다. 불투명한 한 번의 기회와 여러 갈래로 뻗은 절실한 열망들, 그리고 선택의 책임. 시계를 되돌려도 여전히 질문지를 수정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다시 이날을 떠올리게 한 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다. 지난 한 달 그는 전형적인 투 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민생’은 대표회담 등으로 속도감 있게 다루고, 전당대회 당시 1호 공약 격인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발의는 ‘정쟁 사안’이니 별도의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투 트랙 같은 건 없다. 많은 사안은 실상 하나의 트랙 안에 묶여 있다.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에 밀려난 이슈들은 묻히거나, 해결이 지연되거나, 변수를 감당해야 한다. 지난 21일 전세사기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것 역시 ‘정쟁을 떼어놓고 민생에 합의한 결과’로 띄울 일은 아니다. 두 의혹 해결을 방치한 결과 ‘정치 진공’ 상태가 이어지면서 고통이 누적되고 해결이 지연돼온 것 아닌가. 민생과 정치 쟁점을 분리된 사안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위험하고, 또 순진하다.

여야 협상은 한 트랙 안에서 복잡한 선을 그리며 달렸다가 멈추고, 다시 출발점을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다. 한 대표의 구상처럼 ‘민생’의 운동장에서 합을 맞춰 뛰면서 다른 트랙에서는 몸풀기만 하는 방식은 가능하지 않다. ‘민생에 집중하는 새로운 정치 리더십’은 사안을 쪼개놓고 보는 자기편의적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전하는 민생 법안이 안타깝다면 이에 대한 반응은 ‘민생을 위해 많이 참았다’는 성난 얼굴이 아니어야 했다. 그보다는 지연된 문제들에 대한 낭패와 좌절, 책임을 숙고한 끝에 결국 핵심을 풀어가기로 하는 결연한 얼굴이 필요했다. 특검법 때문에 막힌 민생을 따로 풀자고 할 게 아니라, 이를 풀어 민생 문제를 논의할 근본적 토양을 갖추려 하는 게 정도다.

한 대표는 결국 26일 특검법 발의 요구를 ‘여권 분열 포석’으로 규정하고 “내가 따라갈 건 아니다”라며 또다시 한 발을 뺐다. 공론화를 피하면서 ‘민주적 정당’을 내세우는 모순된 대처를 할 때부터 예견된 결과다. 한 대표가 뒤집은 건 투 트랙 중 하나가 아니라 전체 판이다. 그 과정은 민주적이지도, 민생을 향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기록하고 싶다. 이번주 예정된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에서는 4대 개혁 문제와 함께 여전히 두 의혹에 대한 입장이 핵심으로 꼽힌다. 트랙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유정인 정치부 차장

유정인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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