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력 R&D 예산 4배 늘어
“눈먼 돈 되는 것 아니냐” 우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에서 국제협력 부문이 지나치게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 전체 R&D 예산(26조5000억원)이 지난해보다 약 10% 줄어든 와중에도 국제협력 R&D 예산은 오히려 4배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준비 없이 늘어난 국제협력 R&D 예산이 수준 미달 외국 학자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세종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에서 8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2483억원이던 글로벌(국제협력) R&D 예산이 올해에는 1조1335억원이 됐다”며 “무려 4배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올해 전체 R&D 예산(26조5000억원)은 기획재정부가 예산 분류 방식을 바꾸기 전인 지난해 기준으로 14.7%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국제협력 R&D는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 의원은 “늘어난 (국제협력 R&D) 예산이 올해 제대로 집행될지 의문”이라며 “내년에도 대략 1200억원이 증가해 1조2548억원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제협력 R&D 예산이 늘어난 것은 ‘글로벌’을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지난해 6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R&D 국제협력은 세계적 수준의 공동연구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갑자기 늘어난 국제협력 R&D 예산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도 유사한 사업이 있었는데 수준 미달의 해외 학자들이 R&D 예산을 가져가는 사례가 있었다”며 “한국 국제협력 R&D 예산이 눈먼 돈으로 인식됐었다”고 짚었다. 이번에 늘어난 국제협력 R&D 예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지 전략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협력 R&D 예산 급증에 대해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예산 기조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인공지능(AI)이나 양자 기술 발달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삭감이 결정된 올해 전체 정부 R&D 예산 때문에 법으로 정해진 연구를 못 하는 일까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기정통부 소속기관인 국립전파연구원의 연구 기능이 올해 사실상 마비됐다는 것이다.
박민규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전파법에 국립전파연구원은 전파 관련 R&D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그런데도 올해 배정돼야 할 R&D 예산은 전액 삭감이 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정창림 전파연구원장은 “여타 연구사업 등에 있는 예산을 활용해 최소한의 연구를 했다”고 답변했다. 내년에는 전파연구원 몫의 R&D 예산이 다시 반영됐다.
박 의원은 “불법적인 예산 삭감이 진행되면서 많은 연구원들이 고통 속에서 기본 연구만 수행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