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국정원 대선 앞두고 재단 사찰 이유는 김정남 망명공작 일환”
“김정일에게 보낸 박근혜 친서는 유럽코리아재단 소장이었던 장 자크 그로하가 USB와 출력물 형태로 들고 중국 베이징에 가서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만나 전달했다. 편지는 김정남의 고모부 장성택 라인을 통해 김정일에게 보고 된 것으로 안다.”
전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주간경향>의 박근혜 편지 보도(1207호) 이후 이 핵심 관계자는 입을 다물었다.
지난해 12월 21일,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박근혜 편지가 북에 전달된 것과 관련, 유럽코리아재단이 접촉신고를 했는지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것과 관련한 어떤 결과 보고도 없었고, 재단 관계자들에게도 확인해본 결과 ‘그런 서신은 북측에 보낸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종합적으로 볼 때 현재까지는 북측에 그러한 서신이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간경향>은 이날자 온라인 업로드 기사에 과거 여러 차례 주고받은 북측과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의 편지 전문을 추가로 공개했다.
유럽코리아재단이 비선을 통해 중국 등에서 북측과 접촉한 사실 등을 통일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 재단의 전 핵심 관계자는 “재단의 공식사업 이외에 대북접촉 경로 등에 대해서는 통일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보도 이후 <주간경향>이 접촉한 다른 전 주한 EU상공회의소(EUCCK) 관계자 역시 “상공회의소 산하 유럽코리아재단과 관련한 활동은 재단의 핵심 수뇌부 몇 명만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박근혜 편지가 중국, 마카오 등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김정남을 통해 전달됐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주간경향>은 입수한 하드디스크들을 분석하던 중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을 발견했다.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들이 김정남과 주고받은 메일이다.
<주간경향>이 단독 입수한 김정남과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메일은 2005년 9월 17일부터 2006년 3월 31일까지로, 총 22회 오간 내용이다. 박근혜 이사와 북측이 주고받은 편지와 마찬가지로, 입수한 메일은 실제 오간 전체 분량이 아니라 일부분으로 보인다.
“김정일 편지, 김정남-장성택 비선으로 전달”
<주간경향>은 이들 사이에 오간 메일 내용을 분석했다. 비록 전체는 아니지만 입수한 부분만으로도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그동안 일부 외국 인사들과 김정남이 이메일 등을 통해 의견을 교류한 사실은 있지만, 국내 인사와 교류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아 있는 첫 메일은 김정남이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에게 보내는 추석 인사다.(2005년 9월 17일) 인사에 유럽코리아재단 측이 어떤 답신을 보냈는지는 확인이 안 되고 있다.
두 번째 메일 발송자 역시 김정남으로, 약 40일 뒤에 보낸 ‘제안사항’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이다. 제안사항이라는 제목은 남아있지만 본문은 깨진 상태다.
본격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은 메일은 그해 12월 1일부터 오간 것이다.
김정남은 2005년 12월 1일 보낸 메일에서 “명년 2월 23일이 고모부 회갑이다. 한복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고모부란 누굴까.
2013년 12월 처형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다. 장성택의 회갑을 맞아 한국에서 한복을 지어 북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요청이다.
유럽코리아재단 측은 이에 대해 “옷감, 재질, 체형 등 구체적 수치가 필요하다”며 장 자크 그로하를 통해 치수 재는 법 등의 설명이 들어 있는 그림을 보내겠다고 말한다. 가격대는 전주지방에서 옷을 잘 짓는 집의 최고급 가격이 미화 2400달러이며, 서울의 유명디자이너에게 부탁할 경우 5000달러 이상은 가져야 할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간 답신에서 김정남은 고모부의 신장, 허리둘레, 키와 체중 등이 적힌 구체적 수치를 받아 넘긴다.
12월 15일, 유럽코리아재단 측은 답신에서 “장 자크 그로하가 내일 아침(12월 16일) 출국이라 여기 마무리 일에 한창 바빴다”며 “내년 일원에는 받아볼 수 있도록 한복을 맞추겠다”고 말한다.
일단 확인해야 하는 것은 유럽코리아재단 측과 메일을 주고받은 사람이 김정남 본인이 맞느냐는 것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고미 요지(五味洋治)는 김정남과 2004년 12월 3일부터 2012년 1월 3일까지 8년에 걸쳐 주고받은 이메일과 중국에서 인터뷰를 바탕으로 <아버지 김정일과 나-김정남 독점고백>이라는 책을 냈다. 책은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번역됐다.
고미 요지가 김정남과 주고 받은 메일은 야후코리아 메일이었다. 반면, <주간경향>이 입수한 유럽코리아재단과 주고 받은 메일은 핫메일(hotmail.com) 계정이었다. 이름은 한글로 ‘김 정남’을 쓰고 있었다. 입수한 김정남 이메일 전체 주소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이 이메일이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 가입돼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한 해킹그룹이 해킹해 문서공유사이트에 업로드해 놓은 이 이메일 계정의 주인은 1981년생 양모씨로 돼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측근 이름으로 가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메일 곳곳에서는 이들이 단지 온라인으로만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실제 베이징이나 마카오 등지에서 만나 물건을 주고 받았음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들어 있다. 앞서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는 “김정남은 장 자크 그로하의 오랜 친구”라며 “중국 베이징뿐 아니라 마카오, 홍콩 등지에서도 장 자크 그로하뿐 아니라 유럽코리아재단 핵심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편지에서 거론된 ‘고모부’는 장성택이 맞을까.
김정남은 “고모부님 체중과 키를 인차 알려드리겠다”며 얼굴색은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대로”라고 말한다.
김정남은 “너무 하얀 편은 아니죠?”라며 “그렇다고 김건모씨처럼 시커멓지도 않으시다”고 말한다. 가수 김건모씨를 거론한 것을 보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꽤 조예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만한 것은 김정남이 거론한 장성택 생일(2월 23일)이 국내 포털이나 북한 인명록 등에 게재되어 있는 장성택의 생일(1946년 1월 22일)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성택의 생년은 1946년이므로, 김정남이 거론한 2006년이 환갑인 것은 맞다. 기존 알려진 1월 22일을 음력생일로 보면 양력으로 2월 23일이다. 북에서도 양력과 음력을 구분해 생일을 쇠는 경우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코리아재단 측과 서신 교환에서 김정남이 ‘부탁’한 것은 한복만이 아니다.
한국 내 유명 역술인들에게 고모부의 사주를 봐줄 것도 의뢰했다.
유럽코리아재단 측은 “음력 2월, 6월, 9월을 조심하고 아주 어려운 시기는 지났다. 내년까지만 삼재이므로 지나면 좋으실 것 같다”는 역술인 의견을 전하고 있다.
남겨져 있는 메일에는 유럽코리아재단 측이 만들어 김정남 부부,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에게 보낸 ‘부적’과 관련한 논의도 있다. “새해를 맞아 과거에 쓰던 부적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문의하는 것으로 보아, 2006년뿐 아니라 2005년에도 부적을 국내에서 만들어 중국에 있는 김정남과 북한에 있는 장성택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주간경향>이 입수한 하드디스크 안에는 북측의 요청으로 접촉한 것으로 보이는 국내 유명 역술인 세 사람이 정리한 사주풀이 문서도 들어 있었다. 파일을 근거로 <주간경향>이 접촉한 역술인 ㄱ씨는 “누구라고는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북에서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이라며 10여년 전 마포구 도화동 홀리데이호텔 근방에 있을 때 관련 사주를 들고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아주 어려운 시기는 지났다”는 역술인의 풀이는 7년 후 처형당한 것에 비춰보면 결과적으로 틀린 사주풀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의장을 역임한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지난해 3월에 펴낸 <장성택의 길>에 따르면 장성택은 리제강 등의 견제로 2003년 말부터 ‘혁명화 조치’를 당하고 있었다(2005년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김정일은 “장성택은 남한에 가서 폭탄주를 너무 마셔 건강을 해쳐서 쉬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2005년 말~2006년을 기점으로 장성택에 대한 혁명화 조치가 해제되고, 특히 김정일이 쓰러진 후 김정은 집권 초기까지 장성택-김경희가 핵심실세 역할을 했으므로 위 역술가들의 풀이는 단기적으로 보면 아주 틀린 것은 아닌 셈이다.
하드디스크 안에 남아있는 메일은 고모부 한복뿐 아니라 ‘세 여인’이 입을 한복에 대한 논의에서 끝난다.
김정남과 유럽코리아재단 측이 논의하는 ‘세 여성’은 누구일까.
김정남은 2006년 3월 31일자 편지에서 “세 번째 분이 원하시는 당의(唐衣) 모델입니다. 색상도 같이 해주셨으면 한다”고 적고 있다.
편지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 사진 두 장이 첨부되어 있다. 사진 속 여성모델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한복을 구해달라는 이야기다.
김정남과 22차례 주고받은 메일들
김정남과 유럽코리아재단 수뇌부의 이 ‘비밀교류사업’은 어디까지 보고됐을까.
하드디스크에는 이들이 교류한 시기에 열린 유럽코리아재단 이사회 ‘대외비’ 문서도 들어 있었다.
문화, 체육, 자선활동, 장학프로그램, 북한사업 등의 카테고리로 분류돼 있는 활동보고서에는 김정남과 관련된 사업은 기재돼 있지 않다.
보고된 북한사업에는 ‘2005 북측 경제인 장학프로그램’, ‘제3회 유럽 특허청-중국 특허청 트레이닝 세미나 참석’, 그리고 북한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한 ‘제2회 국제 통화재정세미나’와 기타로 분류된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조-불란서 경제협력을 위한 프랑스 북한 경제세미나’만 적혀 있을 뿐이다.
앞의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 이사도 알고 있었지만 보안이 필요한 사항이라 구두로만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외비를 넘어선 ‘톱 시크릿’이었던 것이다.
앞서 박근혜 편지를 다룬 <주간경향>의 기사에서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의 유럽코리아재단 사찰 정황을 담은 내부문건들을 공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문건을 읽다보면 국정원뿐 아니라 “미 CIA가 재단을 도청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정성장 실장은 “장 자크 그로하가 김정남과 접촉했으면 당연히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이 감시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정남이 외부에서 특별한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북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유고 상황에 김정남이 후계자로 내세워질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한국과 미국, 중국 정보기관이 다 주시하고 있었을 것”아라며 “특히 김정남과 장성택 사이의 국제전화는 이들 정보기관에 의해 100% 도청되고 있었다고 보면 맞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이사의 김정일 서한과 마찬가지로 김정남과의 교류 역시 통일부 등 공식라인에는 보고되지 않았다.
서신 교환이 이뤄지던 시기에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에 이어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종석 전 장관은 “박근혜 이사의 편지도 그렇지만, 유럽코리아재단과 김정남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장과 상임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이 전 장관은 관련된 첩보가 보고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북한 권력구조 특성상 김정남과 고모부 사이에 비선라인이 운영될 수는 있다”며 “다만 국내의 박근혜나 유럽코리아재단 관계는 당시 남북 사이 교류가 활발하게 벌어지는 시기였고, 정보가치가 얼마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NSC까지 올라왔었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는 이야기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새로 밝혀진 ‘김정남과의 관계’라는 키워드는 의문을 풀 핵심 열쇠일지도 모른다.
2012년 대선 막판, 김정남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 적이 있다.
이상호 고발뉴스 대표(당시 MBC기자)는 SNS 등을 통해서 “국정원이 MBC를 낙점해 김정남 인터뷰를 해 대선 카드로 사용하려고 했다”고 폭로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사이의 지지율이 거의 비슷해지자, 막판 역전카드로 ‘NLL 대화록 공개’를 검토하는 한편, 말레이시아에 체류하고 있던 김정남을 한국으로 망명시키거나 인터뷰해 NLL과 관련한 불리한 발언을 이끌어내 참여정부 인사인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당시 김정남을 인터뷰한 사람은 방콕 주재 특파원이었던 허무호 현 MBC 사회부장이었는데, 영상카메라가 없었다는 이유로 결국 인터뷰 내용은 방영되지 않았다”며 “김정남의 인터뷰를 했다면 세계적 특종인데도 방영하지 않은 게 의문이 들어 사내에서 전후 사정을 취재해보니 당시 찍어 정보를 건넨 국정원 측이 NLL 관련 발언을 이끌어내려 했는데,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으로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당시 여권에서 대선 막판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판단, ‘NLL 대화록 공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는 것은 보수우파성향 언론인 조갑제씨가 낸 2012년 대선 회고록 <우리 생애의 가장 길었던 날>에도 기술돼 있다.
의혹 당사자인 허무호 부장은 2월 10일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영상팀이 없어 보도를 안 한 것은 사실”이라며 “소스를 입수한 쪽은 국정원이 아니며 정보기관이 언론에 협조하는 것을 봤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당시 국정원이 김정남 망명공작을 추진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북소식통은 “한국 국정원이 김정남을 데려오려고 했는데, 정작 김정남은 한국보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었고, 유럽은 대북정보에 목말라 하지 않았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김정남이 김정일의 아들인 것은 맞지만 다른 고위급 인사들보다 정보가치는 크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며 “특별한 대우를 원했던 김정남과 미국 측의 협상이 결렬됐고, 한국의 경우도 김정남이 요구하는 것과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의 갭이 워낙 커서 결국 그 정도까지 비용을 지불하면서 데려오는 것은 막판에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코리아재단의 모태인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사찰과 해산도 김정남의 약점을 잡아내고 김정남을 데리고 올 때 카드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면 맞을 것”이라며 “당시 이런 일이 진행되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폭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이 박근혜를 당선시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열한 공작을 한 것”이라며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당시 국정원에서 했던 공작을 조사해 백일하에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의 김정일 서신, 그리고 유럽코리아재단의 김정남 비선을 통한 대북사업과 관련해 “재단이 포괄적 승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접촉사안은 통일부에 신고하게 돼 있다”며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더라도 북에 다녀오거나 주요 인사와 접촉이 있었다면 신고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프로세스”라고 말했다.
<주간경향>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장 자크 그로하 소장 등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 국적자인 당시 유럽코리아재단의 핵심 수뇌부들도 김정남 등 북측 인사를 접촉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 남북교류협력법 등 실정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한 <주간경향>의 확인 요청에 통일부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포괄적 대북접촉 승인을 받았다는 것 이외에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며 “구체적인 접촉행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파악해 판단·검토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편, 장성택 한복 구입 등 김정남과 서신 교류를 한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당사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주간경향>은 여러 경로로 연락을 취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정일 편지, 박근혜 삼성동 비선팀에서 조율”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 관련 결재를 받으러 삼성동 사무실을 갔던 것이 기억난다.”
전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유럽코리아재단 박근혜 이사의 결재는 당시 강남구 신사동 588번지에 있던 한국문화재단 사무실, ‘삼성동팀’에서 이뤄졌다는 증언이다. 관련 서류들이 취합돼 재단 수뇌부 사이에 공유된 것은 하드디스크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련 자료를 출력해 삼성동 사무실을 오가며 만났던 인사는 당시 4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비서관이라고 이 관계자는 기억했다. 그는 박근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위즈덤하우스·2007)에 기술된 유럽코리아재단 챕터와 관련해서도, 발간에 앞서 재단과 삼성동팀을 오가며 초안을 다듬는 작업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 비서관이 술 접대를 좋아해 여러 차례 같이 갔던 기억도 난다”고 덧붙였다.
특검의 출석요구를 받고 있는 안 비서관은 현재 잠적 중이다. 정치권에서 그동안 박근혜 비선라인인 ‘삼성동팀’의 존재와 관련한 설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활동정황에 대한 증언이 나온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이른바 ‘4인방’을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진 정윤회 전 비서실장은 2014년 말 국정농단 의혹사건 과정에서 이른바 ‘삼성동 비선팀’과 관련해 “국회가 시끄러우니 조용한 데 가서 페이퍼워킹을 한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