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40년

1972년 10월17일, 3선의 박정희 ‘초헌법적 영구집권’ 체제 구축

2012.10.16 22:22 입력 2012.10.16 23:22 수정

유신 체제란… 비상계엄령 선포, 유신이란 이름으로 삼권분립 훼손·언론에 재갈·긴급조치 단행

1972년 10월17일, 한국의 민주주의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날 한국의 대통령 박정희는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기 위한 중대한 결심”을 국민에게 밝힌 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박정희는 이미 3선 대통령이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은 “박정희가 헌법을 고쳐 선거가 필요 없는 총통이 되려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의 말은 1년 뒤 현실이 됐다

<b>유신헌법 국민투표</b>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1972년 11월21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딸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육영수 여사(오른쪽부터)가 투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신헌법 국민투표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1972년 11월21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딸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육영수 여사(오른쪽부터)가 투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는 비상계엄령으로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킨 뒤 ‘영구집권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따온 ‘10월 유신’이란 말을 가져다 붙여 정당성을 얻으려 애썼다.

영구집권 체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해 10월27일 개헌안이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됐다. 헌법안에 대한 찬반 토론은 금지됐고 언론의 입에도 재갈이 물렸다. 11월21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투표율 92.9%, 찬성 91.5%란 결과가 나왔다. 예정된 결과였다. 박정희는 그해 12월27일 사실상 종신 대통령에 취임하며 유신헌법을 공포했다.

유신헌법은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법이었다.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전면 부정했다. 대통령은 입법·사법·행정을 완전 장악했고, 반대 세력의 비판은 원천봉쇄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허수아비 대의기구가 대통령과 국회의원 3분의 1을 뽑았다. 국회의원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했다. 대통령의 임기는 6년이었지만 중임 제한은 없었다. 사실상 영구집권이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발령할 수 있었다.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 대상도 아니었다. 헌법을 초월한 기관, 헌법을 초월한 권력이 헌법의 틀 안에서 생겨난 기괴한 구조이다. 유신헌법 1장1조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허구의 구호였다.

<b>유신 첫 반대 시위</b> 1973년 10월2일 서울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에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신 첫 반대 시위 1973년 10월2일 서울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에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 정권은 유신 체제를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해 일본에 체류 중인 그를 1973년 8월 납치해 살해하려다 실패한 뒤 자택에 연금시켰다. 1975년 8월에는 개헌청원운동을 벌이던 장준하 선생이 등산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앞서 1974년 1월부터 긴급조치를 발동해 교수, 학생, 언론인, 종교인, 문인 등 민주인사들을 탄압했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발동한 긴급조치는 헌법을 초월한 법률이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년 1월 발표한 ‘긴급조치 판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음주나 강의 중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건이 48%였다. 피해자 대부분은 농업, 상업, 주부, 광업 등에 종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1974년 5월 오종상씨(71)는 버스에서 만난 여고생들에게 무심코 정권 비판을 했다가 감옥살이를 했다. 오씨는 2010년 12월이 되어서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36년 만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렇게 구축한 유신 체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노동권을 깔아뭉갰다. 양성우 시인이 말한 ‘겨울 공화국’이 지배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이란 미명하에 상식, 양심, 정의, 인간성이란 가치를 뒤로 밀어내는 풍토를 정착시켰다. 체제 유지를 위해 노동 탄압은 계속됐고, 대중의 생존권은 유린됐다. 독재정권과 결탁한 재벌만이 막대한 부를 축적해 수혜자가 됐다. 박정희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일부 선택된 재벌을 밀어주면서 한국의 경제구조는 왜곡됐고 이로 인한 불평등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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