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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단식, 무엇을 얻었나

2014.08.30 12:45 입력 2014.09.01 09:58 수정

“유민이 아빠를 위해” 정치적 목적 없이 시작한 10일간의 단식, 세월호법 진전 등 정치적 성과 없이 끝내

하고 많은 책 중에 자꾸 집어드는 건 백석 시집이다. 문재인 의원은 열흘간의 단식 기간 중 그의 천막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숱한 지지자들 때문에 책 읽을 틈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오전이든 밤이든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쌓아놓은 책들을 마다하고 시집에 눈길을 줬다. 다른 책도 많은데 왜 백석 시집을 읽느냐고 물으니, 원래 백석 시를 좋아한다고 답한다.

그의 천막 바로 앞에서 그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한 1일 동조 단식자도 책을 읽고 있다. 책 제목이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는가’다. 책 소개를 찾아보니 이렇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와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라는 강력한 제도적 방어막 뒤에서 폐쇄적인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며 기득권을 유지해 오고 있는 한국의 거대 정당들, 그 정당들이 유권자의 높은 불신과 혐오, 무관심 속에서도 과연 정치적 생명력을 끈질기게 이어갈 수 있을지 저자는 궁금했다.” 문 의원이 지금 읽어야 하는 책은 백석 시집보다는 이 책이 아닐까. 그의 당은 세월호 국면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 속에서 정치적 생명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다면 더는 살아남지 못할 위기의 정당이다.

YS 단식 등과 비교하면 실패한 단식

하지만 이런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대선후보로서만 그를 바라보는 착시 때문이었다. 그는 1470만명의 지지를 받은 대선후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당권을 쥐고 있지도 않고, 당을 혁신할 권한을 지닌 지도부도 아니다. 그의 단식을 둘러싸고 ‘친노 강경파’ ‘지도부 흔들기’ ‘본격 대선 행보’라는 정치권의 비판과 해석이 분분하지만, 그는 단식을 앞두고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명확히 했다.

단식의 시작도 ‘유민 아빠’였고, 단식의 끝도 ‘유민 아빠’였다. ‘유민 아빠’의 종속변수로서의 단식이었던 셈이다. 그는 ‘유민 아빠’가 단식을 중단하면서 바로 단식을 중단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특별법의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가 단식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미 시작부터 ‘종속 변수’임을 명확히 했던 문 의원이 단식을 이어간다면 이후에는 그야말로 ‘정치적인 단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단식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고민은 무엇보다 당 지도부가 타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단식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스러웠다. 옛날에 그저 한 개인일 때야 자기 소신껏 조금 시류를 거스르면서도 남이 뭐라 하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하면 되는 건데 또 정치를 하게 되고 당에 소속돼 있게 되니 걱정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할 때마다 그가 조심스럽게 공격의 방향을 새누리당으로 돌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여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새정치연합만 하는 것이고 새누리당은 마치 무관한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지난 대선에서 패배 요인 중 하나가 당 조직이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있기 때문에 문재인 의원은 당 조직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단식 9일째 문재인 의원/연합뉴스

단식 9일째 문재인 의원/연합뉴스

그의 단식은 정치보다 앞선 결심이었다. 세월호 특별법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것은 정치 이전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발생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고, 그런 나라 만들자는 게 국민들 합의다. 제대로 원인과 사실 및 진실을 밝혀내야 그 토대 위에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여야를 다 초월한 문제이고, 단순하게 아무런 정치적 계산 없이 그렇게 임하면 되는 거지. 온갖 정치적 계산들을 하니까 이거 안 돼 저거 안 돼 계속 그러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정치적인 목적이 없다 보니 그의 단식은 역설적으로 세월호 특별법의 진전이라는 정치적인 성과를 전혀 내지 못했다. 1989년 김영삼 총재의 단식은 군사정권에 항거한 정치적인 명분을 지닌 단식이었다. 그 자체로 독립변수였다. 이와 비교하면 문재인 의원의 단식은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한 단식이었다. 김영오씨가 단식을 그만뒀기 때문에, 세월호 특별법의 진전이 없는데도 단식을 그만뒀다는 것은 세월호 정국에서 대선후보였던 그 또한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정치적 유불리 떠나 훗날 평가 받을 것”

그의 단식으로 유가족과 새정치연합의 관계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단식 9일째 밤, 종종 찾아오던 한 무리의 할아버지들이 문재인 의원의 천막을 다시 찾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4~5명은 그의 천막 앞을 왔다갔다 배회하면서 한 마디씩 툭툭 내뱉었다. “저리 가려놓고 있는데 안에서 뭘 먹고 있는지 누가 아나.” “나도 부산 사람인데 어디 한 번 문재인 얼굴 좀 보자.” 노인들의 시비가 계속 이어지자 유가족 대책위 상황실에서 상황실장이 뛰쳐나왔다. 상황실장은 노인들을 천막 앞에서 광장 끝쪽으로 몰아낸 뒤 경찰에게 이들을 내맡겼다.

문 의원의 단식에 유가족들의 마음은 좀 누그러졌을까. “솔직히 그렇게 시비 걸고 가는 사람들과 똑같은 마음이다. 여당은 여당이라고 치고 야당이 우리를 두 번이나 울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다만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에 예의를 지키는 것뿐이다. 처음에 찾아온 날도 쓴소리 많이 하고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이제 와서 다 늦게 왜 찾아왔냐고 했다. 지금 나이도 많은데 단식하는 것 보면 가슴은 아프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누그러진 것은 아니다. 그냥 지켜볼 뿐이다.” 그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에게 새정치연합은 여전히 불신의 존재다.

8월 28일 발표한 갤럽 여론조사는 단식 열흘 이후 그에게 남은 정치적인 성과는 별로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의원의 단식을 ‘좋지 않게 본다’는 응답자가 64%, ‘좋게 본다’는 응답자가 24%에 불과했다. 그의 광화문 천막을 찾은 한 지지자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상적으로 보이면서도 현실적이었는데, 문재인 의원은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이상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열흘, 문재인 의원은 그런 세간의 정치적인 왈가왈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8월 늦더위로 찌는 듯한 천막 안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밤 11시 30분에 광화문역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고 조용히 하루를 마쳤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문재인 의원이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떼고 정치를 했고 ‘생명’이라는 가치를 먼저 이야기했다. 지금이야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지난 열흘간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난 단식을 유권자들은 기억할 것이고, 언젠가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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