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진 윤석열 대권 행보, 출마 선언 임박했나

2021.06.12 10:05 입력 2021.06.12 15:43 수정

‘장모가 10원 한장 피해준 것은 없느냐’는 공격적인 질문에는 과거처럼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의원들과 연쇄 면담을 한 사실을 두고 제3지대 출마-보수야권 단일화 시나리오를 포기하고 국민의힘 입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관측에 제동을 건 것은 윤 전 총장 측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수사를 윤 전 총장은 반대했다”는 것이 사실일까.

선거전문가들 “지금도 늦었다”… 2012년 ‘안철수 현상’과 차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하고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하고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선 출마 선언이 임박한 걸까. 아니면 페이스 오버일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대선 출마에 대해 본인 입으로 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가 취재진 앞에 직접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난 4·7 재보궐선거 투표장에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나와 투표한 뒤 두달 만에 처음이다.

6월 9일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윤 전 총장에게 취재진이 먼저 물은 것은 ‘국민의힘 주자로 대선 출마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답은 이렇다.

“오늘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차차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재차 ‘개관식 참석을 사실상 대권행보로 보면 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국민의 기대와 염려를 제가 다 경청하고 알고 있다. 지켜봐 주길 부탁한다.”

■ 두달 침묵 끝 발언 “차차 보면 알 것”

기자들의 질문에 앞서 그가 준비한 이날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방문의 의의에 관한 워딩은 이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우당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왔다. 여러분들이 다 알다시피 우당 가족은 항일 무장투쟁에 힘써왔다. 6형제 중에 살아서 귀국한 분은 이시형 선생 한분이다. 나머지 가족은 고문과 영양실조로 다 돌아가셨다. 우당 선생과 가족의 삶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생하게 실현한 삶이었다. 한 나라가 어떠한 인물을 배출하느냐와 함께 어떤 인물을 기억하느냐로 존재를 드러낸다고 했다. 우당 선생 기념관 개관이 굉장히 뜻깊고 반갑다.”

윤 전 총장의 워딩 중 언론이 주목할 대목은 국가의 정체성과 운영에 대한 언급이다.

6월 5일 현충원 방문 때 그가 방명록에 적은 “희생하신 분이 분노하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과거 검찰에 머물렀던 자신의 시야를 나라, 국가의 운영으로 확장해보고 있다는 메시지다. 통치의 언어이자 통치자, 대통령에 각을 세우는 언어다.

그러나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현장은 전쟁터다.

윤 전 총장의 이날 행보는 이미 오전부터 SNS를 통해 예고돼 있었다. 빨간 우산을 쓴 ‘열지대’라는 지지단체들의 “윤석열 대통령” 연호와 윤 전 총장의 정치참여를 반대하는 시사정치 유튜버들의 장모·처와 관련된 의혹 질문 공세가 섞여 소란이 일었다. 지지·반대자들의 설전은 폭력사태 일보 직전까지 갔고, 경찰까지 출동했다.

이날 행사 참여는 최근 빨라진 윤 전 총장의 행보에서 정점을 찍었다.

특히 6월 들어 거의 매일 측근의 입을 빈 윤 전 총장의 소식이 언론을 도배했다. 절대적인 보도 양과 행보만 놓고 보면 출마 선언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인 직접 등판 전 ‘윤석열 메시지’는 혼선을 빚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기념관으로 이동 중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기념관으로 이동 중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대표적인 것이 하루 전 윤 전 총장이 정진석 의원 중심의 모임인 ‘열린 토론, 미래’에 참석하려다 철회했다는 동아일보 ‘단독’보도다. 보도 전후 사정을 알아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보다. ‘윤석열이 오기로 했다’며 동아일보 측에 이야기했다는 국민의힘 관계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유력 대권주자이자 영입대상인 윤석열을 국민의힘 의원 주최토론회에 부른다는 발상 자체를 누가 하겠는가.”

정진석 의원 측의 반응이다. 정 의원 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 행사는 과거 40여차 가깝게 행사를 진행하다가 코로나19 정국으로 중단한 뒤, 다시 ‘시즌2’를 시작하면서 첫 회로 연 행사였다.

“첫 토론주제가 자영업 문제였고, 그래서 몇명의 초청연사를 두고 논의하다 부르기로 한 것이 윤 전 총장이 최근 만난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소장이었다. 그런데 ‘윤석열이 안 되니 꿩 대신 닭이라고 권순우를 불렀다’는 건 누가 확인해준 이야기인가. 내부사정을 모르는 인사가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되는 것인가.”

정진석 의원 측의 설명이 맞다면 전혀 다른 맥락에서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 윤 전 총장의 입당 또는 적어도 관련해 ‘윤석열 충청대망론’을 적극 펴고 있는 정진석 의원에 대한 당내 거부 기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 ‘윤석열 메시지’ 혼선의 막전막후

6월 7일 윤 전 총장의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윤 전 총장의 뜻은 “국민의 여망을 받아 국민의 뜻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결정할 것이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말을 전하며 “윤 전 총장 본인의 확인을 거친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윤 전 총장 측 인사 중 그와 소통이 확인되는 인사로는 이 교수가 유일하다(6월 9일, 윤석열 측은 이동훈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공보담당자로 임명했다)

6월 9일 우당 이회영 기념관 방문도 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기념식 안내문자를 보고 윤 전 총장으로부터 ‘관심이 있다. 가도 되냐’는 전화가 와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오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사회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의 포지션이다. 이날 행사장에는 6촌 형제의 맏형 격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 이외에도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등이 참석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계열 독립운동가다. 공산주의도 반대했지만, 임시정부의 외교주의적 노선도 비판적으로 봤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에서 비주류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정치영역으로 넘어와서는 현 집권당인 민주당 계열에 가깝다.

이날 행사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주경 의원도 참석했지만,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이상민 의원 등도 참석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정당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지만 DJ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역임한 이종찬 전 원장이나 이철우 교수 역시 과거에는 친 민주당 인사에 가까웠다. 이른바 조국 문제가 터졌을 때 죽마고우였던 이 교수가 윤 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게 수사하면 안 된다”며 한 시간 넘게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의 한 지인은 “실제 이 교수가 영국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조국 전 장관의 부인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해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지난해 이종찬 원장과 칩거하던 윤 전 총장의 만남도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다’는 윤 전 총장의 요청을 이 교수가 받으면서 이뤄진 것으로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윤석열의 행보를 보면 이전의 정치진영을 자신을 중심으로 갈라치기하는 탁월한 정무감각의 보유자”(문재인 정부 청와대 고위직을 역임한 인사)로 볼 수 있다.

윤 전 총장의 행보를 보다 보면 묘하게 겹쳐 보이는 장면이 있다. 2012년 대선에 정당없이 출마 선언을 강행했던 안철수의 행보다.

그가 출마 선언을 한 것은 9월 19일이었다. 만약 윤 전 총장이 독자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정치시간표상 고려해야 할 최종시한이다.

“윤석열 정치에 관여할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검찰이나 법조계 출신 인사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2012년)의 안철수는 달랐다. 법륜 스님이나 박경철처럼 스님·의사 등 ‘정치적 경험이 약한 사회명사’들이었다. 반면 윤석열은 다르다. 이 정부와 싸우면서 다양한 정보망을 구축했다. 행보를 보면 이쪽 수를 읽으면서 선대응하는 전략통이 주위에 있다.”

앞서 이 정부 청와대 고위직 출신 인사의 말이다. 이 인사는 지난 2012년 안철수가 대선 출마 결심했을 때 초창기 멤버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는 안철수가 어필할 수 있었던 게 정치 밖의 신선함이었다면 지금 윤석열은 여야를 통틀어 이미 만들어진 기성질서를 기반으로 정권뒤집기가 실제로 가능한 세력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국민적 열망뿐 아니라 실행능력도 갖추고 있다. 공정을 내걸면서 비공정을 쳐내버리겠다는 것 아닌가. 반면 안철수는 보수·진보 양체제에 싫증이 난 사람들을 대변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윤석열을 두고 벌어지는 현상은 2012년 안철수 현상과는 다르다.” 과연 그럴까.

“尹, 노무현·박근혜 구속수사 반대… 부친과 朴 유세장 찾기도”

6월 8일 조선일보가 [단독]이라면서 내놓은 기사다. 6월 중순 발간 예정인 책 <별의 순간은 오는가- 윤석열의 어제, 오늘, 내일>이 밝히고 있는 ‘팩트’라는 것이다. 책의 주장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특검에 있을 당시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은 “차기 정권에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법적으로 다퉈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에 불구속을 핵심기조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따르면 윤 전 총장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수사 때도 불구속 수사를 건의했다.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서 만난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과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서 만난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과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은 버스를 놓치고 있다”

책을 쓴 천준 작가(천준은 필명이다. 그는 인문교양서 <어른의 교양>를 낸 기술정책학자다)는 6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분(윤석열)이 특별히 박근혜를 봐주기로 했다던가 정치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지 않는다”라며 “봉건적인 도덕률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윤석열은 내용과 형식 구분을 명확히 하는, 한국사회에서 몇 안 되는 막스 베버적 관점에서 근대적 관료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주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총장에게 ‘별의 순간’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경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은 “이번 대선은 윤석열이 어떤 포지션을 취하든 대통령이 되는 게임”이라면서도 “이른바 제3지대 후보로는 한국에서 한 번도 성공한 적 없기 때문에 국민의힘 입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본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에 들어가면 중도층이 빠져나가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중요 대선주자 중 그 실험 자체를 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론조사·정치전문가들의 평가는 아직은 유보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석열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버스를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대선은 9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윤 전 총장은 아직도 정치를 하는지, 대선에 나올 것인지, 입당할 것인지, 제3지대를 구축할 것인지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미국의 버니 샌더스도 25년간 무소속으로 있다가 대선 경선은 민주당에 들어가 했다. 결국 양당제적 성향이 강한 국가에서는 어느 한 편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연구소 소장은 “윤석열의 지지율은 현시점에서는 올라가고 있지만, 상승세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최근 보이는 애매모호한 행보는 국민이 원하는, 즉 원칙적이고 선 굵은 정치를 기대하는 윤석열 스타일과도 안 맞는다”고 말했다. 현재 윤석열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본인이 어딘가를 방문해 누군가를 만나는 행보 때문이 아니라 민주당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 때문인데 최근 드러나는 윤석열의 행보는 전형적인 ‘여의도 정치의 B급 정치기술’이라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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