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쌀 수탈 아닌 수출” “임시정부는 단체”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하며 독립운동 폄훼

2024.08.13 06:00 입력 2024.08.13 06:03 수정

뉴라이트 공직자들 역사관

2020년 4월 유튜브에 출연한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오른쪽)과 이명희 이사(왼쪽).  유튜브 와이타임즈 갈무리

2020년 4월 유튜브에 출연한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오른쪽)과 이명희 이사(왼쪽). 유튜브 와이타임즈 갈무리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은 일제시기 농민의 궁핍을 엉뚱하게도 일제가 쌀을 수탈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수출한 것인데도 말이다.”(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1990년대 중반 (교과서) 준거안 파동이 일어난다. 역사 용어도 바꾼다. 일제강점기란 말은 북한에서 나온 역사 서술 용어인데 그때부터 들어와서 현재 교과서 용어로 정착됐다.”(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교과서의 역사 서술 문제를 지적하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뉴라이트 학자로 분류된다는 점,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공공기관장을 맡게 됐다는 점이다. 김낙년 한중연 원장은 2019년 7월 종군 ‘위안부’ 강제성을 부정하고 ‘독도가 한국 영토로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해 논란을 일으킨 책 <반일 종족주의>의 공저자로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중심인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10년간 소장을 맡았고 지난 7월 한중연 원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5월 취임한 허동현 위원장은 교과서포럼·한국현대사학회 등 보수성향 단체에서 활동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두 사람 같은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역사·교육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직에 대거 등용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바꾸겠다는 거대한 작전”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주요 공직을 맡게 된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논란 발언을 모아봤다.

식민지 근대화론

논란이 된 발언 중 대다수는 역사를 식민사관, 식민지 근대화론 관점에서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현대 한국의 경제적·정치적 성장이 일제에 의해 비롯됐다는 역사 관점이다. 김낙년 원장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수출한 것”이라며 “그들(교과서 집필자)은 거짓말이라도 만들어내서 일제를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 교육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주장했다.

허동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4년 제7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학술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동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4년 제7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학술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동현 위원장은 2013년 8월 21세기청년아카데미 워크숍에서 “1990년대 중반 (교과서) 준거안 파동이 일어난다. 역사 용어도 바꾼다”며 “일제강점기란 말은 북한에서 나온 역사 서술 용어인데 그때부터 들어와서 현재 교과서 용어로 정착됐다. 한국 현대사 교과서가 왜곡돼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일제 강점’이란 표현은 1948년 기사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된 용어다. 그는 2014년 10월 ‘일제시기 역사교과서 서술의 쟁점과 문제’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는 “1926년 김구와 김창숙, 두 민족 운동의 지도자들도 ‘폭력’을 독립운동의 한 방향으로 택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도 문제가 됐다. 독립운동가 훈격을 재심사하는 국민공감위원회의 위원인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는 2016년 3월 한 간담회에서 “임시정부 수립 당시는 일제 강점기여서 선거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임시정부는 정부가 아닌 민족운동단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는 2008년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진에 참여한 바 있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가 일본군을 따라갔다’ 등의 표현으로 논란이 됐던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가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역사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성명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당시 “성명을 발표할 때 교과서가 나왔던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야당은 “성명서는 9월11일 발표했고 책은 8월30일에 나왔다”고 반박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월11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월11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승만·박정희는 미화···민주화운동은 폄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도 뉴라이트 인사들의 특징이다. 뉴라이트 학자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은 2020년 4월 한 유튜브채널에서 ‘초등교과서에 파고든 좌파 이념교육’을 주제로 한 대담에 출연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승만 대통령도 처음부터 독재를 한 분으로, 박정희 대통령도 독재를 위해서만 정치를 한 분으로 묘사가 돼서 아이들이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처럼 세습까지 하는 독재와 박 대통령을 똑같이 그렇게 묘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박 대통령이 했던 이유는 안보와 산업 발전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대담자로 나선 이명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도 “헌법을 바꾸고 대통령을 여러 번에 걸쳐서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걸 독재정치라고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이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등을 저질렀음에도 독재임을 부정한 것이다. 이 이사는 뉴라이트 학자이자 2013년 ‘친일·독재미화’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자였다.

뉴라이트 인사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위원장은 <박정희 새로 보기> 집필진으로 참여했는데 소제목 중 하나가 ‘5000년 역사의 물길을 바꾼 박정희 정부의 대전환 드라마’이다. <이승만 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이라는 책에서는 “국민이 물러나란다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독재자를 보셨나”라고 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건국에 대한 책을 최소 7권 이상 집필했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한국이 낳은 최고의 지식인, 박정희 대통령보다 ‘더 천재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독재에 대한 미화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로 이어지기도 했다.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은 2006년 대안교과서 시안에서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표현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축소해 논란이 됐다. 헌법 전문에 수록됐거나 여야가 공히 전문 수록에 동의하는 민주화운동들의 의미를 부정한 것이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지난해 5월 한 역사 세미나에서 이승만 정부 시절 제주 4·3사건에 대해 “남로당의 5·10 선거 방해책동에서 비롯된 폭동을 희석하기 위해 (역사계가)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희 이사는 2013년 집필한 교학사의 역사교과서에서 이승만 정부 시절 제주 4·3사건을 ‘폭동’이라고 정의했고, 2013년 6월5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남로당 사람들의 폭동이었던 것이 4.3 사건”이라고 말했다. 4·3사건 북한 지시설은 일부 극우단체들의 주장으로, 학계는 근거 부족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광동 위원장은 과거 논문 등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가능성 있는 의혹’으로, 계엄군의 5·18 헬기 사격을 ‘허위사실’로 규정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차기환 진화위 비상임위원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 비하, 5·18 폄하·왜곡, 백남기 농민 관련 음모론 제기 등 극우적 언행으로 논란이 됐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사진을 올리고 “좌익은 이 사진을 유포하면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선동질을 했고 그게 먹혀들어 간 사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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