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막말이 도를 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외계인” “살모사” “꼬붕” 등 저질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팬덤정치가 정치 저질화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외계인 같다” “징그럽다”고 외모 품평을 해 논란이 됐다. 진 정책위의장은 지난 6일 김어준씨 유튜브에 출연해 “외계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며 “얼굴 생김이나 표정이 편안하고 자연스럽지 않고 많이 꾸민다는 느낌이 들어 어색하게 느껴지고 징그러웠다”고 했다. 그는 한 대표의 키에 대해서도 “그날도 키높이 구두 같은 것을 신은 것 같더라. 정치인 치고는 굉장히 요란한 구두였다”고 했다.
이에 서범수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귀 당 특정인을 ‘살모사 같아서 징그럽다’고 하면 어쩌겠는가”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인신공격성 발언”이라며 “수준 낮은 비하 발언에 대해 정중히 사죄하라”고 촉구했고, 진 정책위의장은 “과한 표현으로 불쾌감을 드렸다면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며 사과했다.
“또라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일 김용현 국방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저서인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에 나오는 ‘평화혁명론’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에 비유하자 박범계, 김민석, 박선원 등 민주당 의원이 반발하며 “또라이”라고 했다는 것이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12일 세 명의 의원들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여야가 서로 “빌런(악당)”, “꼬붕(부하를 뜻하는 비속어)” 등 막말을 주고받는 일도 있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4일 민주당이 단독으로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을 법사위에 상정한 것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을 향해 ‘빌런’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정 위원장은 지난 5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그런 악당 위원장과 회의를 하는 여러분은 악당의 꼬붕”이라고 맞받았다.
상대 당을 “나치”라고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이 계엄 의혹을 이어가는 것을 비난하며 “야권의 선전 선동이 나치의 방식과 비슷하다”고 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도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이 대표가 계엄 의혹을 언급한 데 대해 “나치, 스탈린 전체주의의 선동정치를 닮아가고 있다”며 “근거가 없다면 (민주당을) 괴담유포당, 가짜뉴스 보도당이라고 불러도 마땅하다”고 했다. 통상 매우 정제된 언어를 쓰는 대통령실 대변인의 입에서 ‘나치’ ‘괴담유포당’ 같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5일 22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막말금지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추 원내대표는 “제가 국민들로부터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며 “국회의원들은 우리보다 많이 배우고 잘난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정치인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잘 안 쓰는 막말을 마구하더라. 그런 사람들이 우리 국민의 대표라니 창피하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며 “명예를 훼손하는 막말과 폭언, 인신공격, 허위 사실 유포, 근거 없는 비방, 정쟁을 겨냥한 위헌적인 법률 발의를 하는 나쁜 국회의원들은 강하게 제재를 하자”고 제안했다. 영국 의회는 멍청이, 거짓말쟁이, 겁쟁이, 배신자 같은 단어도 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독일 의회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발언에 대해서는 면책특권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이처럼 도를 넘는 막말이 이어지는 까닭은 팬덤정치의 심화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인들이 여야할 것 없이 강성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며 이들이 원하는 극단적인 언어를 내뱉고 있다는 것이다.<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를 쓴 박상훈 전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14일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하며 “팬덤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의 저질화”라며 “팬덤 지지층에게 소구하려다 보니 정치가들 스스로 말이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박 전 위원은 정치인들의 막말 현상에 대해 “정치가가 말을 상스럽게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범죄”라며 “사회의 갈등을 완화하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반대로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위원은 “어느 나라 국회에도 ‘의원 품위 규칙(Rules of Decorum)’이 있지만 우리나라 국회는 의원 품위 규칙이 강조되지 않아서 의원들의 수준이 시민들보다 떨어지는 일이 자꾸 생기고 있다”며 “정당이 스스로 규제를 강화하는 등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