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농업·농촌 정책 설계자로 통하는 한두봉 농촌경제연구원장이 다른 사람의 학술지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끼워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학술지의 발행인인 한 원장이 당초 논문에 ‘피인용자’로 언급됐으나 돌연 저자 명단에 추가됐다는 것이다. 논문의 교신저자는 현 농경연 실장으로, 한 원장과 업무상 상하 관계에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농경연이 발간하는 <농촌경제> 제47권 제2호(지난 7월 발간)에는 ‘양곡 소비량 조사 진단과 개선 방향’ 논문이 실렸다. 한 원장은 이 논문의 최초 투고 요청시(5월8일)에는 저자 명단에 없었으나, 편집위원회가 논문 게재를 최종 확정(6월27일)하고 12일 뒤인 7월9일 저자 명단에 추가됐다.
<농촌경제>는 농경연이 1978년부터 발행해온 학술지로, 농업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술지다.
한 원장은 윤 정부의 농업·농촌 정책 설계자로 통한다.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농림해양수산정책분과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이후에는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23년 6월부터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료를 보면 저자들이 지난 6월7일 심사 의견서를 반영해 논문 수정을 완료하고, 심사 의견을 종합해 ‘수정 후 게재 가능’으로 편집위원회에 상정한 때에도 저자 명단에는 변동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게재 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된 6월27일에도 한 원장의 이름은 저자 명단에 없었다. 하지만 논문 게재가 확정되자 저자 명단에 한 원장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에 대해 농경연은 조 의원실에 “한 원장이 유사한 취지의 기고문을 쓴 적이 있고, 논문의 교신저자가 기여를 인정해 저자 추가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교신저자가 한 원장의 기여도가 ‘논문사사’(Acknowledgement)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해 저자 추가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교신저자이자 현재 한경연에서 실장을 맡은 A씨 측은 지난 7월9일 각주 및 참고문헌에 표기했던 한 원장 기고문을 일괄 삭제하고, 저자에 추가해달라고 <농촌경제> 측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의 기고문은 지난 3월10일 한 원장이 한 신문사에 기고한 칼럼이다. 이 칼럼에서 한 원장은 양곡 소비량 조사의 한계점들을 지적하며 “만성적인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곡소비량 조사의 한계를 진단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양곡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조 의원실은 유사한 취지의 기고문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논문에 기여했다고 판단하기 어려우며, 실제 기여가 있었다면 투고 또는 심사 과정에서 저자 명단에 추가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한 정도로는 저작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타인의 논문을 자신의 단독 또는 공동 논문으로 포함해 승진심사에 제출하면 그 영향의 정도와 관계 없이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 공헌 및 기여가 없는 사람을 저자에 포함하는 행위는 ‘부당한 저자 표시’로, 국가연구개발혁신법 및 시행령,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연) 연구윤리 규정 등에서 금지하는 ‘연구부정 행위’이기도 하다.
농경연 내부 청원 게시판에는 지난달 30일 원장의 행위에 대한 적절성 검토, 게재 과정 공개, 관련 규정 개선 등을 요구하는 청원이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1일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도 ‘학술지 발행인이 논문 저자라? 그래서 실렸나?’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고, ‘농촌경제의 권위를 한순간에 짓밟았다’ , ‘한국연구재단에 논문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는 등의 성토가 이어졌다.
조 의원은 “연구자들의 사기를 북돋고 연구윤리를 확립해야 할 기관장이 앞장서 연구윤리를 훼손하고 연구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파렴치한 행태”라며 “농경연을 감독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무조정실은 한두봉 원장의 연구 부정에 대한 긴급 조사를 실시하고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