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어딘가 있을 외계인에게 ‘인류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2019.12.05 20:48 입력 2019.12.05 20:53 수정
이명현

SETI 넘어 METI 논쟁

SETI -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METI - Messaging to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39)어딘가 있을 외계인에게 ‘인류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세티 과학자들은 전파망원경을 사용해 외계지적생명체가 만들어냈을 전파신호를 찾고 있다

|수동적으로 신호를 수신하는 ‘세티’에서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인류의 전파를 송신하자는 ‘메티’를 두고 논란이다

|호킹 박사는 반대했다. 인류가 기계인간으로 진화해 마음껏 우주를 여행하는 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이다. 그냥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

외계지적생명체를 탐색하는 과학적 작업을 통칭해 ‘세티(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SETI)’라고 한다. 지구 밖에 존재할 지적능력을 가진 외계생명체를 찾아보려는 작업이다. 이런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를 세티 과학자라고 부른다. 몇 갈래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주된 작업은 전파망원경을 사용해 외계지적생명체가 보냈을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포착하는 것이다.

150년 전쯤 외계인 천문학자가 전파망원경을 사용해 지구를 관측했다고 생각해보자. 당시 지구에는 인공적인 전파를 만들어내는 텔레비전, 라디오, 휴대폰 같은 장치가 없었다. 지구는 태양의 빛을 반사해 그 존재를 알리는 천체인 행성이다.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뿐 아니라 전파를 비롯한 모든 파장의 빛도 반사를 한다. 외계인 천문학자는 그들의 망원경을 사용해 태양 빛을 반사한 지구를 관측할 것이다. 전파망원경을 사용하면 지구가 반사하는 전파를 수신할 수 있을 것이다. 외계인 천문학자의 전파망원경에 지구로부터 온 전파가 포착됐다고 해보자. 이 전파신호는 오로지 태양의 전파를 반사한 지구의 전파신호일 것이다. 자연적 전파신호인 것이다. 150년 전의 외계인 천문학자는 지구에서 인공적인 전파신호가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을 바탕으로 지구에는 전자기기를 만들어낼 만한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지적생명체가 지구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전파를 송수신할 만한 인공적인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외계인 천문학자가 지금 지구를 관측한다고 생각해보자. 150년 전과는 다르게 텔레비전, 라디오, 휴대폰 같은 전자장치에서 발생한 인공적인 전파신호가 자연적인 전파신호와 함께 관측될 것이다. 지구에서 외계지적생명체를 향해 송신한 의도적인 전파신호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외계인 천문학자는 이런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에는 지적능력을 갖고 있는 생명체가 존재해 전자기기를 만들어냈다고 추론할 것이다. 지구에 지적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세티 과학자들은 전파망원경을 사용해 외계지적생명체가 만들어냈을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포착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과학적인 세티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전파망원경을 사용한 인공적인 전파신호 포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티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있겠지만 외계지적생명체들이 많은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발생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티 과학자들은 자신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텔레비전, 라디오, 휴대폰으로부터 발생한 인공적인 전파신호가 지구 밖으로 나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들의 존재를 외계지적생명체에게 알려야 할 것인가’ 하는 논쟁이 벌어졌다. 의도적으로 만든 인공 전파신호를 보낼 것이냐 하는 문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메티 인터내셔널(METI International)의 홈페이지 첫 화면. 메티 인터내셔널은 외계지적생명체에게 인공 전파신호를 보내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제 비영리단체다. 세티연구소의 더글러스 바코치 박사가 회장이다.  메티 인터내셔널 캡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메티 인터내셔널(METI International)의 홈페이지 첫 화면. 메티 인터내셔널은 외계지적생명체에게 인공 전파신호를 보내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제 비영리단체다. 세티연구소의 더글러스 바코치 박사가 회장이다. 메티 인터내셔널 캡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스티븐 호킹은 세티 프로젝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 바 있다. 호킹은 세티 프로젝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지지하는 과학자였다. 이 주제로 책을 쓰기도 했다. 호킹 박사가 걱정하는 맥락은 그 바탕이 되는 가치관을 살펴봐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밝지 않게 봤다. 현재 인류는 탄소화합물을 기반으로 한 생명체다. 우주여행을 하는 데 적합한 형태는 아니다. 호킹 박사가 생각하기에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여러 자연적·인위적 재앙 때문에 멸종의 시기는 언제든 가능한 것 같다. 호기심 많은 그에게 우주는 넓고 지구는 좁고 인생은 더 짧으니 답답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우주로 나아가 우주와 호흡하고 싶은 것이 호킹 박사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우주를 여행하면서 우주를 만끽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인류가 기계와 결합한 형태의 신인류로 거듭나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기술적인 발달도 있어야 하지만 시간도 필요하다. 물론 가능한 일인지도 가늠할 수 없긴 하다. 어쨌든 시간이 필요하다.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포착하는 세티 프로젝트나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구에서 발생한 인공적인 전파신호가 외계지적생명체에게 포착됐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있을 것이다. 가장 비약적인 상상은 외계지적생명체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지구를 위협하게 되는 경우다. 호킹 박사의 입장은 기계인간으로 인류가 진화해 우주여행을 마음껏 하고 우주로 뻗어나가고 싶은데 괜히 외계지적생명체에게 우리가 알려져 혹시라도 문제가 일어나 멸종한다면 큰일이라는 것이라고 하겠다. 당분간 조심하면서 조용히 지내자는 것이다.

호킹 박사가 발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소수지만 수동적으로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수신하는 세티 프로그램 자체가 위험하다는 견해도 있다. 능동적으로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보내는 작업이 자칫 우리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호킹 박사의 발언으로 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세티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의도적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세티 과학자들은 1974년 이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최초로 외계지적생명체를 향해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송신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세티 과학자들은 1974년 이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최초로 외계지적생명체를 향해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송신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수동적으로 외계지적생명체의 인공적인 신호를 포착하는 세티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세티 과학자들은 별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텔레비전, 라디오, 휴대폰같이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구를 벗어나는 인공 전파신호도 통제하자는 작은 목소리가 있지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외계지적생명체를 향해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만들어 보내는 작업에 대한 논의가 문제의 핵심이다.

수동적인 세티 프로젝트에 대비해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의도적으로 보내는 작업을 능동적 세티(Active SETI)라고 한다. 요즘은 이 용어보다는 ‘메티(Messaging to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METI)’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티 과학자들 사이에서 의도적인 인공 전파신호를 보내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 인공적인 전파가 송신됐다. 1974년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을 사용해 지구 밖으로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만들어 송신했다. 프랭크 드레이크를 비롯한 세티 과학자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62년 금성을 향해 인공 전파신호를 보내는 시도가 있었다. 아레시보 메시지를 보낸 이후 1999년의 코스믹 콜1(Cosmic Call 1) 프로젝트를 비롯해 최소한 열 차례가 넘는 메티 프로젝트가 수행됐다. 세티 과학자들의 합의에 의해 조직적인 관측이 수행된 세티 프로젝트와는 달리 메티 프로젝트는 소수의 관심과 열정이 있는 세티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런 만큼 메티 프로젝트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2010년 세티연구소의 더글러스 바코치(Douglas Vakoch) 박사가 메티 프로젝트에 대한 일부 세티 과학자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세티와 메티 프로젝트를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토대에서 다시 고찰할 것을 촉구했다. 이 시점부터 간헐적으로 논쟁에 부쳐졌던 ‘메티 논쟁’이 시작됐다.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메티 논의가 시작됐다고 하겠다.

2015년 열린 미국 과학진흥협회 회의에서 바코치를 비롯한 세티 과학자들이 모여 어떤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송신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공개적으로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분교의 버클리 세티연구소 앤드루 시미온(Andrew Siemion)을 포함한 세티 커뮤니티의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한 성명서가 발표됐다. ‘외계지적생명체에게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보내기 전에 전 세계적으로 과학적, 정치적, 인도주의적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티와 메티 프로젝트가 세티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라는 인식을 표출한 것이다. 모든 세티 과학자들이 똑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바코치나 시미온의 의견도 몇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세티연구소의 세스 쇼스탁(Seth Shostak) 박사도 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역시 2015년 뉴욕타임스에 이와 관련된 의견을 담은 칼럼을 썼다. 그의 견해는 인터넷에 소통되고 있는 정보를 몽땅 송신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외계지적생명체에게 추론할 수 있는 적절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견해다. 여전히 메티 프로젝트에 대해 거리를 두려는 세티 과학자로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보내는 것이 전 우주적인 세티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길이라고 촉구하는 메티 과학자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다.

외계지적생명체에게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보내는 작업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이고 광범위하게 시작된 2015년 이 문제를 좀 더 전문적이고 적극적으로 다루기 위한 국제 비영리단체가 설립됐다. 바코치를 회장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메티 인터내셔널(METI International)이 성립됐다. 외계지적생명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주체에 대한 논쟁을 비롯해 그 시기와 방법 같은 주제가 이 단체가 다루고 있는 주요 의제다.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보낸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에 대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과학적인 세티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세티와 메티 프로젝트가 제한된 세티 과학자들의 작업을 넘어 전 인류의 보편적인 이슈로 나아가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 필자도 메티 인터내셔널의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왜, 어떻게, 언제, 누가 보내야 할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필자 이명현

[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39)어딘가 있을 외계인에게 ‘인류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를 애독했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스페이스> <빅 히스토리 1>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과학책방 ‘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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