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전 폭발 대참사 ‘수소 비행선’…현대 기술로 다시 날아오를까

2021.12.19 21:23 입력 2021.12.19 21:24 수정

미국 ‘H2 클리퍼’, 1937년 폭발 뒤 퇴출된 수소비행선 설계에 본격 나서

경제성 좋고 기후변화 대응 유용…가벼운 용기로 수소 가연성 억제 관건

미국 기업 ‘H2 클리퍼’가 설계 중인 비행선 상상도. 2024년 시험 비행을 할 예정이며, 공중에 떠 있기 위해 수소를 동체에 채운다. 회사 측은 이 비행선을 쓰면 대륙 간 화물운송 비용을 비행기의 4분의 1로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H2 클리퍼 제공

미국 기업 ‘H2 클리퍼’가 설계 중인 비행선 상상도. 2024년 시험 비행을 할 예정이며, 공중에 떠 있기 위해 수소를 동체에 채운다. 회사 측은 이 비행선을 쓰면 대륙 간 화물운송 비용을 비행기의 4분의 1로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H2 클리퍼 제공

2013년 한국에서도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어느 비행사에 대한 추억>의 이야기는 가상 국가인 레밤 황국에서 벌어진 ‘요인 수송 작전’을 뼈대로 한다. 황태자비에 오를 고위층 여성인 ‘파나’를 전쟁 중인 적국의 눈을 피해 황태자에게 데려다줘야 하는 이 나라 공군은 에이스 조종사 ‘샤를르’를 차출한다. 비행기 전·후방석에 탑승한 두 사람은 1만2000㎞를 비행하면서 적의 공격 앞에 죽음 직전까지 내몰리지만, 결국 마음을 합쳐 역경을 이겨낸다는 줄거리다.

전형적인 로맨스물이긴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바로 공중전이다. 샤를르가 화려한 회피 기동을 하다 각종 화기로 무장한 거대한 적 비행선에 미사일을 퍼붓는 장면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액션의 밀도가 높다.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던 진짜 비행선에 해상 군함의 특징을 가미한 듯한 적 비행선은 샤를르 일행과 끊임없이 숨바꼭질을 한다.

바닷물에서 뽑아낸 수소를 비행기 연료로 사용하는 등 과학기술 측면에서 판타지 요소가 많은 이 영화에 비행선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점은 눈에 띈다. 비행선 역시 현실에선 상상의 영역이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을 풍미했던 비행선이 자취를 감춘 계기는 1937년 5월6일 미국 뉴저지주에서 일어난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호 폭발 사건이었다. 부력을 얻으려고 동체에 채운 가연성 기체 수소에 불이 붙으면서 탑승자 97명 가운데 35명이 사망한 대참사였다.

■ “3년 뒤 수소 비행선 비행”

그런데 힌덴부르크호 폭발 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수소를 채운 비행선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주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 등 외신은 미국 벤처기업인 ‘H2 클리퍼’가 수소를 충전한 비행선 설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전했다. 이 회사의 목표는 2024년에 수소 비행선 시제품을, 2027년에는 실물 크기의 대형 비행선을 띄우는 것이다. 완성된 대형 비행선의 운항을 가정해 회사 측이 인터넷에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비행선은 유선형 동체를 갖췄고, 추진력을 일으키는 프로펠러 5기를 장착했다. 길이는 100여m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H2 클리퍼가 수소 비행선을 만들려는 건 화물 운송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어서다. 한번에 화물 150t을 옮길 수 있도록 건조할 예정인데, 이는 미국 공군의 대형 전략수송기 ‘C-17’ 화물 탑재량(77t)의 두 배에 육박한다. 순항 속도는 시속 280㎞에 이른다. 비행기를 제외하고 선박이나 자동차, 기차 등 어떤 교통수단보다 빠르다. 항속거리도 길다. 한 번 뜨면 최대 9600㎞를 난다. H2 클리퍼는 이 비행선의 능력을 종합하면 대륙 간 화물 운송비용을 비행기의 4분의 1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H2 클리퍼는 수소 비행선이 기후변화 대응에도 유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행선을 띄우는 데에는 수소 가스를, 추진력을 얻는 데에는 수소연료전지로 돌아가는 프로펠러를 쓰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호가 1937년 5월6일 미국 뉴저지주에서 착륙 도중 화재에 휩싸인 모습. 동체에 채운 수소가 폭발한 것이 원인이었으며, 탑승자 97명 가운데 35명이 사망했다.  미국 해군 제공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호가 1937년 5월6일 미국 뉴저지주에서 착륙 도중 화재에 휩싸인 모습. 동체에 채운 수소가 폭발한 것이 원인이었으며, 탑승자 97명 가운데 35명이 사망했다. 미국 해군 제공

■ 폭발 방지 기술 쓰겠다지만…

문제는 수소의 가연성을 억제할 수 있느냐이다. 미국과 유럽 당국은 비행 물체를 띄우는 용도로 수소를 쓰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아 놨다. 대체재는 헬륨이다. 헬륨은 수소보다 67배나 비싸지만 중량은 수소와 비슷할 정도로 가볍고, 무엇보다 폭발하지 않는다.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대형 비행선을 개발 중인 영국 회사 ‘하이브리드 에어비히클스’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비행선 제조업체들은 모두 헬륨을 사용할 예정이다.

그런데 H2 클리퍼는 다르다. 회사 설명자료를 통해 “수소가 가연성이 있긴 하지만 적절한 안전 기술을 활용해 혹독한 환경에서도 폭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소연료전지를 쓰는 자동차가 폭발한 일이 단 한 번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미국 학계 일각에선 비행선을 추진하는 용도로 수소연료전지를 쓰는 건 용인하면서 수소 가스를 동체에 채워 부력을 만드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 건 정책적인 모순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부력을 일으킬 용도로 사용해도 될 만큼 수소가 안전한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한 게 현실이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과학적으로 보면 수소는 불안한 물질”이라며 “비행선을 띄우려고 동체에 수소를 넣는다면 무게를 최소화한 경량 용기를 써야 할 텐데 그럴 경우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튼튼한 용기를 쓰는 일반적인 수소연료전지와는 상황이 다를 거라는 얘기다. 비행선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현실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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