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상의 근원을 파고들어간 데모크리토스의 후예들

2017.07.13 21:07 입력 2017.07.14 19:51 수정
김상욱 |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원자를 연구한 물리학자들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10)세상의 근원을 파고들어간 데모크리토스의 후예들

서양철학사는 탈레스의 말로 시작된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철학 최초의 질문은 만물의 근원, 즉 물리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데모크리토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유사한 답을 찾았다. “관습에 의해 달고 관습에 의해 쓰며, 관습에 의해 뜨겁고 관습에 의해 차갑다. 색깔 역시 관습에 의한 것이다. 실제로 있는 것은 원자와 진공뿐이다.”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세상이 텅 빈 진공과 그 속을 떠도는 원자로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관습, 즉 인간 주관의 산물이다.

■ 만물의 근원은 원자다

데모크리토스는 유물론자였다. 그에게는 세상 모든 것, 즉 영혼조차 원자로 되어 있다. 인간의 사유도 원자로 만들어진 몸에서 일어난다. 원자들은 그냥 빈 공간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 거기에 어떤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원자들의 기계적인 운동이 세상만사를 일으킨다. 고대 그리스시대 철학자의 말이 실험과 수학으로 뒷받침되는 현대물리학과 같은 무게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가 핵심을 짚은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뜨겁거나 찬 것, 그리고 색깔은 관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 실체다. 원자를 알아냈으니 이 정도 오류는 눈감아주기로 하자.

데모크리토스의 눈으로 본 세상은 허무하다. 당신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당신 뇌 속의 신경세포들은 여러 가지 전기신호를 만들어 낸다. 이 문장은 종이신문이나 컴퓨터 화면에 있을 텐데, 이들도 모두 원자로 되어 있다. 신경세포도 원자로 되어 있다. 신경세포의 전기신호조차 원자로 되어 있다. 소듐과 칼륨이온이 신경세포의 세포막을 넘나드는 것이 전기신호다. 이들은 그냥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였을 뿐 거기에 어떤 목적이나 의도는 없다. 지금 이 문장을 읽은 당신도 허무함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으나, 원자들이 움직였을 것은 분명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것일 뿐이다. 원자 자체는 불멸한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누군가의 죽음을 대할 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이처럼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원자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원자를 기술하는 학문을 양자역학이라 한다. 이제부터 양자역학의 세계로 떠나보자.

<b>어서와,물리학은 처음이지?</b> 앨버트 아인슈타인(사진 오른쪽)과 닐스 보어는 현대 물리학의 거두이다. 양자역학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닐스 보어는 원자핵을 도는 전자가 전자기파를 내지 않는다고 가정했으며, 이를 정상상태라고 명명했다. 그 이론은 후에 사실임이 밝혀졌다.

어서와,물리학은 처음이지? 앨버트 아인슈타인(사진 오른쪽)과 닐스 보어는 현대 물리학의 거두이다. 양자역학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닐스 보어는 원자핵을 도는 전자가 전자기파를 내지 않는다고 가정했으며, 이를 정상상태라고 명명했다. 그 이론은 후에 사실임이 밝혀졌다.

■ 원자로 이루어진 세상

사람은 한순간이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숨을 쉰다는 것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것이다. 공기 중을 떠다니는 산소는 산소원자 두 개가 결합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를 산소분자라 부른다. 산소분자가 코를 통해 허파에 다다르면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과 결합한다. 코, 허파, 헤모글로빈 모두 원자로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헤모글로빈은 단백질인데 그 한가운데 ‘철’ 원자를 품고 있다. 철을 공기 중에 놔두면 녹슨다. 산소가 헤모글로빈에 결합하는 것은 철이 녹스는 과정이다. 피의 붉은색은 바로 철이 녹슬어 생긴 색이다.

산소는 반응성이 큰 원자다. 다른 원자를 만나면 바로 결합한다. 따라서 산소가 홀로 몸속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산소가 몸을 이루는 원자들과 마구 결합하여 망가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산소를 활성산소라 부른다. 노화의 주범이며, 죽음의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지만 몸의 모든 세포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소를 필요로 한다. 헤모글로빈은 위험물 산소를 운반하는 특별호송차량인 셈이다. 산소 이외 원자들은 그냥 혈액을 타고 이동한다. 산소만 예외다.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보면 정확히 산소분자에 들어맞는 빈 공간을 가지고 있다. 질소나 염소 같은 다른 분자는 여기 들어갈 수 없다. 산소만을 위한 열쇠구멍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재수 없이 산소와 비슷한 크기의 분자가 오면 실수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일산화탄소가 그 예다. 일산화탄소는 산소원자 한 개와 탄소원자 한 개가 결합한 것으로 산소원자만 두 개 결합한 산소분자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일산화탄소는 독(毒)이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죽는 이유다. 헤모글로빈을 통해 산소가 아니라 일산화탄소가 운반되기 때문이다. 반면, 일산화탄소와 이름이 비슷한 이산화탄소는 이런 문제가 없다. 이산화탄소는 산소원자 두 개에 탄소원자 한 개, 도합 원자 세 개가 모인 구조다. 산소원자 두 개를 위한 공간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세포에 전달된 산소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 내 기관에서 포도당을 산화시킨다. 쉽게 말해 활활 태운다고 보면 된다. 나무가 탈 때 열이 나듯이 포도당이 타면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우리 몸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이렇게 얻는다. 물론 세포, 미토콘드리아, 포도당 모두 원자로 되어 있다. 포도당은 어떻게 얻느냐고? 포도당이 몸 밖에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밥’이라고 부른다. 사실 포도당의 산화는 간단한 과정이다. 포도당에 있는 전자 두 개가 산소로 이동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산소는 고작 포도당의 전자 두 개를 빼앗으려고 헤모글로빈에 실려 그 먼 길을 이동한 것이다.

‘물리공부’ 칼럼에서 왜 이렇게 생물 이야기만 하느냐고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당신 몸과 공기도 예외는 아니다. 생명현상의 모든 것은 원자들의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생명의 핵심 물질인 DNA조차 원자로 되어 있으며, 그 구조를 밝히는 것에서 현대생물학이 탄생했다. 이 세상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의 근본 이유를 알려고 하면 결국 답을 구하는 여정에서 원자를 만나게 된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원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다. 당시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원자는 쪼개지면 안되는 거였다. 하지만 전통은 깨지기 위해 있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원자도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발견으로부터 양자역학이 시작된다. 이것은 과학역사상 가장 심오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 원자의 구조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살았던 19세기는 전기의 시대였다. 두 전극 사이에 높은 전압을 걸어주면 방전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별거 아닌 듯이 말했지만 인공번개를 만든 것이다. 원래 번개는 신이 사용하는 무기다. 서양에서는 제우스 정도나 번개를 만들 수 있었는데, 이제 인간이 번개를 손에 넣은 것이다. 내가 당시 전기를 연구하는 과학자였다고 해도 번개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점점 높은 전압을 걸어보았고 더 멋지고 거대한 규모의 번개를 얻을 수 있었다. 유심히 보니 번개 치는 동안 뭔가 공기 중을 이동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 이동하는 걸까?

그 ‘무엇’이 이동하는 동안 공기를 이루는 원자들이 방해가 될 것은 분명했다. 공기가 없는 진공관 내부에 전극을 집어넣었더니 ‘무엇’의 연속적이고 분명한 흐름이 보였다. 1898년 조지프 톰슨(1906년 노벨물리학상)은 이것이 ‘전자’의 흐름임을 밝힌다. 번개는 전자였던 거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자의 질량은 당시 알려진 가장 작은 원자인 수소보다 2000배나 작았다. 원자보다 작은 것이 존재했던 것이다. 전자는 원자의 일부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LCD 모니터를 쓰지만, 예전에는 브라운관을 사용했다. 브라운관은 바로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던 바로 그 진공관 장치를 응용한 것이다. 브라운관 내부를 날아간 전자가 스크린에 충돌하여 내는 빛으로 화면이 만들어진다.

전자가 원자의 일부라면 원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원자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 거 같다. 원자는 정말 작다. 머리카락 단면에 원자를 10만개 정도 일렬로 늘어세울 수 있을 정도다. 당신이 몽골인의 눈을 가졌어도 절대 원자를 볼 수 없다.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최소 길이조차 원자의 4000배 정도 된다.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 원자는 절대 볼 수 없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제 양자역학을 이용한 주사 터널링 현미경을 사용하여 원자를 볼 수 있다. 이것을 개발한 거드 비닉과 하인리히 로러는 198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10년대 어니스트 러더퍼드(1908년 노벨화학상)는 원자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방사능의 일종인 알파입자를 이용했다. 알파입자는 원자 내부로 파고들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갖기 때문이다. 직접 볼 수 없다면 부숴서 파편을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당시 러더퍼드는 알파입자의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직후였다. 자신의 필살기로 원자를 공격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한다. 이제 원자가 갖는 대강의 구조가 밝혀진 것이다. 러더퍼드가 사용한 방법은 오늘날 LHC와 같은 입자가속기의 기본원리가 되었다.

원자는 태양계와 비슷하다. 중심에 양(+)전하를 띤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에 음(-)전하를 띤 전자들이 돌고 있다. 원자핵과 전자는 그 자체로 너무 작아서 태양계도 그렇듯이 원자 내부는 사실상 텅 빈 것이나 다름없다. 원자가 우주와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러더퍼드는 감격했다. 나라도 감격했을 거다. 하지만 물리에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 열 개가 나타난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으면 맥스웰 방정식에 의해 전자기파가 발생해야 한다. 그러면 전자가 추락하여 금방 원자핵에 들러붙으며 원자가 붕괴한다. 원자구조의 아름다움은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물리학의 혁명이 시작된다.

닐스 보어(1922년 노벨물리학상)는 러더퍼드의 원자구조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맥스웰방정식에 잘못이 있다는 뜻이다. 계산기로 1 더하기 1을 했더니 3이 나왔다. 계산기가 아니라 수학에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랄까. 우선 보어는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가 전자기파를 내지 않는다고 가정해버렸다. 20대 후반의 햇병아리 물리학자가 전자기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그러고는 전자기파를 내지 않는 이런 특별한 상태에 ‘정상상태’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름 짓기는 적의 관심을 돌리는 데 유용하다. 그런데 보어는 여기서 한술 더 뜬다.

정상상태는 불연속적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비유를 들자면, 당신이 산에서 해발 10m, 20m 높이에 있는 것은 가능한데, 그 사이의 높이, 그러니까 11m, 14m 같은 높이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10m, 20m 높이가 정상상태다. 이게 무슨 헛소리일까. 내가 20m 높이에 가려면 11m를 지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11m에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니. 그런데 보어는 여기서 다시 한술을 더 뜬다. 당신 말이 맞다. 그래서 10m 높이에서 중간높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20m로 이동하게 된다. 전자는 10m에서 사라져서 20m에 짠하고 나타난다는 말이다.

욕이 나오려고 한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물리학자라면 보통 구토증이 난다. 하지만 보어의 이론은 사실임이 밝혀졌고, 이런 불연속적인 이동에 ‘양자도약(quantum jump)’이라는 멋진 이름까지 붙어 있다. 데모크리토스가 관습이라고 실수한 ‘색깔’은 바로 전자의 양자도약 때문에 생긴다. 보어의 혁명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후 15년여 동안 물리학자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세상에서 가장 괴상한 이론을 만들게 된다. 이 이론은 세상 만물의 근원인 원자를 설명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몸을 이루며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원자 말이다. 사실 당신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이론이 어떻게 원자를 설명하는지 의아해하는 원자들의 집단일 뿐이다.

▶필자 김상욱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10)세상의 근원을 파고들어간 데모크리토스의 후예들


고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BK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과학수다1, 2>(공저), <과학하고 앉아있네 3, 4>(공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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