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을 꿰뚫는 하나의 질문은 ‘왜 한국이 양궁을 지배하는가?’였다.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다섯 차례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시선에선 시기나 질투보다 경외심이 가득했다.
메달리스트도 예외가 아닌데 개인전(은메달)과 단체전(동메달)에서 입상한 미국의 브레이디 엘리슨은 “미국에선 내가 활 쏘기로 밥벌이하는 유일한 궁수인데, 한국은 양궁이 직업인 선수가 많다”고 부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 양궁이 아마추어 종목에서는 보기 드문 프로페셔널이라 강하다는 의미인데, 우리 선수들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남자 선수로는 최초의 양궁 3관왕에 오른 김우진(32·청주시청)은 “사실 한국 양궁은 체계 자체가 다르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중·고교, 대학교 그리고 실업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육성 시스템이 한국이 최고의 자리는 계속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 활 쏘기가 직업인 실업팀 선수만 남·녀를 통틀어 130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활 쏘기로 돈 버는 선수가 많다고 한 종목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의 다른 종목도 직업인 선수들이 많지만, 양궁처럼 금메달을 독식하지는 못하고 있다.
탄탄한 저변은 비결 중 하나일 뿐이다. 대한양궁협회는 자신들이 진짜 강한 비결을 공정한 경쟁에서 찾는다. 한국사회에서 자주 문제로 지적되는 흔한 학연과 지연이 없다. 남자 대표팀의 경우 출신 지역이나 학교에 공통점이 없다보니 선수들 사이의 호칭이 ‘형’ ‘동생’이 아닌 ‘선수’다.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이우석(27·코오롱)이 “김우진 선수”라 부르는 게 대표적이다.
학연과 지연이 없으니 불합리한 관행도 없다. 이름값이 높은 선수도 국가대표 선발은 모두 같은 선상에서 시작한다. 김우진이 “메달에 젖어 있지 마라. 해 뜨면 마른다”고 다른 선수들에게 경고한 것처럼 실력이 살짝이라도 녹스는 순간 밀려날 수밖에 없다. 괜히 양궁이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어렵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번 올림픽은 남자 101명과 여자 101명이 다섯 차례의 선발 과정을 거쳐 남자 3명과 여자 3명이 올림피언의 꿈을 이뤘다.
예상치 못한 무명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기도 한다. 여자 단체전 10연패에 힘을 보탠 전훈영(30·인천시청)이 대표적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라 믿음을 주지 못했던 전훈영은 “나라도 우려됐을 것”이라면서도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내가 선발돼버렸는데 어떡하나? 그냥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훈련 과정을 버텼다”고 웃었다. 전훈영은 여자 단체전 준결승과 결승 슛오프에서 침착하게 과녁 중심을 맞추는 반전 매력을 뽐냈다.
선수들이 언제나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연구개발 능력을 총동원해 양궁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무심의 궁수 그 자체인 슈팅 로봇이나 선수들의 자세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용 다중카메라, 활 성능을 점검할 수 있는 휴대용 활 검증 장비 등의 제공은 다른 나라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한양궁협회장 겸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벌써부터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양궁 지배의 역사를 계속 늘려가겠다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