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캉스·주캉스·맛캉스·엔터캉스…호캉스의 진화
소싯적 ‘오락실 사격광’의 자부심을 품고 베레타사의 자동 권총을 골랐다. 스태프가 설명하는 몇 가지 규칙을 숙지하고 과녁을 향해 총구를 겨눈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탕!’ 생각보다 매서운 반동과 굉음이 이어졌다. 첫발은 9점이었다. 고군분투하는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조용히 외쳤다. ‘내가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김예지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탓일까. 허기가 찾아왔다. 1층에 자리한 일식당 ‘야쿠미’로 향했다. 도쿄의 도요스 수산시장에서 주 2회 공수한 수산물로 요리해 재료의 품질을 자신하는 곳이다. 중식 맛집은 자차이로, 일식 맛집은 고추냉이로 확인한다 했던가. 즉석에서 갈아준 생고추냉이가 초밥의 맛을 더했다. 물과 불이 번갈아 치솟는 오픈 키친의 ‘보는 맛’도 여행의 흥을 더했다.
놀다, 먹다, 쉬다…묘하게 재밌네
지난 9월 방문한 필리핀 마닐라 솔레어 리조트 엔터테인먼트 시티(Solaire Resort Entertainment City, 이하 솔레어 리조트)에서의 특별했던 경험이다.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로부터 8년 연속 5성급 리조트로 선정된 이곳은 다채로운 즐길거리와 17개의 식당이 포진돼 있어 큰 이동 없이 휴식과 재미, 미식의 묘미를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숙소다. 특히 ‘어른들의 놀이터’로 유명하다.
리조트에는 권총부터 고화력의 소총까지 30여종의 총기를 갖추고 있는 사격장 스카이 레인지 외에도 오픈형으로 설계돼 사방에서 입장 가능한 카지노가 자리하고 있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화려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카지노에는 1000대 이상의 슬롯머신을 비롯해 바카라, 블랙 잭 등 300개가 넘는 오락 시설이 운영 중이라고 했다. 로데오 명품 거리를 연상케 하는 ‘더 숍(The shoppes)’에서는 프라다, 셀린느, 루이뷔통, 롤렉스 등 익숙한 브랜드의 ‘신제품’을 빠르게 만나볼 수 있다.
가족 단위 여행자를 위한 배려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공연장 ‘더 시어터’에서는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 발레 등 다양한 무대를 즐길 수 있다. <미스 사이공> <라이온 킹>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데이비드 베누아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콘서트로 매력을 입증받은 곳이기도 하다.
지친 심신은 야외 수영장과 스파를 통해 회복해도 좋겠다. 카바나에서 바라본 마닐라 베이의 석양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관이다. ‘하늘 아래 같은 바다는 없다’라는 말처럼 자연의 신비로움은 수없이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인생샷’을 남기기에도 충분하다.
평소 마사지를 즐겨왔다면 솔레어 스파의 필리핀식 마사지 힐롯 코스를 추천한다. 따뜻하게 데운 바나나잎과 불을 붙인 초를 이용한 테라피가 스트레스의 더께를 풀어줄 것이다.
흥미와 여행이 만나면 인터레스트립
최근 여행 트렌드를 관망하다 보면 이 단어가 어김없이 목격된다. 바로 경험이다. 더 정확히는 ‘재미있는’ 경험이다. 영화·드라마 촬영지를 찾아가는 ‘성지 투어’나 본인의 입맛에 맞는 주류를 찾거나 독특한 바를 방문하는 ‘술슐랭 투어’ 등 특정 경험을 부각한 상품 역시 쏟아진다.
온몸으로 도파민을 뿜어내며 ‘노는 것에 진심’인 이들의 관심사를 얻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인터레스트립’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흥미를 뜻하는 ‘인터레스트(interest)’와 여행을 뜻하는 ‘트립(trip)’을 합친 단어로, 단순한 관광을 넘어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중시하는 여행 스타일을 말한다. 취미부터 취향까지 흥미를 느끼는 관심사에 따라 목적지와 일정 또한 변화무쌍하다.
‘재미’와 ‘경험’이 중시되는 시대, 숙소의 역할 또한 변화하는 모양새다. 올 초 메리어트 본보이가 발표한 ‘아·태 지역 MZ세대의 여행 수요 및 행동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호텔은 더는 숙박 시설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MZ세대에게 호텔은 탐험의 목적지이자 흥미의 종착지다. 때로는 여행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엔터테인먼트’를 전면에 내세운 호텔들도 성행 중이다.
때때로 호텔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경험을 공유하기에 ‘좋은’ 소재로도 사용된다. 소셜미디어에 전 세계 호텔 체험기를 업로드 중인 인플루언서 정희영씨는 “돌이켜 보면 호텔에 쓰는 고가의 비용에 비해 머무는 시간이나 활용도는 크지 않았다. ‘본전’ 생각에 시작한 기록인데 데이터가 쌓일수록 몰라서 활용하지 못한 프로그램이 꽤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여행 고수들은 목적지를 정할 때 특정 국가나 지명이 아닌 ‘○○호텔에서 ○○하기’를 검색하라고 조언한다. ‘어디로 떠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라는 의미다.
조석현 여행 전문가에 따르면 고급 숙소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특징과 특색을 갖춘 호텔이 인기를 끌고 있다.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겜캉스(게임+호캉스), 주(酒)캉스, 맛캉스, 엔터캉스(엔터테인먼트+호캉스) 등 주제별 즐길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또한 그는 “요즘 세대에게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과정”이라며 “앞으로의 여행은 더욱더 개인화되고 다채로운 경험으로 가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