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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약싸움 ‘골리앗 꺾었다’

2001.04.20 18:48

특허권을 근거로 개도국 정부의 에이즈(AIDS) 염가제공에 제동을 걸려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백기를 들었다.

영국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전세계 39개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19일 에이즈 치료제 특허권 침해 여부를 놓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철회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의약품 특허규정을 앞세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한편에 서고, 영국의 구호단체 옥스팜과 국경없는의사회(MSF) 등 전세계 비정부기구(NGO)들이 다른편에서 겨루던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다윗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제약회사측 변호사인 패니 실리어스는 이날 남아공 프레토리아 고등법원 공판에서 “모든 소송당사자들의 동의하에 소 취하를 요청한다”며 “제약회사들이 남아공 정부의 소송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약회사들은 남아공 정부가 지난 1997년 특허권 보호를 받는 에이즈 치료제 중 값싼 것을 수입하고 국내 무단 복제를 묵인하자, 제약회사의 특허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법정싸움의 결과로 남아공과 마찬가지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공격을 받던 케냐와 태국 등 다른 개도국들도 값싼 에이즈 치료제의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약회사들의 후퇴는 내부적으로는 제품 이미지의 실추를 걱정한 투자자들의 우려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및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 등 안팎의 압력이 주효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즈 환자 1명이 1년 동안 제공받아야 할 정상적인 치료제 가격은 1만~1만5천달러(1천3백만~2천만원). 정작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각국 정부로서는 사실상 부담하기가 불가능한 액수이다.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인 환자만 50만명에 달하는 남아공 정부는 로열티를 무시해온 태국 등 개도국 제약사로부터 시장가격보다 20배나 싼 값에 치료제를 수입, 보급해왔다.

치플라(Cipla)와 머크(Merck) 등 일부 제약회사들은 이번 소송이 진행되면서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지난달 정상가의 6%에 불과한 600달러에 1년치 치료제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번 소송 취하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약품 특허보장기간을 20년으로 잡고 있는 WTO 관계규정이 수정되지 않는 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공세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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