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검찰 독점권한 깨지 않으면 위장개혁이다

2012.12.24 20:47 입력 2012.12.24 23:03 수정
황희석 | 변호사·전 민변 대변인

2006년 월드컵 때다. 그때만 해도 공공성을 잃지 않았던 MBC가 ‘축구는 ○○다’로 내 상상력을 자극한 적이 있다. 그 순간 나는 시청자에 그치지 않고 축구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2012년 한 해가 저무는 지금 ‘검찰은 ○○다’라고 하면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

떡검과 섹검,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와 벤츠 검사, 성폭행 검사와 브로커 검사…. 일년 내내 막장 드라마 시리즈 같은 검사의 비리와 범행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마다 검찰은 검찰시민위원회를 만들겠다느니 감찰을 철저히 하겠다느니 개혁을 약속했지만 그마저도 위장개혁임이 꼼수검사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드러났다. 검찰개혁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이쯤이면 지금 검찰의 문제가 검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고, 검찰개혁을 검찰에 맡길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기고]검찰 독점권한 깨지 않으면 위장개혁이다

검찰의 문제는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한에서 연유한다. 검찰이 수사권도, 영장청구권도, 기소권도, 형집행권도 모조리 독점하며 한 집단으로 똘똘 뭉쳐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 돈이든 차량이든 상납을 받고, 피의자를 성노리개감으로 삼을 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까지 부엉이바위로 내몰 수 있는 것도 바로 2000여명의 검사들이 똘똘 뭉쳐 어떠한 견제장치도 없이 강력한 권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신의 대표적 권력기관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였고, 그 중앙정보부장을 체포하면서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집단이 보안사령부를 필두로 한 군인이었다면, 문민정부부터 ‘법치’라는 이름 아래 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정치권과 결탁하여 절대적 권한을 누리기 시작한 기관이 바로 검찰이다. 유신과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구호 아래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가 폭정의 돌격대였다면, 지금의 검찰은 법치라는 미명 아래 의회라는 선출된 권력과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자정불능 통제불가’의 거대 권력기관이다. 예전 한나라당이나 지금 새누리당 의원 중 법조인 출신 다수가 검사 출신인 것도, 이들 정당이 검찰개혁에 소극적인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어느 영국 철학자의 말처럼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큰 것은 위험하다. 절대적으로 큰 것은 절대적으로 위험하다”. 자본주의가 막 발흥하여 거대 기업이 등장하던 19세기 말 미국이 강력한 반독점법을 제정한 것도 바로 큰 놈과 센 놈의 독점과 권력집중이 낳을 위험과 파국을 막기 위한 것이다. 큰 놈과 센 놈이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다면, 최대 피해자는 재벌이나 권력자가 아니라 돈 없고 ‘빽’ 없는 서민이자 중산층이다.

검찰개혁의 요체도 마찬가지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운영원리에 맞게 수사권이든 기소권이든 지금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권한은 물론이고 이를 담지한 조직을 쪼개고 줄이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공수처 신설도, 검찰의 수사권 폐지나 검경 수사권 조정도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을 깨고 검찰의 권한을 쪼개고 줄이는 방안이기에 의미가 있다.

이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검찰개혁안은 모두 헛발질이다. 대표적인 위장개혁이 바로 상설특검이다. 상설특검은 검찰의 권한에 조금도 손을 대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장을 직선제로 선출하자는 방안도 그럴싸해 보이지만 검찰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사법부도 갖지 않은 민주적 대표성을 검찰에 부여하여 비중 있는 권력기관으로 만들어줄 이유가 없다. 검찰의 권한은 그대로 두면서 되레 검찰에 날개를 달아주기 십상이다.

이제 ‘검찰은 ○○다’를 다시 생각해 보자. 뇌물이나 성추행 검사, 브로커 검사에서 더 나아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폭군이나 마구잡이로 먹어치우는 괴물이 떠오르면 당신은 검찰개혁의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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