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일본의 이중성

2013.04.25 21:15 입력 2013.04.25 23:56 수정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태평양전쟁 끝무렵, 미군은 일본군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투 중에는 남김없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포로가 되고나면 자기편을 철저하게 배신하는 일본군의 표변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미 국무부의 요청으로 쓴 일본문화 보고서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다.

‘국화’는 차 한 잔 마시는 데도 도(道)를 운운하는 일본인의 섬세한 미학적 세계를 상징한다. 반면 ‘칼’은 잔인하게 상대방을 살상하는 야만적 행태를 뜻한다. ‘국화와 칼’이라는 모순된 제목 속에 일본인의 이중성이 잘 함축되어 있다. 하긴 속마음(혼네)과 바깥표정(다테마에)이 다른 점은 일본인들도 자기네 특성으로 인정하는 터다. 다만 ‘간특하다’라는 나쁜 말의 한자 특(慝)이 ‘숨긴다’는 닉(匿)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이듯,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비열한 것으로 여겨왔다.

[공리공담]국화와 칼, 일본의 이중성

사람의 말에 일관성이 있을 때라야 신뢰가 생기고, 그제야 서로 믿고 사귈 수가 있다.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면 그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짐승이 내는 ‘소리’일 따름이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닌 것이다. 신뢰를 뜻하는 한자 신(信)이 사람(人)과 말(言)로 이뤄진 까닭도 그래서이지 싶다. 그러니 일본인의 이중성은 미국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에 그칠지 몰라도, 어쩔 수 없이 이웃해 살아야 하는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최근 일본국 아베 총리가 잇달아 ‘망언’을 일삼고 있다. 그저께는 “침략의 정의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라더니, 어제는 또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말라”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각료들의 행위를 두둔했다. 침략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면, 침략이 시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른바 서구화, 근대화를 이뤄주기 ‘위하여’ 몸소 조선과 중국에 납시었다는 뜻이겠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본인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이중성이든 면종복배든 자기들끼리 통하는 것을 이웃나라나 다른 민족에게까지 적용하려 든다는 점이다. 그래놓고 ‘위해서 한 것’이라며, 마치 시혜를 베풀 듯하는 행태는 차마 목불인견이다.

미국의 페리 제독에게 개항을 당할 때는 하루빨리 서구화하자고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이 되자’라더니, 세가 불리해지자 귀축영미(鬼畜英美), ‘귀신과 짐승 같은 미국·영국놈들’을 섬멸하는 성전에 나서자며, 소년들까지 끌고가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일본 현대사다. 러일전쟁 이후 태평양전쟁까지 산과 들, 골과 섬마다 사람의 피로 물들여놓고 전몰자들의 영혼을 위로한답시고 급조한 것이 야스쿠니 신사였다. 저희 백성만이 아니라 대동아(大東亞)라, ‘큰 동아시아’라며 이웃나라 사람들까지 끌고가서 죽여놓고 ‘나라를 위하여’ 죽은 영혼을 위무한단다.

“부끄러움이 없는 자는 짐승”이라고 맹자는 말했다. 때마다 말을 바꾸고 다른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칙과 신뢰 없이는 사귐이 불가능하다. 이것을 유교문화권에서는 의(義)라 불렀고 맹자가 특별히 중시했던 사귐의 원칙이었다. 하긴 일본은 단 한번도 유교국가인 적이 없거니와 유독 맹자를 싫어했다. “맹자 책을 싣고 가는 배는 침몰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일본이 맹자를 싫어하는 데는 더 깊은 속내가 있다. 역성혁명을 당연시하는 맹자의 정치철학이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은 2000년 동안 한 핏줄의 임금을 모시는 것을 무슨 큰 영광으로 알고, 또 천년만년 계속 모시자며 만세일계(萬世一系)를 부르짖었다. 그러니 맹자가 “폭군은 마땅히 처단돼야 하고, 폭군은 임금이 아니라 한낱 필부(一夫)에 불과하다”라던 말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혁명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국화와 칼>의 저자도 이 점을 지적했다. “일본인은 사익 추구나 부정에 대해 반항하는 일은 있지만 결코 혁명가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세계의 조직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혁명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국화와 칼’의 이중성에는 일관된 무엇이 있다. 요컨대 힘센 자를 추종하는 세력의 원리가 되겠다. 힘센 자가 군림하면 금방 꼬리를 내리고 충성을 바치는 것. 이것이 일견 모순돼 보이는 ‘국화’와 ‘칼’을 한데 연결하는 ‘와’ 원리다. 다만 상식적인 사람들은 이런 원리를 “개의 윤리”라고 부른다.(와타나베 히로시 도쿄대 교수)

제국주의 시절 ‘소년병 학교’를 소재로 한 일본 군가는 애잔한 멜로디로 이렇게 노래한다. “벚꽃처럼 피었다가 벚꽃처럼 지자”라고, 그리하여 “죽은 뒤에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만나자”라고. 죽음에서조차 미학을 발견하는 자들의 놀라운 군가다. 제 백성을 저리 죽여놓고 국가를 위해 죽었다며 ‘색다른 시각’으로 보는 자이니 남의 나라에 대해서야 무슨 말을 못하랴 싶기도 하다. 그러나 벚꽃은 이미 졌고, 봄날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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