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2014.12.12 20:59 입력 2014.12.12 21:06 수정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바다에 다 와가는 한강을 따라가던 자유로는 파주 출판도시를 지나 왼쪽 어깨에다 오두산 전망대를 얹어놓고 오른쪽으로 크게 커브를 그린다. 이때부터 자유로는 임진강 남쪽 기슭을 거슬러 오른다. 가족과 함께 자주 오가는 길. 하지만 매번 강 건너편으로 눈길을 주기가 불편하다. 헤이리마을에서 기름진 저녁을 먹고 나오다 성동IC 부근에서 어두운 북녘 땅과 마주칠 때면 더 심란해진다.

지난 11월29일 아침, 관광버스를 타고 판문점으로 향했다. 서울 합정역에서 전시기획자, 작가, 시인, 미술 분야 인사 등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판문점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긴장감이 덜했다. 임진강이 낯설지 않은 것보다는 북녘 땅을 몇 번 밟아본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 남북 관계가 ‘호시절’이던 2005~2006년 남북작가회의에 참가하느라 평양, 개성, 금강산을 다녀온 적이 있다.

[사유와 성찰]예술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통일대교를 지날 때까지 판문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도끼만행 사건과 몇몇 인사의 귀환과 송환, 망원경을 들고 있는 북한군, 소떼 방북, 그리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몇 장면이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개인적 기억이 아니고 그것도 매체를 통한 이미지의 중첩이었다.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나 ‘반공방첩’과 함께 성장한 우리 세대에게 판문점은 이념과 관련된 집단무의식의 가장 깊은 거처 중 하나다.

오전 10시, 판문점은 짙은 안개에 싸여 고요했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날 판문점을 찾게 된 것은 지난 10월3일부터 11월30일까지 판문점, 도라산역, 파주 출판도시에서 개최된 전시회 ‘파주평화발전소: 끝과 시작’ 덕분이었다. 올해 첫선을 보인 파주평화발전소 기획전(전시감독 이승현)은 여러 의미를 갖는데, 국내외 유명 작가가 참여한 것보다 분단 이후 최초로 판문점에 미술작품을 걸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었다.

자유의 집 출입문 유리에 전시회 포스터가 선명한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김혜련 작가의 ‘마지막 철조망-하늘사다리’가 맞이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작가라면 판문점이 60년 넘게 품어온, 아니 지금도 뿜어내고 있는 이 엄청난 장소성(역사성)을 이겨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나는 자유의 집 안에서 오직 선과 색으로 철조망 너머 평화를 꿈꾸게 하는 작품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정전위 회의실을 돌아보고 자유의 집 3층 전시실에서 판문점 역사에 관한 자료와 사진을 관람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을 때, 나는 착잡해지고 말았다. 잔상효과였을 것이다. 불과 몇 십 분 전에 보았던 미술작품이 너무 작아 보였다. 현실의 막강함이 작품을 압도했다. 판문점 전시가 ‘총구에 꽂는 첫 번째 꽃’일 수 있다고 속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라산역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난 뒤 도라산 전망대에 올랐을 때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바글바글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판문점 일대는 손꼽히는 명소라고 한다. 하기야 지구상에 한반도 비무장지대와 같은 비극적 스펙터클이 또 어디 있으랴. 두세 겹으로 전망대 망원경에 달라붙어 있는 외국인들을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들이 한국 관광을 선택할 때, 강력한 동기 중 하나가 한류였을 텐데 K팝과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에 매료되어 한국을 찾았을 외국인들이 군사분계선에서 과연 무엇을 느낄 것인가. 나는 분단 현장과 관광상품 사이를 연결하기가 어려웠다.

이승현 전시감독이 물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지요?” 이 감독이 파주 일대를 평화의 송신소로 전환시키려는 이유 중 하나다. 한반도를 넘어 지구적 차원의 평화를 추구하는 한국 예술을 진정한 한류로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귀경길에 최근 내가 다지고 있는 각오가 떠올랐다.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말고 ‘예술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두 질문은 엇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문이다.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뭔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가 분단 현실의 맨 앞, 아니 평화의 맨 앞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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