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오류, 부정의 오류

2016.09.20 21:19 입력 2016.09.20 21:21 수정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진에 이어 또 규모 4.5의 지진이 일어났다. 인구 밀집지역인 데다 원전도 집중되어 있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진다. 대형재난에 대비하는 시스템이 없고 정부의 긴장감도 없고 대책다운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들은 ‘땅 밑의 일이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또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안전하다고 말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진 않지만, 이런 말의 밑바탕에는 한반도에서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진단이 깔려 있다. 만에 하나라도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다면? 상상조차 버거운 대형재앙이 될 테지만, ‘안전하다’는 낙관론을 펴는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는 게 우리의 불행이다.

[정동칼럼]긍정의 오류, 부정의 오류

위험을 진단하고 대응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통계학에서 발전된 긍정의 오류(false positive)와 부정의 오류(false negative)라는 개념이 있다. 긍정의 오류란 없는 것을 존재한다고 진단하는 오류를 말하고, 부정의 오류는 반대로 존재하는 위험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단하는 오류를 의미한다. 사회공동체에 어떤 위험이 닥치거나 예상되었을 때 그 위험을 진단하고 대처하는 방식도 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전 국민을 메르스 공포로 몰아넣었던 2015년 5월 의학전문가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메르스는 밀접접촉자 외에는 공기로 전염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부정의 오류’ 식의 논법이다. 최근 수년간 한반도에 지진 발생이 급증하였고 경주에서는 지진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그저 안전하다는 말만을 반복하는 것도 같은 논법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엄청난 재앙의 위험이 문제되었을 때 과학기술이나 의학 전문가들은 ‘부정의 오류’라는 진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긍정의 오류’ 쪽 진단은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예방조치를 강조한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다가 틀리는 것(긍정의 오류)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가 틀리는 것(부정의 오류)보다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더 적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의 차이는 위험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울 때 정부의 정책결정에 커다란 차이를 낳는다. 낮은 확률이지만 메르스의 공기전염 위험이 존재한다는 진단에서 출발하면 병원폐쇄라든가 엄격한 감염자 추적관리 등의 적극적인 정책을 펴게 된다. 마찬가지로,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확률상 작더라도 그 위험의 존재를 인정하는 진단에 기초한다면 경주 인근에 밀집한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적극 고민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부정의 오류’를 선택한 정책가들은 반대다. 그들에게는 발생 확률이 매우 작은 위험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안전정책을 고민해야 할 동기가 미약하다. 만약 메르스가 밀접접촉자 외에도 감염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경주 인근에서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하여 원전이 파괴된다면? 부정의 오류에 기초한 정책은 사회 전반에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해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부정의 오류’ 논법을 선호하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안전정책 결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이는 사회공동체의 위험통제 및 안전에 관한 정책결정은 소수 과학자들의 확률 논쟁으로 치환해 버린다. 이런 현상을 마주하면서 나는 그들의 논법과 진단이 거대기업 및 정부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메르스 사태 때 정부 대책에 관여했던 의사들은 하나같이 대형병원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였다. 강진의 발생 가능성을 애써 무시하면서 안전하다고 떠드는 전문가들은 원전마피아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부정의 오류’건, ‘긍정의 오류’건 진단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장래의 위험에 대처하는 정책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누구 말이 맞았느냐를 따질 때에는 이미 늦는다.

국민안전처가 긴급재난문자를 신속하게 보내지 않은 것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작 지진에 대비한 근본적인 정책적 고민이 전혀 없다는 게 진짜 문제다. 이 땅에서 살면서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하는 재앙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근본적인 재난대비정책을 세우고 또 원전 폐기를 대안으로 고민하는 게 맞다. 원전대책을 비롯하여 안전정책에 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것은 권력 및 자본과 결탁한 소수 과학자가 아니라 국민이 직접 결정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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