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12시간 일해봤습니다

2018.09.16 10:39
이하늬 기자

경기도에 위치한 한 물류센터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정지윤 기자

경기도에 위치한 한 물류센터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정지윤 기자

명절을 앞두고 가장 바빠지는 곳 중 하나가 물류센터다. 때문에 단기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목이다. 지난 9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물류센터에서 직접 일을 해봤다.

예상대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 구인구직 사이트에 ‘물류센터 일급’으로 검색하니 780여건의 채용정보가 떴다. 그 중 대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는 ‘쿠팡’ 물류센터 채용공고를 클릭했다. 쿠팡 직영/ 즉시 출근 가능/ 쉬운 상하차/ 주간 일급 지급 / 9만7000원이라는 제목이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이었다.

다만 지원자격이 ‘남성’으로 기재된 것이 걸렸다. 채용 담당자는 “상관없다”며 문자메시지로 신분증과 통장사본을 보내라고 했다. 두 시간 후 출근 확정 문자를 받았다. “HUB 근무는 상하차 분류작업입니다”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지인은 “여자가 하기엔 빡세다”고 말했다.

작업장에는 휴대전화 반입 불가

오전 9시부터 근무지만 서울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려면 7시 전에 집에서 나서야 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이천에 위치한 덕평 물류센터로 가는 셔틀버스는 오전 7시20분에 당고개역에서 출발한다.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출퇴근에만 3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셈이다. 셔틀버스에 오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직전에 들렀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던 20대 남성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누구랄 것 없이 잠에 빠졌다.

1시간10분 정도 지나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물류센터 입구에는 서울과 경기도 각지에서 온 셔틀버스가 줄지어 있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끝없이 내렸다. 물류센터 특성상 휴대전화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보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반입이 가능한 물건은 상비약, 위생용품, 투명한 물통, 소량의 사탕과 초콜릿 등이었다. 당을 보충해가며 일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상하차 분류작업은 지역에 따라 라인이 나뉜다. 배치받은 구로 라인에 도착하자마자 함께 일하게 된 40대 남성 A씨는 “종이부터 붙입시다”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자 그는 “처음 왔어요? 아이고 물건도 많은데 미치겠네”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 파란색 미끄럼틀에서는 계속해서 택배가 내려왔다. 미끄럼틀에서 떨어진 택배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노동자들에게 도착한다. 노동자는 주소지에 따라 구로1, 구로2, 구로3, 구로4 식으로 분류한 다음 쌓아야 한다. 무게와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파우치’라 불리는 비닐에 든 가벼운 것부터 쌀처럼 20㎏가 넘어가는 것도 있다.

박스를 쌓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가로세로 1m 정사각형 공간에 2m 높이로 쌓아야 하기 때문에 박스 크기와 무게를 봐가면서 상자를 배치해야 한다.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 같았다. 높이가 1m를 넘어가니 물건을 올리기 버거웠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무거운 박스를 올리다가 자리에서 넘어졌다. 택배 상자가 몸 위로 떨어졌다. 팔에 멍이 들었다.

9월 9일 덕평 물류센터에서 출근도장을 찍고 휴대전화를 반납하기 위해 출근자들이 줄을 서 있다. / 이하늬 기자

9월 9일 덕평 물류센터에서 출근도장을 찍고 휴대전화를 반납하기 위해 출근자들이 줄을 서 있다. / 이하늬 기자


“난 리큐 박스가 제일 무서워”

오후에는 택배 박스만 봐도 무게가 가늠됐다. 세제, 쌀, 고양이 화장실 모래, 추석 선물세트 등은 기본 10㎏이다. 고양이 모래는 기자도 자주 주문하던 상품이다. 고양이 그림만 봐도 절로 한숨이 나왔고 세제와 물, 쌀이 한꺼번에 내려올 때는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A씨에게 미안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함께 간 선배는 “난 리큐 박스가 제일 무서워”라고 말했다.

계속 서 있으니 다리가 아파왔다. 미끄럼틀을 바라보며 바닥에 앉았다. 물건이 내려오면 바로 일어날 생각이었다. A씨가 다가오더니 “앉으면 안 돼요. 몰래 앉아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엉덩이를 붙인 지 30초가 되지 않아 관리자가 “거기! 앉지 마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유를 물었지만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여자 화장실 벽에 쓰인 ‘관리자 싸가지’라는 낙서가 떠올랐다.

오전과 오후, 쉬는 시간 10분이 주어졌다. 작업장 끝에 위치한 화장실에 갔다오니 3분이 지나 있었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니 또 1분이 지났다. 휴게실은 따로 없었다. 교육실이 사무실이자 휴게실이라고 했다. 교육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5분을 쉬었다.

점심시간은 1시간, 저녁시간은 40분이다. 평소 먹던 양의 두 배 가까이 먹었다. 반찬은 부실했지만 뭐라도 먹고 기운을 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휴대전화를 만질 수 있는 시간도 이때뿐이다. 반납한 휴대전화를 잠시 돌려받았다. 10분도 되지 않아 복귀를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양치를 할 시간은 없었다. 물로 입을 헹구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저녁이 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챙겨 온 초콜릿은 이미 다 먹은 지 한참이었다. 몸에서는 땀냄새 수준을 넘은 ‘쩐내’가 났다. 휴지로 땀을 닦으니 검은 먼지가 묻어났다. A씨는 웃으며 “일 끝나고 나면 코딱지도 검다”고 말했다. 그나마 너무 바빠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게 고마울 뿐이었다.

곳곳에 ‘안전’ 글자, 하지만 교육은 없었다

A씨는 가끔 주말에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는 “힘들어도 바로바로 돈을 주니까”라며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고 말했다. 오후 8시55분, “9시가 되지 않았으니 현장을 떠나지 말고 끝까지 일을 하라”는 내용의 방송이 수차례 나왔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5분 일찍 현장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의 방송과는 대조적이었다.

오후 9시, 드디어 야간교대조가 도착했다.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웃으며 “고생하셨어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전광판에 뜬 오늘의 실적을 봤다. 주문수량 3021, 운영실적 1379라는 숫자가 또렸했다. 식사시간을 빼면 두 명이서 한 시간에 140개가량을 처리한 셈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분에 2.5개다. 남은 물량은 야간노동자들의 몫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들은 쉽게 사라졌다. 일용직도 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얼른 전자서명을 하라”고 재촉했다. 나중에서야 그게 근로계약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에 관심을 두는 노동자도 없었다. 근로계약서보다 출근시간 기록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출근시간은 곧 돈이다.

안전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출근자들은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육장’으로 보내졌다. 지난 한 달 사이 다른 회사 물류센터에서 노동자 2명이 사망했다. 당시 해당 물류센터가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마에 올랐다. 쿠팡도 다르지 않았다. 교육장 곳곳에 ‘안전’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지만 교육은 없었다. 교육장에서는 라인 배치가 정해졌을 뿐이다.

안전교육은 회사가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빠레뜨에 발 다치는 사람이 많다”며 “땅에 내려놓을 때 조심하라”고 말했다. 20대 여성 B씨는 “단프라(플라스틱 박스)를 한꺼번에 들면 먼지가 많이 나니까 두세 개씩만 들라”는 팁을 건넸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원칙적으로 안전교육을 무조건 하게 되어 있는데 그날 착오가 있었다”며 “바로 조치를 취했고 앞으로 안전교육을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루 바짝 일하면 10만원에 가까운 돈을 당장 손에 쥘 수 있다는 점에서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덕쿠’(덕평 쿠팡) ‘인쿠’(인천 쿠팡) ‘목쿠’(목천 쿠팡)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하루짜리 노동자의 권리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국가물류통합센터에 따르면 전국에는 4159개 물류창고가 있다. A씨처럼 급전이 필요한 이들은 오늘도 물류센터로 발길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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