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간이 걱정하는 ‘출산율 감소’…동물의 세계에선 ‘개체군 조절’

2019.01.02 06:00 입력 2019.01.02 09:21 수정

환경이 좋아야 번성…나쁜 조건에선 감퇴…서식지 위협 땐 멸종

생물학자가 본 지금의 한국

동물 세계에서는 개체군이 커지면 경쟁이 심해지면서 치사율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개체군이 조절된다. 한국의 출산율이 감소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진은 지난해 8월8일 ‘국민 건강의날’에 중국 저장성의 한 광장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신화연합뉴스

동물 세계에서는 개체군이 커지면 경쟁이 심해지면서 치사율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개체군이 조절된다. 한국의 출산율이 감소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진은 지난해 8월8일 ‘국민 건강의날’에 중국 저장성의 한 광장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신화연합뉴스

도심의 말매미는 열섬효과(도시의 중심부가 변두리 지역보다 기온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로 개체군이 번성 중이다. 반대로 수원청개구리는 서식지가 사라지면서 멸종위기종이 됐다. 동물의 어떤 종이 잘 살고 있다는 지표는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거꾸로 어떤 종은 숫자가 줄어서 멸종위기종이 되기도 한다. 개체군 생태학은 생물종의 숫자가 변화하는 요인을 연구한다. 잘 살고 있는 종도 한정 없이 숫자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개체군이 커지면 커질수록 경쟁이 심해지면서 개체군은 조절된다.

이러한 개체군 크기를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인구’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는 “생물학자는 위기종 연구를 할 때 위기 요인을 먼저 찾고 스트레스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는 누구의 위기인가
출산율 조절은 한정된 자원 속
개인의 관점에선 최선의 선택”

생물학자가 보는 한국의 인구 상황은 어떨까. 장 교수가 보기에 지난해 3분기 합계출산율 0.95명은 “개체군이 조절되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 전체가 재조정하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며 “자원의 한계가 있는데 숫자를 늘려가다가는 모두가 망할 수 있기 때문에 출산율의 조절은 개인으로 보면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번식은 본능인데 아이를 못 낳게 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며 “출산율을 들여다보지도, 걱정도 말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톰 소여의 사회’를 만들면 사람들은 저절로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설 <톰 소여의 모험> 첫 장면에서 톰 소여는 고모에게 야단맞고 페인트칠하는 벌을 받는다. 그때 친구들이 나타나 재밌냐며 같이해보자 한다. 그러자 톰 소여는 ‘그냥은 안된다’며 오히려 친구들에게 캔디를 받고 페인트칠을 허락해준다. 톰 소여에게는 벌이었지만 친구들에겐 재밌어 보이는 일이 됐던 것처럼 아이 낳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우호적 환경 도심 말매미는 번성 중

도심의 말매미는 숫자가 많아지면서 개체군이 번성 중이다. 도시화는 많은 생물종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여 숫자가 줄어들거나 심지어 완전히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예외적인 생물종 중 하나가 말매미다. 매미가 성장하는 데 높은 온도가 필요한데 열섬현상이 발생하는 도심은 매미에게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는 셈이다. 장 교수 연구 결과 서울시에서 열섬효과가 높은 지역의 ㎢당 매미 개체수가 열섬효과가 낮은 지역보다 5배 많게 나타났다. 또 말매미는 플라타너스와 벚나무를 좋아하는데 조경을 위해 도심에 심어놓은 플라타너스가 말매미에게 좋은 환경이 되기도 했다.

수원청개구리 - “인간이 터전 없앤 청개구리와 힘겨운 서식지 경쟁 중…이러다 멸종될지도 몰라요”

수원청개구리 - “인간이 터전 없앤 청개구리와 힘겨운 서식지 경쟁 중…이러다 멸종될지도 몰라요”

■ 서식지 사라진 수원청개구리 멸종위기

수원청개구리는 멸종위기종이다. 현대 농법의 변화로 절대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다. 장 교수가 수컷의 울음소리로 조사한 결과 전국에 2500여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환경부는 수원청개구리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했다. 수원청개구리가 멸종위기종이 된 것은 ‘사람’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청개구리는 원래 산과 인접한 습지에서 살고, 수원청개구리는 늪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모든 습지를 논으로 바꿨다. 그 결과 수원청개구리와 청개구리는 같은 논에서 서로 경쟁하게 됐다. 사람이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잡초를 없애고, 논을 단순화해 농법을 바꾸면서 수원청개구리가 숨을 장소도 사라졌다. 청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의 경쟁은 심화됐고 청개구리보다 5% 정도 몸집이 작은 수원청개구리는 경쟁에 불리해졌다. 국립생태원 김백준 선임연구원은 “동물은 자원 총량이 부족해지는 것보다 인간으로 인한 서식지 개발로 개체군 수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금관조 - “어릴 적 못 먹고 컸더니 번식에 큰 흥미 없어요”

금관조 - “어릴 적 못 먹고 컸더니 번식에 큰 흥미 없어요”

■ 금관조, 번식에 투자하지 않도록 진화

새들의 경우 환경이 좋지 않을 때 산란 수를 줄이는 자기조절능력이 있다. 성장 초기에 먹이 부족을 겪은 금관조 암컷은 나중에 먹이가 풍부해지더라도 먹이가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자매 금관조보다 더 크기가 작은 알을 낳는다. 결과적으로 더 작은 새끼가 태어난다. 번식에 지나친 투자를 하지 않도록 미리 조절하는 것이다. 먹이가 한정적인데 숫자가 많아지면 경쟁이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김 선임연구원은 “환경이 좋아지면 전략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어려운 시절을 경험해본 동물들은 적응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동물의 사례를 연구한 장 교수는 “번식을 여러 해 하는 동물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개체군 크기를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먹이나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자식을 살릴 수 없거나 오히려 자식이 있어서 자기 생존이 불리해질 경우 동물들은 자손을 낳지 않고 힘든 기간을 연장시키는 전략을 편다. 일단 자기가 생존한 다음 생식 기회를 노린다는 뜻이다. <인구 쇼크>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은 “생물의 역사에서 자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개체수가 불어난 종들은 모두 개체군 붕괴를 겪었다”며 “개체군 밀도가 증가하면 포식, 경쟁, 먹이 고갈 등 문제가 생기는데 이때 치사율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유리한 환경에서 개체군이 늘고 있는 말매미는 계속해서 숫자가 늘어날까. 그렇지 않다. 매미의 새로운 포식자들도 나타났다. 바로 말벌이다. 장 교수는 “언제까지 매미들에게 상황이 좋을지는 모른다. 이렇게 늘 바뀐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인구 감소를 위기라고 말하는 현 상황에 대해 “질문을 바꿔야 한다”며 “위기라면 누구의 위기인가”라고 되물었다. 학령인구 감소는 사회의 위기가 될 수 있지만 개인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생태학 관점에서 인구 감소는 반가운 일이다. 환경 문제는 곧 인구 문제로 지금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구가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인구가 20억명(1927년)에서 30억명(1960년)이 되는 데는 33년이 걸렸지만 30억명에서 40억명(1974년)이 되는 데는 14년이 걸렸다. 이후 10억명씩 늘어나는 데 12~14년씩 걸렸고 현재 세계 인구는 76억명을 넘어섰다.

갈매기 - “일부일처 사회지만 집안일·바깥일 공평하지 않으면 깨끗이 갈라선답니다”

갈매기 - “일부일처 사회지만 집안일·바깥일 공평하지 않으면 깨끗이 갈라선답니다”

■ 일·가정 양립 갈매기 부부처럼

2005년 이미 ‘고령화 쇼크’를 예상하는 책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를 냈던 최 교수는 “저출산 타깃은 남성”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을 가리켜 돈 줄 테니 아이 낳아주세요’가 아니라 ‘아빠가 육아를 해야 풀린다’는 것이다.

그는 갈매기 부부들의 이혼율이 높아진 것을 분석했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 결과를 예로 들었다. 일부일처제인 갈매기는 하루에 정확하게 12시간씩 집안일과 바깥일을 나눠서 한다. 한 마리가 밖에 나가 먹이를 물어오는 동안 다른 한 마리는 둥지에 앉아 알을 품는 식이다. 그런데 갈매기 네 쌍 중 한 쌍이 일년을 넘기기 무섭게 이혼하는데 연구 결과 교대시간이 길고 시끄러웠던 부부가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에서 물고기 잡아오는 게 고달프기 때문에 암컷, 수컷이 서로 더 둥지에 남아 있으려고 하는데 교대할 때 갈등을 겪은 갈매기 부부는 다음해 다른 짝을 만난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부부간 협력이 잘되는 경우 해로한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갈매기는 평생 해로하는 동물인데 인간도 새처럼 살면 된다”며 “일주일에 3일은 남편이 나가서 일하고 3일은 집에서 아이 기르는 사회가 돼 남녀가 반반씩 일을 나누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 자료를 보면 전 세계 남성 20~30대 사망률은 여성 사망률의 2~3배지만 40~50대가 되면 사망률이 줄어들어 여성과 비슷해진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 40~50대 남성 사망률이 높다. 최 교수는 “한국 남성들은 불행하다”며 “새벽같이 나가면서 잠자는 아이 얼굴 한 번 보고 야근하고 돌아오는 삶”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들이 아이들 어린이집·학교 보내고 브런치를 하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며 “회사의 절반이 여성으로 채워지면 자신의 아내도 일자리를 얻게 되는 것인데 남성들이 회사 임원이 되면서 자리를 막지 않고 여성을 협력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번식기 이후 더 길게 사는 인간

번식기 이후 더 길게 사는 인간
“고령 세대 지혜가 후대 전해져
인류 발전에 긍정적 영향 끼쳐”

2017년 태어난 아이는 82.7세를 살 것으로 전망된다. 의학 발달로 기대수명 120세를 바라보는 것도 먼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식을 낳고 기르는 번식기(50대)보다 번식 후기(50대 이후)를 더 오래 살게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최 교수는 “세상의 어느 종도 노인이 없다. 번식이 멈추면 죽는다”며 지구상에서 인간이 ‘번식기’(50대)보다 ‘번식기 이후’(50대 이후)를 더 길게 사는 최초의 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고령 세대의 도움으로 인류가 문화를 발전시켜왔다는 ‘할머니 이론’을 소개했다. 그는 “할머니가 있는 집단이 번성한다”며 “할머니가 손자들을 돌보며 자손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지혜를 제공함으로써 인구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인생을 50년씩 나눠 ‘이모작’을 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그는 “제1의 인생은 새끼 키우느라 새치기도 할 수 있지만, 제2의 인생에 들어가면 할머니가 지혜를 나눠주는 존재였던 것처럼 우리 동네, 나라, 지구, 우주를 위해서 멋있게 살아보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 도움 주신 분들

한국인구학회, 강동관 IOM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 강은희 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정책실장,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김백준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위원,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박경숙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 유삼현 공주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이혜경 배재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황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도움 받은 책들

김보성·김향수·안미선 <엄마의 탄생>, 로버트 스키델스키 외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앨런 와이즈먼 <인구 쇼크>, 요시카와 히로시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 장경섭 <내일의 종언? 가족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 전상진 <세대게임>, 조영태 <정해진 미래>, 조은주 <가족과 통치>, 조한혜정 <선망국의 시간>, 최재천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인구전쟁 2045>, 한국인구학회 <인구대사전>, 홍춘욱 <인구와 투자의 미래>

■ 특별취재팀

송현숙 선임기자, 임아영(산업부), 박용하(정책사회부), 박은하(경제부) 기자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