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커피숍으로 변신한 김수근의 ‘학천탕’

2019.02.06 09:25

1988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문을 연 ‘학천탕’ 전경. 이 건물은 건축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김수근 선생(1931~1986)이 설계했다.

1988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문을 연 ‘학천탕’ 전경. 이 건물은 건축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김수근 선생(1931~1986)이 설계했다.

도심공동화로 사람들이 떠난 충북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는 ‘학천탕’이라는 목욕탕이 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문을 연 이 곳은 3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업중이다. 지상 8층높이, 연면적 2100㎡규모의 이 건물의 외형은 조금 특이하다. 반타원형의 외벽에 층마다 작은 창이 있어 햇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이 건물은 건축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김수근 선생(1931~1986)의 작품이다. 김 선생은 88올림픽 주경기장, 국립청주박물관, 서울대학교 예술관 등을 설계했다.

김 선생은 1984년 고 박학래 학천탕 대표의 의뢰로 이 건물을 지었다. 처음엔 거절했던 김 선생은 “목욕탕에서 평생 내 뒷바라지를 해왔던 아내의 환갑 선물로 목욕탕을 지어주고 싶다”는 고 박 대표의 설득에 건물 설계를 맡았다. 김 선생은 1986년 이 건물을 설계한 뒤 세상을 떠났다.

31년동안 목욕탕이었다가 커피숍 ‘카페 목간’으로 변신한 ‘학천탕’ 내부 모습.

31년동안 목욕탕이었다가 커피숍 ‘카페 목간’으로 변신한 ‘학천탕’ 내부 모습.

2년 뒤 1988년 이 목욕탕이 문을 열었다. 당시 청주 목욕탕 중 가장 큰 규모였다. 그만큼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인근 상인과 주민들은 이곳에서 고단한 일상을 녹여냈다. 명절때에는 사람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계란을 까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렇게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지난달 31일 기자가 찾아간 ‘학천탕’은 ‘카페 목간’이라는 커피숍으로 변해 있었다. 남탕 탈의실이 있었던 1층 옷 보관함 앞은 대기실이 됐다. 2층 목욕탕의 대형 온탕 2곳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 대신 큼지막한 빨간색과 파란색 테이블이 자리잡았다. 플라스틱 의자에 쪼그려 앉아 때를 밀던 곳은 사람들이 여럿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목욕탕에서 쓰던 수도꼭지와 샤워기 등 시설은 그대로여서 사우나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곳곳에는 사람들이 계란과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1년동안 목욕탕이었다가 커피숍 ‘카페 목간’으로 변신한 ‘학천탕’ 내부 모습.

31년동안 목욕탕이었다가 커피숍 ‘카페 목간’으로 변신한 ‘학천탕’ 내부 모습.

사람들이 찾지 않는 목욕탕을 커피숍으로 만든 것은 고 박 대표의 장남인 박노석씨(61)다. 박씨는 2010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학천탕의 대표가 됐다. 그는 “수차례 건물을 팔거나 헐어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며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유산인데다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건물을 지키고 싶어 모든 제안을 뿌리쳤다”고 말했다. 박씨는 김 선생의 설계한 건물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건물 외부는 보존했다. 또 옛 목욕탕 분위기를 살려 커피숍으로 꾸몄다. 1~2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은 목욕탕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31년동안 목욕탕이었다가 커피숍 ‘카페 목간’으로 변신한 ‘학천탕’ 내부 모습.

31년동안 목욕탕이었다가 커피숍 ‘카페 목간’으로 변신한 ‘학천탕’ 내부 모습.

목욕탕이 카페로 변하면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박씨는 “목욕탕을 운영할 때는 하루 평균 손님이 4~5명에 불과했는데 카페로 바뀌자 하루 300명이 찾아올때도 있다”며 “아주 작은 변화일 뿐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수십년을 지켜온 목욕탕의 변신에 인근 상권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그는 “목욕탕 주변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옛날 목욕탕이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인근 상권을 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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