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비세’ 인상이 주는 교훈

2019.11.19 21:00 입력 2019.11.19 21:04 수정

지난 10월1일 일본이 한국의 부가가치세 격인 ‘소비세’ 세율을 8%에서 10%로 인상했다. 세율을 2%포인트 올린 것에 불과하지만 세수증가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 규모인 약 5조7000억엔(61조원)에 달해 세금 수입도 10% 정도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난 속에 특정계층에 대한 ‘핀셋증세’ 아닌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소비행위에 세금을 올리는 ‘보편적 증세’로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기에 눈길을 끈다.

[경제와 세상]일본의 ‘소비세’ 인상이 주는 교훈

이미 두 차례나 연거푸 10% 소비세율 인상을 연기한 아베 정부이기에 이번에도 또다시 연기할 것으로 예상했다. 엄청난 국채를 발행해 양적완화와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아베노믹스’로 올인해 왔는데 ‘기업세금’은 인하하면서 ‘국민세금’을 인상한다는 건 자살골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인상했다. 경기침체 속 낮은 성장률마저 고꾸라뜨릴 소비세율 인상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무려 GDP의 2.5배에 달하는 세계최고 수준의 국가채무 때문이다.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GDP는 제자리걸음을 하는데 국가채무는 해마다 20조~50조엔씩 늘어 1200조엔을 넘어섰다.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으로 마이너스 성장에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지속되니 조세수입은 거의 반토막 났는데 사회보장 지출은 두 배로 폭증했다. 게다가 경기를 살리려 확장재정을 펼치다보니 국가채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그 전까지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의 60% 수준으로 현재의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다행히 재정위기 공감대 속 세입기반의 안정적 확보를 통한 재정확충과 국가채무 축소라는 어젠다를 설정하고 2012년 8월 여야 합의로 소비세율 인상과 재정건전화 프로세스를 담은 입법으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집권 초인 2014년 소비세율 3%포인트 인상으로 충격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한 아베 총리이지만 심각한 재정을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장기불황에다 저출산 고령화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질 때 재정이 준비되지 않으면 확장재정은 물론 사회존속에 필요한 복지지출조차 어렵게 된다. 재정디폴트 위기는 일본엔 현실이 되었고 한국엔 곧 다가올 미래로 보인다.

침체된 경제를 살린다고 낙수효과를 바라고 ‘부자 감세’와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적자국채 증가율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그것을 뛰어넘어 국가채무의 고삐가 풀렸다. 문재인 정부도 경기 하방위험 속에서 반도체 특수로 일시적으로 생긴 재정여력에 취한 데다 집권 초 재정개혁 공론화기구로 만든 ‘재정개혁특위’마저 증세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넘지 못해 조세와 재정개혁의 호기를 놓쳤다.

사실 증세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재정개혁 논의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저출산 고령화와 경제침체로 인한 골은 깊어가지만, ‘핀셋증세’도 다 못한 촛불정부는 ‘보편적 증세’로 나아가지 못하고 20대 국회는 미래를 위한 재정확충 어젠다와 로드맵을 세울 꿈조차 꾸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선 우리 곳간도 빠르게 일본을 닮아갈 공산이 크다. 오히려 일본에 비해 국가채무 800조원 대부분이 외국에 의존하는 ‘악성’이고 사회·인구구조 변화도 빨라 세수가 추세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하면 관리조차 불가능한 재정위기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최근 국회는 올해보다 9.3% 증가한 513조원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들어갔다. 야당은 대폭 깎겠다고 공언하면서 과도한 확장재정으로 국가채무를 늘려 재정위기를 자초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난도 아랑곳하지 않는 야당의 무책임한 발목잡기도 문제지만, 정부와 여당도 그토록 재정건전성을 신봉하는 야당에 지속 가능한 재정을 위한 담론의 장을 왜 제안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일본의 소비세 논의는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세제성찰을 추구하는 정부와 정당의 ‘세제연구회’에서 시작되어 2012년 여야가 세율인상에 합의하고 입법까지 마쳤다. 미국도 세수추계에 바탕을 둔 의회 ‘조세합동위원회’에서 균형 잡힌 세제를 설계하고 입법에 나선다. 우리에겐 지금 결코 증세를 입에 담지 못하는 정부와 국가미래를 위한 진정성 없는 정쟁뿐인 국회만 있다.

재정위기에 직면해 1%도 안되는 저성장하에서 보편적 증세라는 극약처방이 남 일이나 먼 미래가 아니다. 국회와 정부는 조세와 재정개혁을 다룰 상설조직과 기능을 두고 지속 가능한 국가재정을 재설계하고 입법하는 작업에 필히 나서야 한다. 당장 시작해도 빠르지 않다. 여야가 각기 주장하는 확장재정도, 재정건전성도 준비해야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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