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족쇄에…이주노동자 없는 이주노동자의날

2019.12.17 22:06 입력 2019.12.17 22:07 수정

임금체불·부당대우 땐 전직 가능하지만 스스로 증명 한계

‘휴게·휴일 규정’ 없는 근로계약서 ‘쫓겨 날라’ 묻지마 서명

안전 사각에 방치된 이주노동자들 사진은 경기도 포천 일대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의 모습이다. 국내에서 일하는 100만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민주노총 자료를 보면 지난해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7375명으로 전년도 6409명에 비해 15%가량 증가했다. 김달성 목사는 이주노동자 산재 신고율이 24%에 불과하다고 했다. 12월1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 제공

안전 사각에 방치된 이주노동자들 사진은 경기도 포천 일대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의 모습이다. 국내에서 일하는 100만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민주노총 자료를 보면 지난해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7375명으로 전년도 6409명에 비해 15%가량 증가했다. 김달성 목사는 이주노동자 산재 신고율이 24%에 불과하다고 했다. 12월1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 제공

경기 광주시의 한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노동자 라주쉬(23)에게 ‘세계이주노동자의날’인 18일은 의미가 없다. 유엔이 정한 이 기념일은 ‘출근하는 날’일 뿐이다. 노동절에도 쉰 적이 없다. 매주 일요일만 쉰다. 연차는 병원 치료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그마저 며칠 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공장이 바쁘면 연차도 취소된다.

라주쉬는 “사장님은 ‘이주노동자의날’을 모를 것”이라며 “쉬겠다고 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18일 세계이주노동자의날 기념 집회를 열지 못한다. 출근해야 하는 평일이라 이주노동자들이 모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주노조는 일요일인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대구와 부산에서도 그날 집회가 열렸다. 섹알마뭄 이주노조 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이 쉴 수 있는 일요일로 당겨 집회를 열었다”며 “비자를 연장하거나 재입국을 하려면 사장과 관계가 좋아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주 52시간 근무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주와인권연구소가 지난 2월 내놓은 ‘2018년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이주노동자 1178명의 주당 평균 휴일은 1.3일이었다. 1주일에 1일 쉰다는 응답이 49.5%로 가장 많았다.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54.4시간이었다. 주 68시간 이상 일하는 이주노동자도 7.7%에 달했다.

농축산어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더 열악하다. 외국인고용법상 농축산어업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업주가 주당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휴게·휴일 규정이 없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에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해왔다. 고용허가제는 3년 이내 최대 3번까지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게 제한한다. 3회가 넘으면 단속 대상이 된다. 임금체불이나 부당대우를 받으면 횟수와 상관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대부분은 사업장의 폭력을 묵묵히 견딘다. 토론회에 참석한 베트남인 노동자 당궉한(36)은 올해 4월부터 경기 파주시의 한 제조공장에서 일했지만 정해진 급여일에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당궉한이 관할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연속 2개월’ 임금체불이 아니라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당궉한은 “제가 ‘임금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사냐’고 하니까 사장님은 ‘버스비 5만원 줄 테니 물 먹고 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모뚜 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은 “이주노동자는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린 기회이기 때문에 계약서 내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명한다”며 “부당한 일을 겪어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니 인권이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인 라주쉬는 유튜브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2016년 한국에 온 그는 “사업장을 마음대로 옮기지 못하기 때문에 사장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왔지만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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