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척, 그런 척…내가 왜 ‘커버링’을 하냐면

2020.01.06 06:00 입력 2021.03.24 17:38 수정

‘차별’에 놀라 꼭꼭 숨는 ‘차이’

사람은 누구나 소수자성을 갖고 있지만 사회의 ‘주류’인 척 연기하며 살아간다. 소수자성을 들키기 싫어 서로를 차별하고 차별당하며 ‘보통의 차별’ 사회를 만들어간다. 지난달 27일 밤 서울 광화문 거리에 ‘고학력 이성애자 남성’이면서 ‘키 작은 군 면제자 남성’인 최재구씨(가명)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사람은 누구나 소수자성을 갖고 있지만 사회의 ‘주류’인 척 연기하며 살아간다. 소수자성을 들키기 싫어 서로를 차별하고 차별당하며 ‘보통의 차별’ 사회를 만들어간다. 지난달 27일 밤 서울 광화문 거리에 ‘고학력 이성애자 남성’이면서 ‘키 작은 군 면제자 남성’인 최재구씨(가명)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누구나 자신을 숨긴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한다. 타인이 싫어하는 모습을 감추고, 좋아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연기에 실패하면 차별당하거나 배제당한다. 한국에서 차별은 공기처럼 익숙하다.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차별받거나 차별한다.

남다르면 “비정상·비주류” 공격
누구나 있는 ‘소수자성’ 숨기고
정체성 연기하는 ‘커버링’ 만연
약점 감추려 타인을 향해 차별도


사회생활은 ‘주류 정체성’을 좇으려고 ‘진짜 정체성’을 희생해야 하는 연극판이다. 소수자성을 숨기고 다른 존재인 듯 연기한다. 완벽한 주류는 없다. 어떤 사람이든 소수자성이 있다.

영국의 명문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고학력 이성애자 남성’ 최재구씨(32·가명)는 군 면제와 심장 수술 사실을 숨기려 애쓴다. 켄지 요시노 뉴욕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이런 연기를 ‘커버링’이라고 정의했다.

사람은 자신을 커버링하면서 타인에게 커버링을 요구한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커버링을 인권에 대한 차별이나 억압으로 보지 않는다. 동성애자의 ‘존재’는 괜찮다면서도 법적 결혼이라는 ‘행동’은 안된다고 한다. 한 사람이 존재할 권리가 있다면 그 존재로서 행동할 권리도 있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도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4월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고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커버링 요구이며 차별적 인식이다.

소수자성은 다양하다. 성별, 성정체성, 장애, 병력, 외모, 나이, 출신지역, 인종, 언어, 임신, 종교 등 모든 사회·정치·문화 부문에서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경향신문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5명을 만났다. 기초수급으로 아이를 키우는 비혼모, 군 면제 남성, 중국인과 결혼한 북한이탈주민, 뇌병변 장애 여성, 고교 중퇴 동성애자가 자신의 ‘커버링’을 들려줬다.

소수자성이 다른 만큼 자신을 숨기는 방법도 다양했다.

북한이탈주민 이수진씨(38·가명)는 누군가 고향을 물어보면 ‘강원도’라고 대답한다. 성소수자 강나무씨(21·가명)는 휴대전화에 붙였던 무지개색 ‘프라이드’ 스티커를 뗐다. 비혼모 박지은씨(48·가명)는 학창시절 친구들에게도 초등학생 딸을 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뇌병변 장애인 고나영씨(22)는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어 다리 수술 흉터를 가리고 비장애인처럼 또박또박 걸으려고 노력한다.

사회적 차별 규제한 ‘차별금지법’
15년간 11번 발의에도 입법 요원


차별당하는 사람도 차별한다.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가장 반발한 이들은 치열한 취업경쟁을 뚫고 합격한 청년 정규직이었다. 이들은 시험을 거치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현실은 눈감는다. 이 정규직 청년들도 외모, 가난, 성별, 학력 때문에 차별을 겪었다.

차별금지법은 2006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법안 발의를 시작으로 모두 11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2017년 대선 공약에서는 뺐다. 당선 뒤인 2017년 7월에는 사회적 논쟁을 유발할 수 있다며 ‘100대 국정과제’에 넣지 않았다. ‘가장 보통의 차별’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 자식에게도 말 못한 ‘북한 출신’…“강원도 사람이라 속여”

‘커버링’하는 사람들

성소수자 강나무씨(가명)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여성 실루엣이 그려진 액자를 들고 있다. 비혼모 박지은씨(가명)가 지난달 27일 인천의 한 공원에서 임신 당시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들고 서 있다(왼쪽부터). 김창길·권도현 기자 cut@kyunghyang.com

성소수자 강나무씨(가명)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여성 실루엣이 그려진 액자를 들고 있다. 비혼모 박지은씨(가명)가 지난달 27일 인천의 한 공원에서 임신 당시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들고 서 있다(왼쪽부터). 김창길·권도현 기자 cut@kyunghyang.com

21세 동성애자, 정체성 숨기고 이성애자 ‘연기’…
군면제 청년, 심장병·작은키는 ‘하자 있다’ 취급 당해

강나무씨(21·가명)는 서울 관악구에 사는 대학생이다. 밝고 외향적인 성격 덕에 ‘인싸’(인사이더)로 통한다. 학교 친구만 100명이 넘는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학교 앞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치맥’을 즐긴다. 대학생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화제는 연애다. 이성친구에 대한 설레는 감정을 털어놓는 친구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함께 웃는다.

강씨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여자’ 이야기를 한참 주고받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공허감이 든다. 그가 말했다. “깔끔하게 게이예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동성애자라는 걸 숨긴다. 4명만 강씨의 성적지향을 안다. 숨기는 게 하나 더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검정고시 출신’이다. “고등학교 안 나왔어요”라고 밝힐 때면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대학 글쓰기 강의 때 ‘(고교) 학창시절’을 쓰라는 과제에 일상생활을 적어냈다. 과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감점당했다. 이후 강씨는 그 강의 때 친구 학창시절 경험을 자기 얘기처럼 썼다.

누구나 다수가 싫어하는 모습을 숨기고 ‘정상’이나 ‘주류’가 되려고 한다. 소수자성을 들킬 때 ‘비(非)~’ 경고음이 울린다. ‘비~정상’ ‘비~주류’가 된다. 다른 사람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틀린 사람으로 차별받는다. 한국 사회의 ‘비~’들은 카멜레온처럼 진짜 모습을 감추고 주변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보호색은 필수다. 켄지 요시노 뉴욕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비~’를 감추려는 노력에 ‘커버링(Cover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커버링이란 주류에 부합하도록 타인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라며 “다양화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어느 정도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 주류로 보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출신 지역, 장애, 성별, 학력, 성적지향, 가족관계 등 다양한 측면의 ‘비~’들을 만나 커버링 경험을 들었다. 이들은 학교·직장·길거리 등 일상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소수자성 때문에 차별이나 혐오를 당한 경험을 공유했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저마다 커버링 방법을 연마했다. 강씨가 ‘마음의 벽장’에서 나와 진짜 자신을 보여준 이는 부모와 친구 몇 명뿐이다. “다 드러내고 살 수는 없어요. 필요하다면 다시 ‘벽장’ 속으로 들어가야죠.”

■ 꼭꼭 숨어라, 차별거리 보인다

강씨는 정체성을 숨기고 이성애자 남성을 연기한다. 강씨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을 먼저 소개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인지 먼저 눈치를 본다. 이성애를 정상으로 전제하는 대화에서 기계적으로 웃으며 장단을 맞춰준다. 강씨는 아주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다.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성적지향을 인정하고 좋아하던 남자 선배와 연애했다. 이렇게 살면 ‘성공한 인생’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순 없었지만 일부러 드러내진 않는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죠. 제 정체를 아는 사람을 회사에서 만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대학에 입학하면서 휴대전화에 붙였던 ‘프라이드(PRIDE)’ 스티커를 뗐다. 무지개색인 이 스티커는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한다.

“선생님, 저는 아빠가 없는데요. 어떻게 하죠?” 박지은씨(48·가명)의 딸 박혜진양(11·가명)이 초등학교 2학년 수업시간 중 손을 들고 물었다. 가족에 대해 말해보는 수업이었다. 교과서가 설명하는 한국의 ‘정상가족’은 아빠, 엄마, 자녀였다. 혜진이는 엄마와 둘이 살아왔다. 박씨는 혜진이를 낳은 뒤 결혼하지 않고 남자와 헤어졌다. 박씨 가정은 교과서가 설명하는 정상적인 가족이 아니었다. 교사는 뭐라 답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남편’ 그리고 ‘아빠’가 없는 박씨네 가족은 ‘정상’ 바깥에 소외돼 있다.

“저는 어딜 가나 ‘짱’을 먹어요.” 박씨는 호탕한 웃음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휴일에는 딸과 롤러장에 가고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한다. 모녀는 친구처럼 지낸다. 혜진이를 혼자 키우기로 한 건 박씨 선택이다. 혜진이 아빠는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다. 화가 난다고 아이를 침대에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파혼을 결심했다.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남에게 선뜻 ‘비혼모’라고 밝히지는 못한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박씨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제가 38살에 비혼모가 됐잖아요. 그 전까지 알던 사람들에게 ‘나 비혼모야’라고 말을 할 순 없었어요. 누군가 비혼모란 걸 눈치챘다 싶으면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몸을 돌리기도 해요.”

쌍둥이 키우는 북한이탈주민, 탈북자·워킹맘 편견에 ‘고통’…
거짓말로라도 장애 숨기고 싶은 뇌병변장애인

이수진씨(38·가명)는 북한이탈주민이다. 함경북도 회령시에 살던 이씨는 2006년 돈을 벌려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한국에선 집을 준다’는 말에 2009년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공장에서 만난 중국인 남편(47)과 결혼했다. 태어난 쌍둥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었다. ‘탈북자’는 가난하고 게으르며 폭력적이라는 시선 때문에 괴로웠다. 이씨는 주변에 자신을 ‘강원도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는 강원도 사람이라고 하고, 오래 볼 사람들에게는 중국에서 왔다고 해요. 뭐든 북한에서 왔다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이씨는 아이들에게도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숨겼다. 아빠가 중국인이라는 것은 알지만 엄마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은 모른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엄마, 한국 사람 아니에요?”라고 물어봤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소리야, 엄마는 한국 사람이지”라고 대답했지만 절망감이 짓누른다. “언젠가는 말해야 할 텐데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우리를 원망할까요. 엄마 아빠가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애들이 왕따를 당하진 않을지 걱정이에요.”

한국 남성들은 ‘남자답기’를 요구받는다. 이 남성성을 잃으면 ‘비정상’으로 취급된다. “에이, 재구씨는 남자 아니네. 군대를 갔다와야 진정한 남자가 되지!” 학군단(ROTC) 장교 출신 직장 상사는 술자리에서 최재구씨(32·가명)에게 면박을 줬다. 최씨는 자신이 ‘군면제’라는 사실을 가급적 숨긴다.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거나 화제를 돌리지만 들통날 때도 있다. 남성사회에서 군대 이야기는 ‘진정한 남자’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최씨는 군면제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자신의 사회생활 경험을 강조한다. 면제를 받은 최씨는 또래 남성들보다 일찍 취업해 ‘스펙’을 쌓았다. 군면제자는 끈기나 근성이 없다는 편견에 맞서 능력을 보여주려 했다. “한국에서 군대 안 갔다온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거나 뭔가 몸에 문제가 있는 사람 취급을 받잖아요. 비정상으로 보이는 게 싫어요.”

최씨는 165㎝인 자신의 키도 남자로서 약점이라고 본다. 평소 신발에 3㎝ 깔창을 넣는다. 소개팅에 나갈 때면 여기에 3㎝ 키높이 굽이 든 ‘마법의 구두’를 신는다. 소개팅 주선자는 늘 최씨의 키를 물어봐 만남 자체가 어렵다. 처음부터 상대 여성이 ‘키 175㎝ 이상을 원한다’고 조건을 내미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는 남자의 키가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에요. 남자는 여자보다 키가 커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퍼져 있어요. 남자가 170㎝ 이하면 사람도 아니라고 하잖아요.”

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외모에서 끝나지 않는다. 건강하고 완전한 몸이 아니면 ‘하자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람은 누구나 병을 앓거나 장애인이 될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역량, 능력, 성품과 상관없이 집단에 받아들이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남들과 다른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숨기기 더욱 힘들다.

최씨가 군면제를 받은 이유는 선천적 심장병 때문이다. 생후 10개월에 가슴을 여는 수술을 받았다. 병역판정검사에서 6급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최씨는 달리기와 등산을 좋아한다. 병이 완치돼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 사실을 나서서 증명해야 하는 것은 싫다. 초등학생 때는 체육시간이 다가오면 수술 자국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화장실이나 교실 구석에 숨어 몰래 옷을 갈아입곤 했다. 어른이 돼서도 수술 자국이 보일 만한 상황을 피한다. 친한 친구가 아니면 최씨가 군면제를 받은 이유를 모른다. 직장 동료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 면제 사유를 물어보면 “저는 신의 아들이에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대답을 피한다.

고나영씨(22)는 뇌병변장애인이다. 출산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날 때 잠시 숨을 쉬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입은 뇌 손상 때문에 다리가 굳었다. 고씨는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제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을 정도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고씨의 장애를 눈치채기 어렵다. 고씨가 비장애인처럼 행동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어릴 때 ‘나는 왜 다르지’ 생각했지만 커갈수록 정말 많이 노력했죠. 장애를 숨기는 게 자연스러워졌어요.”

장애인이라는 말을 듣기가 싫었다. 보호 대상 취급을 받기도 싫었다. 고씨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이름과 나이만 밝혔다. 장애를 입 밖에 내본 적이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일부러 더 바른 자세로 앉고 또박또박 걸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다리가 불편하냐’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다쳤다”고 대답한다. 돌아서면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이 찾아온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처럼 몸을 꾸미는 데 애썼다. 파우치 하나가 가득 찰 정도로 화장품을 샀다. 눈에 결막염이 생길 때까지 렌즈를 꼈다. 파마도 즐겨 했다. “눈 밖에 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남의 시선을 받는게 무서웠어요. 장애를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싫어요.”

■ 소수자성 들키면 낙인이 찍힌다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아 보이기 위한 ‘보호색’은 필수…
“다 드러내고 살 수 없어요”

완벽한 커버링은 없다. 아무리 주류처럼 행동하려 해도 한계에 부딪힌다. 커버링에 실패하면 어김없이 ‘비~’ 낙인이 찍힌다.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따돌리는 ‘직접 차별’도 있지만 동일한 기준·제도가 결과적으로 소수자를 배제하는 ‘간접 차별’도 있다. 소수자성을 혐오하는 발언에도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일터에서부터 불이익이 시작된다. 임금이 깎이고 취업이 어렵다. 북한이탈주민 이수진씨는 한 제조업체에서 사무보조로 일한다. 이씨는 강원도 출신인 척 이력서를 꾸며 냈으나 금방 들통났다. 사장은 2018년 최저임금이 올랐는데도 2017년 기준으로 월급을 줬다. 경리에게 따져봤지만 “저도 월급이 별로 안 올랐다”는 말만 들었다. 계속된 항의 끝에 7개월이 지나서야 제 월급을 주기 시작했다. 격주로 토요일에 3시간 일하는 임금은 아직도 못 받는다. 과거 식당에서 일할 때도 마지막 달 일한 월급을 주지 않아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사장이 노동부 조사를 받을 때 제가 도둑질했다고 거짓말했어요. 제가 북한 출신이고 한국에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깔보는 거죠. 돈이 필요해서 합의해주고 월급을 받았는데 후회돼요.”

이씨는 ‘워킹맘’이다. ‘워킹맘’이란 정체성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발목을 잡았다. 아이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인 척 행동할 수 없었다. 면접에서 아이가 있다고 말하면 사장은 이씨를 뽑지 않았다. 비혼모인 박지은씨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 박씨는 검정고시로 얻은 ‘고졸’ 학력을 보완하려고 전산회계 1급 자격증을 땄다. 남들은 3급으로도 취직했지만 박씨는 일을 구하지 못했다. 박씨는 자신이 ‘비혼모’라서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노동부 취업종합정보망인 ‘워크넷’에 이력서를 등록해도 자격증과 무관한 서비스직만 추천해줬다. “회사는 밤늦게까지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고 하면 면접은 거기서 끝나죠. 비혼모라고 하면 더 안된다고 해요. 원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되겠다고 내가 노력을 하겠다는데도 싫대요. 절대 받아주지 않아요.”

‘비~’들은 인간관계에서도 차별받고 배제된다. 비혼모 박지은씨는 딸 혜진이가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는 동안 한번도 ‘엄마들 단톡방’에 초대받은 적이 없다. 공개수업에서 만난 다른 학부모들은 박씨를 따돌린다.

혜진이도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쟤는 아빠 없는 애니까 놀지 마.” 혜진이 동급생 중 한 명의 말이 시작이었다. 당시 10살이었던 혜진이는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매주 심리상담 치료를 받는다. “비혼모가 아니라면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이잖아요.”

■ 비혼모 드러내니 멀어진 사람들…“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져”

북한이탈주민 이수진씨(가명)가 지난달 29일 경기 안산의 한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다. 그는 중국인 남성과 결혼한 다문화 가족이기도 하다. 선천적 심장병으로 군을 면제받은 최재구씨(가명)가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다. 뇌병변 장애인 고나영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천호동의 한 장애인센터 복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왼쪽부터).  우철훈 선임기자·이준헌 기자·이상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이미지 크게 보기

북한이탈주민 이수진씨(가명)가 지난달 29일 경기 안산의 한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다. 그는 중국인 남성과 결혼한 다문화 가족이기도 하다. 선천적 심장병으로 군을 면제받은 최재구씨(가명)가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다. 뇌병변 장애인 고나영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천호동의 한 장애인센터 복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왼쪽부터). 우철훈 선임기자·이준헌 기자·이상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고나영씨는 학교에서 늘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깍두기’ 취급을 받았다. 혼자 교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입학해 장애인증명서를 제출하자 교직원은 “장애인이었어? 장애인같이 안 생겼는데”라고 했다. 고씨는 아무 말도 못했다. 대학을 3주 만에 자퇴한 뒤 노동부의 한 직업훈련 교육을 받았다. 학원 강사는 다른 학생들이 보는 교실에서 고씨를 불러 “장애인 전형이 있으니까 그걸로 시험 지원하라”고 말했다. “귀가 불타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졌어요. 다른 사람들은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요.”

커버링에 실패하면 근거 없는 편견을 겪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이 벌어진다. 동성애가 퇴폐적인 타락이라는 편견은 널리 퍼져 있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음란하게 노는 날라리라고 생각해요.” 강나무씨가 말했다. “거기에다가 검정고시 출신인 것까지 말하면 ‘양아치’ 취급이에요. ” 강씨가 성소수자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그가 ‘음란한 짓’을 한다고 의심한다. 중학교 시절 TV 뉴스에서 나오는 성소수자 얘기에 강씨 어머니는 “더럽다”고 했다.

북한이탈주민에겐 ‘세금도둑’이라는 편견도 따라붙는다. 이들도 국민이며 납세의무를 진다는 사실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수진씨는 동네 할머니에게 ‘탈북자들은 한국이 세금으로 먹여살려주니 좋겠다’란 말을 듣고 답답했다. “똑같이 세금 내고, 열심히 사는데 왜 그런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비혼모에겐 ‘음란하고 부도덕한 여자’라는 편견이 쏟아진다. 박지은씨는 비혼모가 어떤 선택을 하든 사회적으로 ‘나쁜 여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엄마가 혼자 애를 키우면 부도덕한 여자가 되고, 아빠가 혼자 애를 키우면 떠난 여자가 무책임한 여자가 되죠.”

■ ‘비~’가 안되려면 얼마가 필요한가

차별받지 않으려 쏟은 유·무형의 막대한 비용…
“내 인생 전체가 장애를 숨기는 데 드는 비용이었어요”

커버링은 일종의 이중과세다. 정체성을 숨기려는 이들은 ‘주류’가 아니란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차별 대상이 아니었다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추가비용을 떠안는다. 비용의 형태는 다양하다. 금전, 시간, 감정, 인간관계…. 어떤 비용은 양으로 계산할 수 없지만 실재한다.

최재구씨는 작은 키를 숨기려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중학생 땐 강남의 한 유명 한약방에서 키 크는 한약을 지어 먹었다. 약값은 당시 돈으로 700만원 정도였다. 효과가 없었다. 지금은 키높이 깔창과 신발에 돈을 쓴다. 깔창은 신발 사이즈별로 3개를 구비했다. 깔창과 밑창, 두꺼운 마법의 구두 조합은 소개팅에 필수다. 이 마법으로 최씨는 ‘남자의 조건’인 170㎝를 넘을 수 있다. 발볼이 넓거나 발목이 높은 신발을 산다. 두툼한 깔창을 넣어도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씨는 ‘컨버스 하이탑’ ‘팀버랜드 워커’를 각각 7~8켤레 갖고 있다. 깔창을 넣기 때문에 제 사이즈보다 한 치수 큰 신발을 산다.

뇌병변 장애로 두 다리 강직을 겪은 고나영씨는 비장애인처럼 걷기 위해 수술, 치료, 재활을 반복했다. 고씨는 8세 때 처음 수술을 했다. 굽은 발목을 교정하기 위해 여섯 군데 근육을 옮기고 늘리는 대수술이었다. 10세 때까지 병원을 오가며 재활했다. 부모는 고씨가 걱정할까봐 수술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21세 때 2차 수술을 했다. 아킬레스건 근육을 늘리고 평발을 아치 모양으로 만들었다. 수술 직후 재활을 위한 헬스 운동 등록비로 60만원도 냈다.

장애와 맞서는 모든 과정이 돈이었다. 수술뿐 아니라 입원, 재활, 치료에도 적잖은 비용이 들었다. 지출이 늘고 수입은 줄었다. 맞벌이를 하던 어머니는 고씨가 8세 때 재활을 도우려고 직장을 그만뒀다. 자신이 주변을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이 언제나 고씨를 괴롭혔다. 조별 단체 줄넘기 시험을 준비하던 중학교 체육시간 때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줄넘기 연습을 했다. 무릎 인대가 늘어나 병원에 실려갔다.

시간도 비용이다. 고등학생 시절 고씨는 늘 장애가 티나지 않게 걷기 위해 애썼다. 수술 때문에 무릎에 생긴 흉터를 가리는 일도 필수였다. 고씨는 여름에도 겨울 체육복 바지를 입었다. 친구들이 교복 치마를 줄이려 안달일 때, 더 이상 늘릴 수 없을 때까지 내려입고 무릎에 파스를 붙였다. 20세 때 2차 수술을 받은 후엔 아킬레스건에도 흉터가 생겼다. 여름에도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양말에 운동화를 신었다. “제 인생 전체가 장애를 숨기는 데 드는 비용이었어요.”

북한이탈주민 이수진씨는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면 거울 앞에 서서 입에 볼펜을 물었다. 6개월 동안 3일에 한번 입에 볼펜을 물고 아들의 동화책을 소리내서 읽었다. 취직할 때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면 말투부터 바꿔야 했다. “한국 사람처럼 말하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컸을 때 ‘엄마는 왜 그렇게 말해?’라고 물어볼까봐 무서워요.”

돈과 시간을 계산할 수 없는 ‘커버링 비용’도 있다. 박지은씨는 비혼모가 된 후 인간관계를 잃었다. 비혼모란 걸 숨기기 위해 관계의 시작과 유지를 포기했다. 다른 비혼모가 아니면 일상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별명이 ‘연예인’이었을 만큼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활달했던 박씨는 ‘거리두기’가 익숙해졌다. “경제적으로 정말 최악인데 인맥까지 막혀요. 따뜻한 말 한마디, 힘내라며 내어줄 손, 이런 관계가 단절되는 거예요.”

“친구들과 함께 웃긴 웃지만…. 그 순간의 저는 제가 아니잖아요. 그 시간이 끝나면 공허하고 우울해져요.” 동성애자인 강나무씨는 대학 친구들이 “여자 소개시켜줄게”라고 제안할 때마다 웃음으로 넘긴다. 이성애자인 척하기 위해 감정을 소모한다. 성소수자 모임에서 가까웠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슬퍼할 기회’가 없다. 성소수자는 정체성을 공개해 가족과 절연한 채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유가족은 성소수자 친구를 환영하지 않는다. 강씨는 고인의 친척이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달려간다. 검은 정장과 넥타이가 예의인 것을 알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강씨는 다른 성소수자 친구와 말을 맞춰 다른 사람이 된다. 고인의 대학 후배나 직장 동료로 정체성을 숨긴다. 강씨가 ‘슬퍼할 기회’를 얻으려면 진짜 자신은 포기해야 한다.

■ 두려움 없이 ‘나’를 말할 수 있어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이 정도는 넘어야 정상’이라고 말하는 세상

이들은 각자 삶은 달랐지만 바라는 삶은 똑같았다. 사회에서 존재를 존중받으며 살고 싶어 했다. 법·제도만으로는 차별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타인의 다름에 대한 존중 위에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진짜 나를 감추고 사는 사람들 많지 않을까”…
타인의 다름 존중 위에 ‘차별금지법’ 만들어지길

박지은씨는 “그저 사회의 일원인 한 엄마로 봐주길 바란다”며 “물질적인 지원보다도 먼저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책임도 못 질 아이를 내팽개쳤다’고 해요. 사람들이 ‘부부가 할 일을 엄마 혼자 하니까 조금 벅차겠다’고 생각만 해줘도 살 만한 세상이죠.”

강나무씨는 “일상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수진씨는 “북한이탈주민도 한국에서 열심히 살려는데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너무 힘들다”며 “특히 일하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취직 과정에서 차별당하지 않도록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최재구씨는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에게 어떤 기준을 들이대며 ‘이 정도를 넘어야 정상’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각자 나름의 역할이 있는데 모두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고나영씨는 “소수자가 차별의 시선을 받도록 이 사회가 방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 많을 거예요.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응원이 필요해요. 어떤 사람이라도 ‘나는 누구’라고 두려움 없이 남에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가장 보통의 차별]아닌 척, 그런 척…내가 왜 ‘커버링’을 하냐면

※기사 중 '미혼(모)' 표현을 '비혼(모)'로 2021년 3월24일 바로잡습니다. 경향신문은 가족 형태를 다룰 때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용어를 쓰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 잘못 사용된 표현에 대해 독자들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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