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SNS 뒤…잠들지 못하는 ‘유령 노동자’

2020.01.13 06:00 입력 2020.05.18 17:56 수정

②무인화의 허구

ㆍAI가 놓친 콘텐츠 선별…24시간 교대·유해물에 반복 노출 ‘스트레스’
ㆍ포털기업 데이터센터·관제실…최저임금 수준 받으며 야근 또 야근
ㆍ기술 더 발전해도 운영·관리 인력 필요…‘디지털 막노동’ 계속될 것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포털, 인터넷 쇼핑몰, 각종 플랫폼까지…. 온라인 세계는 24시간 ‘개점’ 상태다. 누군가는 이곳들이 잘 돌아가는지 지켜봐야 한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화면 뒤 ‘노동자들’을 떠올리긴 쉽지 않지만.

인공지능(AI)과 인터넷 기술 뒤에 감춰진 노동을 연구한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의 메리 그레이와 시다스 수리는 AI를 발달시키고 보완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고스트워커’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존 고용관계를 깨고 퍼지는 이들의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게 급선무라고 이들은 말한다.

경향신문은 이와 관련해 포털기업에서 일하는 국내 저임금 노동자들에 주목했다. 전 세계에 흩어진 구글·페이스북 노동자와 비교하면 고용관계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AI 또는 기계를 보완하는 이들의 일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령노동’으로 부를 만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자신들의 일에 이 같은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다만 신원 공개를 원하지 않아 모두 가명으로 했다.

■ 화면 뒤의 ‘문지기’들

위 사진 출처는 무료 이미지 사이트(O-dan.net)

위 사진 출처는 무료 이미지 사이트(O-dan.net)

이혜은씨는 국내 한 포털기업 자회사에서 수년간 일했다. 회사에 나가면 모니터를 켜고 몇 시간씩 이미지나 동영상을 들여다본다. “정상적인 행위인지 성적 학대인지, 써도 되는 비속어인지 아닌지, 이런 것들을 가려내야 되거든요. 처음엔 적응이 안돼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계속하다 보면 좀 무뎌지긴 해요.”

이용자들이 블로그, 카페 등에 올린 글과 이미지, 동영상 콘텐츠는 1차로 AI가 걸러낸다. 하지만 AI가 판단하지 못하는 영역이 언제나 남는다. 이런 콘텐츠가 노출돼도 되는지, 이씨 같은 노동자들이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며 판단한다. AI는 이 판단들을 재료 삼아 학습을 해 정확도를 높인다. “아이들이 이런 걸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빨리 쳐내고 싶어지거든요. ‘어디 한번 해보자’ 이런 느낌으로, 기를 쓰고 동영상을 지운 적도 있어요.”

그와 동료들은 업무가 끝나고 일을 잊는 것을 ‘오프시킨다’고 표현한다. 문제는 어떤 장면들은 모니터를 꺼도 계속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딸을 둔 엄마인 그는 수년 전 업무 중 본 아동학대 영상이 떠오르면 지금도 손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진다고 했다. “아무리 해도 ‘오프’가 안되는 거죠. 세상이 너무 무섭게 느껴지고.”

‘대체 누가 이런 걸 올리는 걸까. 내 주변에도 있는 걸까.’ 이런 생각 때문에 대인관계가 불편해진 적도 있다. 고충을 주변에 터놓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 ‘그런 거 보니까 좋겠네’ ‘우리는 구하지도 못하는 걸 그냥 보네’. 농담으로라도 누가 이런 얘기를 하면 상처받을 것 같았거든요.”

부서엔 20대 ‘사회 초년생’이 많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입사했는데도, “(유해물의) 강도가 너무 세서 어쩔 줄 모르는” 직원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이씨는 기억한다. 신입사원 급여는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없으면 안되는 일인데,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가치를 높게 쳐주는 일은 아니었던 거죠.”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직원들이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다.

그들이 봐야 하는 동영상과 이미지가 대폭 줄어든 것은 2010년대 중반. 본사가 일부 업무를 중국의 자회사로 외주화하면서다. 이미지는 언어 장벽의 제약이 덜해 가능한 일이었다. AI도 발달해 점점 더 많은 유해물이 자동으로 걸러진다.

조현애씨는 또 다른 포털기업 자회사에서 콘텐츠 검수 업무를 한다. 종일 화장실도 못 가고 모니터를 보느라 방광염에 걸린 적도 있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던 때는 수면장애와 이명에 시달렸다. 운영 정책을 위반한 이용자를 제재하고 나면 전화와 e메일로 욕설이 쏟아진다.

구글·페이스북 등 전 세계 디지털 기업들도 부적절 콘텐츠를 걸러내기 위해 사람을 고용한다. 유해정보 차단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과정은 똑같다. AI가 먼저 걸러내고, 위험성이 감지된 콘텐츠를 사람이 재분류한다. 학자들은 이 노동을 ‘데이터 문지기’ ‘숨겨진 디지털 노동’ ‘디지털 청소 노동’ 등으로 불렀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외 자회사와 협력회사에 이 업무를 맡기고 있다. 구글·페이스북 등은 IT 인력 공급업체를 통해 세계 각지 노동자들에게 일을 배분한다. 영어 콘텐츠의 조정 업무는 대부분 필리핀·인도 노동자가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필리핀 콘텐츠 조정 노동자 실태 를 보도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지난해 12월 콘텐츠 조정 일을 하던 한 노동자가 잔혹한 영상들 때문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얻게 됐다며 페이스북과 용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했다.

국내에도 구글 콘텐츠 조정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민아씨가 그중 한 명이다. 김씨는 특정 검색어가 입력될 때 상위에 노출돼야 할 사이트를 고르는 작업을 한다. 검색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유해물은 검수하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회사와의 ‘비밀 유지 서약서’ 때문에 급여 등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 일을 자신 이외 어떤 노동자가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일 처리가 제대로 안됐을 때는 회사로부터 e메일이 온다. “e메일로 ‘계약 파기’(‘해고’ 대신 이 단어를 사용했다)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번 꼼꼼하게 읽어봐요.”

■ 디지털 기업의 ‘막노동’

스위스의 한 데이터센터 내부. 게티이미지

스위스의 한 데이터센터 내부. 게티이미지

채명민씨는 국내 한 포털기업 데이터센터에서 일한다. 서버를 증설·제거하거나 결함을 고치는 게 주 업무다. 무거운 서버를 들이고 빼는 일도 직접 한다. 국비 지원으로 IT 교육을 받고 입사한 그는 이 일을 “말 그대로 몸 쓰는 직업”이라고 표현한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대응해야 해서 식사도 거의 모니터를 보면서 한다.

군 복무 직후 취업한 채씨는 ‘취업이 안되는 건 청년들 눈이 높기 때문’이라는 일부 정치인들 말을 옳다고 여겼다.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우선 취직을 해 몇 년 고생하고, 경험이 쌓이면 이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입사 후 높은 이직률에 놀랐다는 그는 1년이 지난 지금 그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돈도 많이 안 주는데 전망도 없기 때문”이란다. 오후 10시~오전 10시 야간근무까지 해도 연봉은 최저임금(2019년 기준 2094만원)보다 20여만원 더 받는다. “선배들이 저한테 조언해요. ‘여기처럼 사람 귀한 줄 모르는 데는 희망이 없다. 차라리 중국으로 가라’고.”

한유리씨는 한 포털기업 관제실에서 일한다. 이상신호가 들어오면 매뉴얼에 따라 연락받을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한 달에 여섯 번까지 12시간 야간당직을 혼자 섰다. 동료 대부분 20대 초반이고, 연봉은 최저임금 선이다. “포털 자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이런 업무를 할 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해요. 어리고, 경험 없고, 사회생활 안해본 사람만 오는 것 같아요. ‘넥스트(다음)’는 없는 직장이에요.”

또 다른 포털기업의 데이터센터에서 일하는 김동근씨 역시 자기 일이 ‘막노동’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너무 최소 인력이라 더 이상은 줄일 수도 없을 걸요. 수만대 서버를 어떤 땐 대여섯명이 돌보거든요.”

이들의 직장은 모두 본사(네이버·카카오) 업무를 외주받은 운영법인이다. 지난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에 가입한 네이버·카카오 노동자들 임금 수준을 분석해본 결과 본사와 운영법인의 임금 격차가 뚜렷했다. 네이버 본사 소속 조합원(응답자 392명)은 연봉 5000만원 이상이 93%인 반면, 운영법인 소속 조합원(응답자 132명)은 연봉 5000만원 미만이 82%였다. 카카오도 본사 소속 조합원(응답자 80명) 중 84%가 연봉 5000만원 이상인 반면 운영법인은 조합원(응답자 29명)의 100%가 연봉 4000만원 미만이었다.

AI가 더 발달하면 이 같은 ‘저임금의 고된’ 노동은 사라질까. 자동화 자체를 위해서도 사람 노동은 계속 필요하다는 게 학자들의 예측이다. 그레이와 수리는 이를 ‘자동화 최종단계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AI 설계자들이 목표를 계속 수정하기 때문에 자동화엔 ‘끝’이 없다. 그래서 AI를 보완하는 노동이 계속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늘 이 업무 저 업무를 새로 습득해야 한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조현애씨는 말했다. “먼 미래엔 사라질지 모르죠. 하지만 기계나 프로그램도 사람이 만든 거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관리하는 인력이 필요하잖아요. 다만 회사는 인건비를 계속 아끼려 할 테니…. 대우가 좋아질 것 같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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