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

2020.01.23 19:25 입력 2020.01.23 19:34 수정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최소 3년은 그럴 작정이다. ‘공항 패션’이 뜨는 연예인도 아니고 내 항공 마일리지에 별 관심 없겠지만, 동네방네 새해 다짐을 소문내는 중이다. 어디 남사스러워서 비행기 타겠어, 라는 스스로를 위한 밑밥이랄까.

[녹색세상]난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전치 3개월의 몸으로도 기어이 출근해 꼬불쳐 둔 연차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중독자였다. 숨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온 범고래처럼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디라도’의 공기를 마셔야 살 것 같았다.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이란 기억이다’라고 했는데, 여행은 기억을 쌓는 생생한 삶의 순간을 선사한다. 그 기억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20년 전부터 브래지어를 벗어던졌고 미백 화장품 대신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며 즐겁게 피부를 태운다. 내게 여행의 이유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갈 깜냥을 얻는 것이니까.

작년에 쓰레기 없는 마을을 보러 유럽의 제로 웨이스트 도시 ‘카판노리’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이탈리아까지 왕복 비행기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800㎏ = 서울시 에코마일리지에 나온 우리 집의 1년간 탄소 배출량 역시 800㎏. 그러니까 목욕하고 밥해먹고 인터넷에 연결하거나 난방·에어컨 등을 틀며 여자 두 명의 삶을 떠받친, 전기 수도 도시가스의 모든 에너지가 항공여행 한 방에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제야 기후위기 행동을 촉구하며 ‘결석 시위’를 이끈 그레타 툰베리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화장실이 없는 배 갑판에서 ‘대변만 담아요’라고 써진 양동이를 들고는 “개인의 행동이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에 “의견을 형성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플라이트셰임’ 운동이 저가 비행기처럼 늘고 있다. 항공여행은 역사상 최초로 자부심에서 자괴감으로 환승하는 중이다. 툰베리의 나라인 스웨덴 국민의 23%가 기후위기를 걱정해 항공 여행을 줄였다고 답변했다. 그리하여 그의 말은 시속 900㎞의 비행기보다 더 빠르게, 초속 900㎞의 에너지로 와 닿았다. 나는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최초로 태국의 방콕 말고 방에 콕 머무는 ‘방콕’에서 겨울을 맞는다. 2018년 한국인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4위로 세계 평균보다 2.5배 많다. 또한 2017년 전 세계에서 비행거리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항공사가 바로 대한항공이었다.

이제 화상회의를 열거나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이나 ‘웜샤워(warm shower)’ 등의 숙박공유를 통해 해외여행자를 만나 일상을 여행하듯 보내야지. 비행기 이착륙 때 최대 25%의 연료를 소비하므로 단거리 비행은 되도록 피할 거다. 중국과 일본 여행은 줄이고 국내의 경우 기차 버스 등의 육상교통을 이용한다. 항공여행에서 나온 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나무 심는 프로젝트에 기부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나는 62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프랑스처럼 항공여행에 3~10%의 환경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라는 프루스트의 말을 새기기로 한다. 결국 우리가 살아갈 곳은 ‘지금 여기’의 일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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