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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영혼을 위하여

2020.02.09 20:46 입력 2020.02.09 20:47 수정

2011년부터 “총선 출마하려고 저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012년 11월, 검찰 내부망에 한 달 기한으로 만들어진 익명게시판에서 불출마 선언을 요구받기도 했지요. 저에 대한 헛소문이 총선을 변곡점으로 밀물처럼 밀려들다 썰물이 되어 빠져나가는 현상은 지겹도록 반복됐습니다.

[정동칼럼]상한 영혼을 위하여

부조리를 비판하는 사직글이 총선용 튀는 언행으로 의심받는 일이야 검찰 흑역사에서 전례가 없지 않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요. 그러나 쌓인 세월이 몇 년인데 아직도 동기를 의심하며 못 들은 체하는지, 비판과 건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잘못을 고치는 대신 탄압에 급급하여 자체 개혁 기회를 놓쳐버린 검찰 수뇌부에 대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세월과 함께 쌓여갔습니다.

몇몇 공익제보자의 총선행으로 한동안 왁자했습니다. 소급하여 동기를 의심하고 조롱하며 급기야 저주하는 듯한 말들까지 접하고 보니, 제 일인 듯 마음이 저립니다. 사회 곳곳에서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공익제보자분들 역시 같이 아플 겁니다. 공익제보자들은 삶이 고단한 만큼 예민해져 고통에 민감하거든요.

공익제보자 보호에 극히 인색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새로운 선택은 과감하게 매도하는 풍조는 잠재적 공익제보자들을 더욱 주저하게 만들어 우리 사회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익제보자 중 소속 기관에 비교적 장기간 버티며 이번 총선에도 여전히 검찰에 뿌리내리고 있는 제가 말해야 곡해가 덜할 테니 독자분들께 대신 하소연합니다.

공익제보는 해당기관과 사회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되지만, 공익제보자들은 숱한 사람들에게 밟히고 짓이겨져 대개 영혼이 너덜너덜해집니다. 각오하고 몸을 던진 분들도 많겠지만, 상당수 공익제보자는 소속기관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기에 벼랑 끝으로 내몰릴 줄 모르고 문제제기한 데서 고난이 시작됩니다. 2012년 12월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 구형건으로 상부와 충돌할 때, 이의제기를 하면 합리적으로 검토해줄 줄 알았고, 백지구형이 위법하다는 걸 당연히 인정할 줄 알았거든요. 저 역시.

감수할 것인가, 항의할 것인가. 그리고 버틸 것인가, 나갈 것인가. 공익제보자의 양자택일 선택지에서 여백은 권력에의 동조자 또는 차가운 방관자가 된 동료들의 뒷모습입니다.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공익제보한 이지문 중위가 장교와 사병 500명의 거짓말과 침묵으로 인해 거짓말쟁이로 몰렸던 일화는 공익제보자가 처한 엄혹한 현실을 극명하게 말해주지요.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법률이 제정되고 보호가 계속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보호의 공백은 광활하여 공익제보자들의 고통 역시 여전합니다. 공익제보자 33인의 인터뷰를 토대로 집필된 책 <내부고발자, 그 의로운 도전>은 공익제보자들과 잠재적 공익제보자들에게 ‘조직은 공익제보자에게 보복하고자 하고 궁극에는 제거를 원하므로, 결국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계획을 차분히 세우라’는 슬프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합니다. 당사자의 실망도 실망이지만, 징계 등 각종 보복, 기수열외와 같은 조직과 동료들의 냉대는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버겁거든요.

동기의 순수성, 제보자의 완벽함, 완벽함의 계속성 등 공익제보자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사항이 얼마나 많은지,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옥석을 가려야 하겠지만, 가리는 과정에서 옥이 깨어질까 두렵습니다. 그 옥은 해당 공익제보자 개인이기도 하지만, 잠재적 공익제보자이고, 우리 사회이기도 합니다.

동기가 다소 순수하지 않더라도, 제보자가 결함이 좀 있더라도, 공익제보의 가치와 결과에 흔쾌히 감사하면 안될까요. 우리 사회는 그런 성숙함을 이제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결함이 있더라도 빛나는 순간이 있을 수 있고, 찰나의 빛남으로 어둠을 잠시나마 내몰았다면, 함께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빛남의 순간이 있는 사람이 그조차 없는 이보다 낫지요.

2012년 9월, 고 박형규 목사님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과거사 반성을 하였다가 많이 고단했었습니다. 상급자에게 “모든 검찰선배들을 권력의 주구로 몰았다” 등의 질책을 듣고 여기저기 불려 다녔으니까요. 그해 10월7일, 내부망에 고정희님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란 시를 올렸습니다. 상처받고 웅크리고 있다가 이제 털고 일어서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싶었거든요. 아파하고 있을 공익제보자분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저처럼 위로받기를 소망하며 그 시를 띄웁니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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