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3인, 그들은 어떻게 학교에서 ‘유령’이 됐나

2020.02.13 06:00 입력 2020.02.13 10:57 수정

트랜스젠더는 청소년기부터 성 정체성을 이유로 소외, 폭력 등을 겪지만 학교는 이들을 방치한다. |김정근 선임기자

트랜스젠더는 청소년기부터 성 정체성을 이유로 소외, 폭력 등을 겪지만 학교는 이들을 방치한다. |김정근 선임기자

“15살 때 커밍아웃 , 괴롭힘에 중·고교 자퇴만 두 번”

“친구들은 아우팅, 선생님은 상담 윤리 어기고 알려”

“공포·불안 트라우마에…성 정체성 숨기고 살게 돼”

호랑(18·가명)은 학교를 두 번 자퇴했다. 15살 때 게이라고 커밍아웃하자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화장실을 갈 때면 친구들은 “게이 ×× 왔다”고 욕하거나 희롱했다. 괴롭힘이 이어지자 학교를 그만뒀다. 성 정체성을 계속 고민하다가 17살 때 트랜스 여성으로 다시 커밍아웃했다.

중졸 검정고시를 보고 들어간 고등학교는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군 고등학교 중 유일하게 교칙에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소수자 학생의 학교 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한다”고 규정한 곳이었다. 입학 첫날부터 ‘틀렸다’고 느꼈다. 남자 집단과 여자 집단 어느 곳에도 낄 수 없었다. 매 순간 겉돌았다.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던 호랑에게 남자인 친구들은 “왜 저러고 다니냐” “남자야? 여자야?”라며 비웃거나 물리적인 위협을 가했다. 여자인 친구들은 동성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고 2020학년도 숙명여대 법학대학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지난 7일 등록을 포기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대학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 학교 안팎의 반대와 혐오 때문이었다. 트랜스젠더는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교육받을 권리’마저 침해받는다.

교육권은 수업할 자유만을 뜻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회화 기관인 학교는 한 집단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생활할 권리, 각종 폭력과 혐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울 권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권리를 포괄해야 한다.

경향신문은 대학 입학을 앞둔 호랑, 여자대학을 졸업한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 이안(23·가명), 대학원생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장연(29·가명)을 만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청소년기부터 성 정체성을 이유로 소외, 따돌림 등을 겪었다.

이안은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성별에 대한 괴리감을 느꼈다. 중학생 때 친구들에게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고 털어놓은 이후 친구들은 이안이 지나갈 때면 “여자도 아닌데 왜 치마를 입냐”고 하거나 아우팅(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본인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했다. 남성, 여성으로 나눠 조별 활동을 할 때도 어디로 들어갈지 몰라 활동을 포기한 적도 있다.

장연은 초등학생 때부터 어느 성별 집단에도 끼지 못했다. 법적으로 동성인 남성 집단과는 스스로 견디지 못해 어울리지 않았다. 여성 집단은 장연을 동성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법적 남성인 장연에게 바지로 된 교복을 강요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고등학생 때는 대화할 친구가 없어 고립감을 심하게 느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1년 넘게 자퇴를 고려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가 지난해 12월 페미니즘 연구지 ‘여/성이론’에 실은 보고서를 보면, 트랜스젠더는 청소년기부터 소외를 겪는다. 지정된 성별과 달리 여성적 또는 남성적이라는 이유로 심한 따돌림과 공격을 받는다. 화장실 등 성별 이분법으로 설계된 시설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많다. 호랑은 남성·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어 장애인 화장실을 썼다. 쉬는 시간 화장실을 갈 때마다 이상한 눈초리를 받는 탓에 수업 시간 몰래 빠져나와 화장실을 가곤 했다.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손길을 건네는 어른은 교육기관에 없다. 이안은 고등학교 상담교사에게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돌아온 답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였다. 이 교사는 상담 윤리를 어기고 동료 교사들에게 이안의 성 정체성을 알렸다. 이안은 과목별 교사들에게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냐” “남자가 되고 싶은 거냐” 같은 ‘심문’을 당해야 했다.

많은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고립감을 견디다 못해 자퇴한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2014년 발간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는 전체 LGBTI 커뮤니티 구성원에 비해 학력이 낮다. 고졸 이하는 32.5%(전체 14%), 대졸은 25%(전체 32.7%), 대학원 재학 이상은 7.1%(전체 12.9%)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중·고교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대학 진학 이후에도 성 정체성을 숨긴다. 이안은 논바이너리지만 성적 등을 고려해 여대에 진학했다. 학과 동기와 교수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았다.

“이전의 경험 때문에 많이 소극적으로 변했어요. 숙명여대에 입학하려던 ㄱ씨처럼 저도 성 정체성을 말했으면 끝내 대학을 자퇴하지 않았을까요.”

장연은 “트랜스젠더에겐 평생 ‘경계선’이 그어진다”고 했다. 그는 이공계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실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는다. 대학원에서는 연구실 사람들끼리 친목 활동을 하면서 연구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남성 집단에서 소외된 장연은 자연스레 연구 활동에서도 배제된다.

호랑은 트랜스젠더는 학교를 나와서도 안전하게 교육받을 공간이 없다고 했다.

“트랜스젠더 친구들은 뭔가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려요. 학교나 학원 같은 교육 공간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퇴출된 사람들이 진로 등을 정상적으로 고민할 수 있을까요.”

호랑과 이안, 장연은 교육기관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고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학생을 지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젠더에 관해 가르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자신의 소수자성이 가십으로 소비되는 환경에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죠. 공포와 불안함 속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생각해요.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저희를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