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통계에도 없는 존재’로 산다는 것

2020.02.22 06:00
장은교 기자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의 삶

박한희 변호사는 “어떤 누구의 삶도 한마디로 요약될 수 없듯이 트랜스젠더들의 삶도 ‘트랜스젠더’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우리 모두가 각자의 고민과 꿈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인터뷰에서 웃고 수다 떨고 고민하며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평범한 박한희’의 다양한 표정을 다중 노출 기법을 활용해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박한희 변호사는 “어떤 누구의 삶도 한마디로 요약될 수 없듯이 트랜스젠더들의 삶도 ‘트랜스젠더’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우리 모두가 각자의 고민과 꿈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인터뷰에서 웃고 수다 떨고 고민하며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평범한 박한희’의 다양한 표정을 다중 노출 기법을 활용해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한국엔 몇명의 트랜스젠더가 살고 있을까. 모른다. 국가단위의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통계를 기초로 만들어진다. 통계가 없다는 건 법도 제도도 없다는 뜻이다. 법과 제도를 만들 생각이 아마도 없다는 뜻이다.

한국엔 트랜스젠더가 없을까. 그럴 리가. 2017년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선 “인구 10만명당 트랜스젠더 수가 390명”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를 한국에 적용하면, 2020년 1월 기준으로 ‘인구 5178만579명 중 트랜스젠더는 20만1944명’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추산대로라면 20만명이 넘는 사람이 ‘통계 밖의 삶’을 살고 있다.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내가 남인 척 살거나, 없는 존재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내가 나일 수 없는 삶이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쉽지 않다. 안전하기도 어렵다.

트랜스젠더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한국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는 2001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카피로 잘 알려진 화장품 광고로 데뷔한 하리수씨다. 박한희씨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7년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가 됐다. 2020년 1월에는 육군에 복무 중이던 변희수 하사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밝혔다가 강제 전역당했다. 2월엔 성전환 수술을 마친 ㄱ씨가 숙명여대에 합격했으나, 트랜스젠더와 ㄱ씨의 존재를 조롱하고 거부하는 일부의 의견에 위협을 느껴 입학을 포기했다.

트랜스젠더는 ‘없는 것, 잘못된 것, 없어야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어느 날 갑자기 돌출한 것이겠지만, 수십년 동안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통해 트랜스젠더를 없는 셈 치는 사회에 틈을 내왔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트랜스젠더의 삶도 ‘트랜스젠더 아무개씨’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트랜스젠더들에겐 성별정체성 외에도 매일 부딪히는 일상이 있다. 2020년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난 14일 박한희 변호사를 만나 숫자와 서류가 채 담지 못한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 변호사는 “세상엔 더 많은 목소리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에게 끊임없이 성정체성만 강요하는 사회…‘불편’이 일상이죠”

박한희 변호사는 “트랜스젠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회제도와 구조는 막연히 성별이 두 가지만 존재할 거란 편견에 따라 설계돼 있다”며 “이분법이지 않은 존재들은 지금도 무수한 차별과 혐오, 억압을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박한희 변호사는 “트랜스젠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회제도와 구조는 막연히 성별이 두 가지만 존재할 거란 편견에 따라 설계돼 있다”며 “이분법이지 않은 존재들은 지금도 무수한 차별과 혐오, 억압을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박한희 변호사는 1남 1녀 중 막내다. 어릴 적 꿈은 로봇과학자였다. 포항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전문직이 되고 싶어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2017년부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일하고 있다.

한 모범생의 변호사 성공기처럼 보이는 그의 삶은 ‘성별’이라는 필터를 끼우는 순간 달리 보인다. 박 변호사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남성의 외형을 갖고 태어났지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여성이라 느껴왔다. 로봇을 만드는 게 좋았고 박사과정까지 공부하고 싶었지만, 성별정체성을 감춘 채 남성들이 많은 학교와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활발하지 않은 지방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건설회사에서 맡은 일도 적성에 맞는 편이었지만, 사기업을 다니다 커밍아웃(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하거나 아우팅(성별정체성이 타의에 의해 노출되는 것) 당할 경우 안전이 걱정됐다. 개업이라도 할 수 있을 전문직을 고민했고, 변호사가 됐다. 로스쿨 1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이던 2014년, 그는 트랜지션(출생 시 지정된 성별을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춰 변화시키는 것·박씨는 로스쿨 1학년부터 머리를 길렀고, 여성으로 살기로 결정한 뒤 호르몬 요법을 받기 시작했다)을 하고 학교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했다.

지난 1월29일 트랜스젠더 여성 ㄱ씨가 숙명여대 법학부에 합격한 사실을 알리며 박 변호사를 ‘롤모델’이라고 밝힌 뒤, 박 변호사의 이름은 한동안 실시간검색어 1위에 올랐다. 2020년을 여는 좋은 소식이 될 뻔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ㄱ씨가 9일 만에 입학을 포기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묵직한 숙제를 떠안긴 안타까운 이야기가 됐다. 박 변호사는 많은 말을 머금었다가 풀어놓았다.

- 결국 ㄱ씨가 입학을 포기했습니다.

“반발이나 진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지난) 6일에 만났는데, 등록 포기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뭐라고 해줬나요)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아주 단단한 친구예요. 이제 재수 시작해야 하는데, 잘할 거라고 봐요.”

- 소위 ‘래디컬 페미니즘’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ㄱ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입장을 냈습니다. 안전을 근거로 들었는데요.

“근본적인 불안감은 이해해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죠. ‘미투’를 해도 피해자가 더 공격당하거나 무죄가 나오기도 했고요.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국가나 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공고해졌어요. 국가와 사회가 뭘 하도록 요구해야죠.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내가 보기 싫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을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하면 해결될 수가 없는 거죠.”

- 반대한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내세우면서 페미니즘까지 공격받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성별을 매개로 종속시키고 차별적 구조를 만드는 것을 부수기 위한 것이었잖아요. ‘여성은 차별하면 안되지만, 트랜스젠더는 차별하고 배제해도 돼’라고 나오는 건 페미니즘이 원래 추구하는 것과 다른 거죠. 그냥 혐오가해자가 되는 거잖아요. ㄱ씨가 단지 합격했다는 소식 하나에 이렇게까지 하는 건 혐오선동과 차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 깔려 있는 정서는 ‘트랜스젠더는 안된다. 트랜스젠더는 없다. 그냥 착각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떻게 비둘기가 인간이 되겠냐고 한 것처럼요. 그들 중 아무도 ㄱ씨를 본 사람이 없어요. 그 사람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왔는지 모르잖아요. 성별정체성이라는 것 너머에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수준의 반응이었다고 봐요.”

- 일반적으로 성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낮은 것 같습니다.

“동성애자와 비교하면 트랜스젠더는 아무래도 외관에서 정체성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트랜스젠더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표출할 수밖에 없어요. 출생 시 지정성별과 자신의 성별정체성, 살아가야 할 성별이 불일치하니까요. 동성애자는 본인이 말을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서 모를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들은 쉽게 타깃이 될 수 있죠.”

성별정체성(자신의 성별을 무엇이라고 느끼는가)과 성적지향(성적 또는 정서적으로 어떤 상대에게 끌리는가)을 교육이나 외부충격,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오랜 연구로 증명됐다.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여기던 진단명은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출판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3)에서 삭제됐고, 1990년 세계보건기구가 발간한 국제질병사인분류(ICD-10)에서도 수정됐다. 트랜스젠더 관련 진단명도 바뀌고 있다.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성주체성장애’를 ‘성별위화감’으로 수정했고, 2018년 세계보건기구가 발간한 국제질병분류(ICD-11)에서는 ‘성별불일치’로 수정됐다.

휴대전화 가입·은행·집 계약…
어딜 가든 주민등록증 요구에
아예 상황을 피하는 사람들 많아

‘외모로 판단’ 누가 신고할까봐
공중화장실도 못 가고 참기 일쑤
학생들은 물 섭취 줄여 방광염도

취업 때 트랜스젠더 밝혔더니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불렀다”
상당수 안정적 직업 찾지 못해

[커버스토리]한국서 ‘통계에도 없는 존재’로 산다는 것

트랜스젠더에는 스스로를 남성과 여성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보는 논바이너리도 포함된다. 생물학적으로도 성별이분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간성(인터섹스)이 있다. 이들은 남녀 성기를 모두 갖고 있거나, 외부성기와 염색체가 일치하지 않는다. 유엔은 2000년 조사를 통해 “전체 인구의 1.7%가 인터섹스로 추정되며, 붉은 머리카락(전 세계 인구 중 1~2%)만큼 특이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캐나다, 네팔, 인도, 뉴질랜드, 호주,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제3의 성별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남녀 두 성만 인정하며 모든 통계와 정책 수립도 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아이가 태어나면 의사가 작성하는 출생증명서에는 ‘남, 여, 불상(남과 여로 구분할 수 없는 존재)’의 선택란이 있지만, 출생신고서에는 ‘남, 여’ 두 칸만 있다. 트랜스젠더는 사회적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사는 건 어떻습니까.

“일단 한국은 주민등록번호가 모든 제도의 기본인데 그중 7번째 자리가 성별이죠. 주민등록증을 제시할 때가 굉장히 많잖아요. 편의점에서 술이나 담배를 살 때도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인터넷 거래 할 때, 휴대전화 가입할 때, 은행에 갔을 때, 투표할 때, 집 계약할 때 … 이런 데까지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요. 주민등록증 성별과 외양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런 상황을 피하게 되는 거죠. 가능한 한 처리를 안하거나, 다른 사람 명의로 하죠. 본인은 점점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거죠.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트랜스젠더 9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6.7%가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외국에선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의료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주는데, 한국은 모두 개인부담이에요. 그러니까, 호르몬 요법을 받고 성전환수술을 해야 법적성별을 바꿀 수 있게 하면서도 그 모든 걸 다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거죠.”

<b>트랜스젠더 “총선 출마”</b> 트랜스젠더 김기홍씨가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색당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도전한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트랜스젠더 “총선 출마” 트랜스젠더 김기홍씨가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색당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도전한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 일상에서는 어떤 불편을 겪고 있습니까.

“밖에 나오면 공중화장실을 못 가요. 남자화장실을 가도 여자화장실을 가도 이상하게 쳐다보고 불안감을 느끼니까요. 외모는 여성인데 법적성별은 남성이니까, 혹시라도 누군가 문제제기를 해서 경찰에 체포되면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잖아요. 대부분 화장실을 잘 안 가고 참아요. 트랜스젠더들 보면 학교 다닐 때부터 가급적 물을 안 마시는 게 습관이 됐다고들 해요. 방광염 등 건강 문제도 생기죠.”

- 고용상의 어려움도 크죠.

“취업하려면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는데, 자기가 원하는 성별정체성에 따라 취업하기가 어렵죠. 주민등록번호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직업들은 4대보험이 안되거나 비정규직, 근무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선 법적 성별정정 자체가 외과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다 마칠 것을 요구해요. 약 1000만~2000만원이 드는데,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돈을 못 벌어요. 수술을 못해요. 그럼 성별정정을 못해요. 계속 악순환이 되는 거죠. 유흥업이나 일용직에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놓이죠. 어떤 트랜스젠더분이 IT회사에 지원하면서,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밝혔어요.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와서 갔더니 면접관이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보러 오라고 한 거다’라고 했대요. 결과는 불합격이었어요. 모욕적이죠. 그런 경험을 한번이라도 하면, 다시는 자신을 밝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죠. 변희수 하사의 경우도 핵심은 ‘강제 해고’예요. 재판까지 갈 게 아니라, 군이 바로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잖아요. 우리에게 트랜스젠더 군인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군인이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게 될 것인가 고민하고 환경을 만들어나가면 될 일인데 안하는 거죠. 10대 트랜스젠더나 그들의 부모들을 만나면 가장 큰 고민이 그거예요. 생존할 수 있을까. 스무 살, 서른 살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예요. 성별정체성, 자아정체성이라는 게 한순간에 생기는 게 아니에요. 자라면서 내내 난 왜 이럴까 고민을 많이 하죠. 아직은 여성은 이래야 하고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이분법에서도 벗어나지 못하죠. 트랜스젠더들한테 사람들이 계속 정체성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많이 해요. 여자라면서 왜 바지 입고 다니냐, 남자라면서 왜 스포츠 안 좋아하느냐, 남자라면서 왜 드라마 보면서 우느냐. 너 사실 남자인데 여자인 척하는 거 아니냐. 병원에서 의료트랜지션을 받으려면 정신과 검사를 하는데요. 그 질문들도 답이 뻔히 보여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냐, 추리 소설을 좋아하냐처럼. 실제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아니까 그냥 맞춰서 답하는 거죠.”

◆“수술 안 해도 트랜스젠더…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죠”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가 불투명한 가림막 너머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가 불투명한 가림막 너머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요.

“아무리 형식적으로라도 어릴 때부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이라는 것이 딱 나뉘는 것도 아니고, 성에 따라 고정된 역할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학교에서 가르칠 필요가 있죠. 그런데 교육부가 2015년 발표한 성교육표준안을 보면 교사가 교실에서 ‘성소수자를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와 있어요. 소수자인데 존재를 아예 지워버리는 거죠.”

- 결국 국가가 의지를 갖고 정책을 마련해 나가야 하는 문제군요.

“그래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필요해요. 학생부터 사회인까지 최소한의 인권감수성을 가질 수 있도록요.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실태조사도 하고 성소수자 인권 교육도 해야죠. 최소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쫓겨나거나 안전에 위협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죠. 법이 생긴다고 사람들의 인식이 갑자기 바뀌진 않겠지만, 제도를 통해서 최소한의 보호 장치는 마련한다면 조금씩 인식도 바뀔 수 있겠죠. 대법원에서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예규를 만든 것이 2006년인데, 그동안 몇 명이 성별정정을 했는지 통계조차 없어요. 아예 정책에서 고려되는 인구집단이 아닌 거죠. 법이 아니라 지침뿐이라서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별정정 결과가 달라져요. 어떤 판사는 법정에서 트랜스젠더에게 ‘성관계는 해봤냐’ ‘느낌이 어땠냐’고 묻기도 해요. 성희롱이지만 불이익을 받을까 당사자는 대응하기도 어렵죠. 많은 나라에서 외과수술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느끼는 정체성에 따라 성별정정을 할 수 있어요. 일본의 경우 외과수술을 요구하긴 하지만, 거긴 법이 마련돼 있어서 절차대로 서류만 갖추면 하루 만에 성별정정이 돼요. 한국은 그게 아니니까, 성소수자커뮤니티에 ‘법관인사표’가 돌아요. ‘잘해주는’ 판사가 다른 지방으로 가면 등록기준지를 바꿔서라도 가는 거죠.”

교실서 성소수자 언급하지 않는 건 존재를 아예 지우는 것
인식 개선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보호장치 마련해야
타인과 선 긋고 사는 것 힘들어 고민 끝에 트랜지션 결심
소수자 낯설어도 함께 살아가려면 더 많은 목소리 나와야

- 박 변호사도 트랜지션과 커밍아웃하기까지 오래 고민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살려고 했죠. 중학교 2학년 때 몸이 뭔가 달라지고 이상한데 이게 뭔지는 설명을 못하겠더라고요. 외국사이트에 올라온 성소수자용어사전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그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지만…내가 소수자이고 남들과 같이 지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도 인정하기 어려웠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리수씨가 나왔는데, (남고의) 같은 반 친구들이 하리수씨에 대해 하는 여러 가지 혐오발언이 다 저한테 하는 얘기 같았어요. 내가 밝히는 순간, 저 말들이 다 나를 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절대 말하지 말고 이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트랜스젠더 여성 중에 일부러 해병대, 특전사 가는 분들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바꿔보고 싶은 거죠.”

- 트랜지션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자꾸 사람들에게 선을 긋고 살게 되는 게 힘들었어요. 회사·로스쿨 동기들이 정말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자꾸 가면을 쓰고 만나는 것에 많이 지치더라고요. 1학년 마치고 한 학기 휴학하면서 결심하고 제일 친한 동기들한테 얘기했어요. 인권법학회 개강총회에 나가서 ‘나는 이제 여성으로 살겠다’고 얘기했어요. 복학 전에 교수님과 상담했는데,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라’ 하시더라고요. 친구들도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는 반응이었고 이전과 똑같이 대해줬어요. 고마웠죠. 어떤 반응이 나올지 겁났거든요. 군대는 다녀왔고, 트랜지션 후에 재검 받아서 예비군은 면제받았어요. 민방위는 나가고 있습니다.”

- 가족에겐 언제 얘기했나요.

“2014년에 희망을만드는법을 알게 되고, 내 정체성을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변호사로 일할 수 있겠다는 걸 확인한 뒤에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자식이 안전하게 살 거라는 걸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며칠을 같이 울었죠. 그해 겨울에 오빠가 결혼을 했는데, 부모님께서 ‘결혼식에만 머리 자르고 양복 입고 오면 안되냐’고 하셔서 알겠다고 하고는 결국 안 갔어요. 다시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고요. 하나뿐인 동생인데 결혼식 사진에 저만 없어요. 그게 제일 미안하죠. 가족들은 지금은 다 이해해줘요.”

- 호르몬 요법은 하지만, 외과수술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주민등록번호 7번째 자리도 여전히 1번이죠. 이유가 있나요.

“트랜스젠더들이 성기수술을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건강 때문이기도 해요. 성전환 수술이라는 게 전신마취를 하고 7시간 동안 수술 받은 이후에도 계속 치료받아야 해요. 지병이 있거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경우 버틸 수가 없고 죽을 수도 있어요. 부모가 ‘다 인정할 테니 제발 몸에 칼만 대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2017년 김승섭 교수 등이 참여한 ‘레인보우 커넥션팀’이 진행한 연구를 보면, 트랜스젠더 중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응답자(156명·중복응답 가능)의 78.2%가 ‘비용이 부담돼서’라고 답했다. 36.5%는 ‘구직·직장생활 등 경제활동에 어려움이 생길 것 같아서’, 25%는 ‘가족·지인의 반대로’, 23.1%는 ‘수술과정이 위험해서’라고 답했다.)

저는 우선 지금 이 상태로 일하면서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요. 좀 특이한 케이스죠.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알려져 있고 성소수자 관련 활동과 사건을 담당하니까요. 굳이 당장 외과수술을 해서 성별정정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요.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인 거예요. 성기수술을 하지 않아도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계속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몸보다는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박 변호사는 보통의 여성들처럼 입고 싶을 때 치마를 입는다. 여성으로서 새로운 차별을 경험할 때도 있다. 길을 걷다가 뒤에서 오던 남성들이 키 큰 여성에 대해 수군대기도 하고, 다가와서 키를 비교해보고 가는 일도 있었다. 외모와 옷차림이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명확히 구분된다고 믿는 이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로부터 ‘남자인지, 여자인지’ 질문을 받는다. 관공서 등에 신분증을 내야 할 때는 어김없이 표시되는 법적 성별 앞에서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트랜지션을 후회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이자 여성으로 겪는 차별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그런 차별을 만드는 이성애주의, 가부장제, 성별이분법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 변 하사 강제전역과 ㄱ씨 입학 포기로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존재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더 많은 당사자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봐요. 트랜스젠더가 인터넷 가상공간이나 소설, 영화, 드라마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군인 중에,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는 학생 중에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잖아요. 낯설어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더 많은 소수자들이 나오려면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돼야 하고요. 자신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회여선 안되잖아요.”

◆법적 성별 바꿀 수 있게 됐지만…권리 인정 발목 잡는 성전환수술 ‘지침’

트랜스젠더 인권에 영향을 미친 사건과 판결

한국의 트랜스젠더 인권은 느린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2006년 대법원이 성별정체성에 따라 법적 성별을 정정할 수 있도록 예규를 만들면서 트랜스젠더들이 주민등록증의 성별을 고칠 수 있게 됐지만, 성기수술을 강제하고 있는 대법원의 지침이 오히려 트랜스젠더들의 법적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트랜스젠더 인권에 영향을 미친 사건과 판결들을 정리해봤다.

■ 1996년 ‘트랜스젠더 여성 강간’ 무죄 → 2009년 유죄

남성이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강간한 사건에서 1996년 대법원은 강간혐의에 무죄를 판결했다. 대법원은 “성염색체가 남성이고 여성으로서 생식능력이 없는 만큼 트랜스젠더는 형법상 부녀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2009년에야 뒤집혔다. 법원은 “생물학적 측면의 성은 출생 시 곧바로 확인될 수 있지만 정신적·사회적 측면의 성이 생물학적 성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출생 당시에는 쉽게 알 수 없다. 성장하면서 개인이 인식하는 성귀속감과 수행하는 성역할이 생물학적 성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확인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 2006년 대법원 “트랜스젠더 법적 성별 정정 가능” → 2013년 서부지법 “성기수술 없이 성별정정 가능”

대법원은 2006년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고, 성별정정신청에 대한 지침(가족관계등록예규)을 만들었다. 이 지침은 ‘성전환수술(외부성기수술)을 받을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대법원이 만든 6가지 지침은 국가인권위 권고 등에 따라 수정돼왔으나, 외부성기수술 조건은 수정되지 않고 있다.

2011년 유엔인권이사회가 채택한 보고서에는 성별정정의 조건으로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수술을 요구하는 것(성기수술을 할 경우 생식능력을 잃게 된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유엔고문특별조사위원은 이에 대해 ‘고문’이라고 표현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성별정정의 조건으로 ‘Self-Identification(내가 나의 성별정체성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을 두고 있다. 수술 여부는 포함되지 않는다. 일본은 성기수술을 요구하지만 지침이 아니라 법으로 정해져있어 절차가 한국에 비해 간소하다.

한국은 ‘지침’으로만 있어서, 법원과 판사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2013년 서울서부지법에서 성기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의 성별정정허가신청을 인정하는 결정이 나왔다.

■ 2019년 “성별정정에 부모 동의 필요 없다”

2019년 7월 인천가정법원에서 “성별정정을 할 때 꼭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은 그해 8월 가족관계등록 예규 중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 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개정해 성별정정신청서에 첨부해야 하는 필수서류 목록에서 부모 동의서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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