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보자, 코로나 기본소득제

2020.03.02 20:44 입력 2020.03.02 20:45 수정

회사 1층 로비에 열감지 카메라가 설치됐다. 재택근무나 가족돌봄휴가를 택한 직원들이 적지 않다. 출근한 이들도 상당수가 마스크를 쓴 채 일한다. 나는 수시로 손을 씻고, 알코올솜으로 휴대전화와 컴퓨터 키보드를 닦는다. 호흡기가 약한 어머니에겐 자주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답답해도 외출하지 마시라’는 내용이다.

[김민아 칼럼]한번 해보자, 코로나 기본소득제

코로나19 사태로 내 일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생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월급은 지난달 25일 나왔고, 이달 25일에도 나올 것이다. 정규직 임금노동자의 ‘특권’을 일깨워준 이는 한 사회학자다. “한국에는 2주 공백만으로도 ‘흔들’거릴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사람’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은 오십보백보가 아니다. 오십보만보다. 임금노동자가 아니라서 두렵다. 임금노동자라도 비정규직이어서 두렵다. 누구나 하루, 한 달, 일 년을 걱정하지만 그 빈도와 강도는 천차만별이다.”(오찬호씨 페이스북)

이재웅 쏘카 대표의 ‘재난기본소득’ 제안에 눈이 간 건 그래서다. 이 대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코로나 경제위기에 ‘재난국민소득’을 50만원씩 어려운 국민들에게 지급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현 상황을 “일자리의 위기, 소득의 위기, 생존의 위기”로 진단하고 “경계에 서 있는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1000만명에게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집세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난기본소득을 50만원씩 1000만명에 주면 5조, 2000만명에 주면 10조원이다. 20조원의 추경(추가경정예산)을 준비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10조원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기본소득이란 자산이나 소득, 노동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 모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별도의 지급 심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행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 대표가 제기한 재난기본소득은 이런 개념을 단기적으로 차용하자는 취지다. 이 대표가 유명인사인 데다 직접 국민청원을 내 주목받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른 정당·인사들도 비슷한 주장을 해왔다.

신생정당인 기본소득당은 “약 15조의 추경으로 온 국민에게 10일간의 휴식과 30만원의 일시적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신생정당 시대전환도 자영업자·프리랜서·가사노동자 등 비임금노동자 650만명과 비정규직 임금노동자 750만명 등 1400만명에게 월 30만원, 2개월치를 주는 ‘긴급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씨는 “전 국민에게 보름치 긴급생활비 50만원 지급”을, 민간 정책연구소 LAB2050의 윤형중 정책팀장은 “전 국민에게 30만원씩 지급”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해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며칠 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코로나19 대책은 언젠가 본 듯한 대책의 나열이었다. 담대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은 없었다. 임대료를 내리는 건물주에게 인하분 절반만큼 소득·법인세를 공제하는 ‘착한 임대인 지원책’은 고소득 임대인일수록 감면되는 세금이 늘어나는 ‘역진형’이다. 자동차를 사면 개별소비세를 깎아주고,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올려주고, 휴가·문화·관광 쿠폰을 지급하겠다는 소비진작 대책 역시 당장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대한감염학회 등 방역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며 ‘집에 머물라’고 권한다. 그들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러 나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터다. 문제는 생계다. 재택근무를 하거나 가족돌봄휴가를 활용할 수 있는 노동자는 소수다.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잠시 멈춰설’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2주간 일하지 않고도 밥 먹고 월세 내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역 대책이자 공동체의 신뢰를 단단하게 하는 길이다.

명칭이 기본소득이냐 국민소득이냐 비상생계비냐, 대상이 온 국민이냐 2000만명이냐 1400만명이냐, 액수가 50만원이냐 30만원이냐는 부차적 문제다. 지금은 “통상적이지 않은 비상 상황”(문 대통령)이다. 초유의 위기는 초유의 결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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