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들춘 ‘디지털 가난’

2020.03.03 14:42 입력 2020.03.03 23:30 수정

지난달 29일. 허난성 덩저우의 14세 소녀가 자살하려고 엄마의 약을 삼켰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소녀의 어머니가 매일 먹는 약이다.

소녀가 죽으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인터넷 수업’ 때문이다.

[특파원칼럼]코로나가 들춘 ‘디지털 가난’

소녀의 아버지는 왼쪽 다리에 장애가 있다. 농사 대신 구두 수선으로 생계를 꾸린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이 있어 직업이 없다. 소녀에게는 고등학교 1학년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 남동생이 있다.

전에도 가난했지만 가난이 도드라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가난의 민낯을 강제로 공개해버렸다.

코로나19는 개학을 인터넷 수업으로 대체시켰다. 스마트폰 한 대로 세 남매가 수업을 듣다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빼먹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왜 수업을 안 듣냐고 묻는데 대답하기 싫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엄마의 약을 삼켰다.

가족들이 약을 먹고 쓰러진 소녀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다. 소녀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웃들이 1만위안(약 170만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이제야 소녀는 제때 인터넷 수업에 출석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소녀가 숨기고 싶어 했던, 수업을 듣지 못한 이유는 모두가 알게 됐다.

인터넷 수업은 학사 일정의 차질을 줄이고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도시의 대다수 학생들은 인터넷 수업의 편의를 누리고 있지만, 일부 농촌과 빈곤 가정에서는 오프라인 수업보다 더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간 숨겨왔던 ‘디지털 가난’이 강제 폭로돼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장쑤성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은 명절을 쇠러 후베이 징먼 고향집에 왔다가 발이 묶였다. 산골 고향집은 와이파이 신호가 좋지 않다. 20일간 책상과 휴대용 스탠드를 메고 산 정상에 올랐다. 지역 간부들의 도움으로 고향집 마당에 6m 대나무 장대로 와이파이 증폭기를 설치한 후에야 ‘인터넷 등산’이 끝났다. 이 학생의 사연은 지방 정부의 성과로 포장돼 현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중국 서부의 한 현(縣) 간부는 펑파이신문 인터뷰에서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 때문에 온라인 수업에 참여할 수 없는 학생이 우리 현에서만 2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8억5450만명에 달한다. 중국인 10명 가운데 6명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셈이다. 반대로 보면, 10명 중 4명은 인터넷을 쓰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통계 속에 가려졌던 중국의 디지털 격차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디지털화 시대에 인터넷은 중요한 인프라다. 인터넷을 아는 것은 글자를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지, 인터넷 접속은 되는지, 또 인터넷을 잘 다룰 수 있는지에 따라 삶의 기회와 질이 달라질 수 있다. 미래 세대인 학생들이 정보 격차에 시달리지 않도록 정책 추진도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 특히 빈곤 가정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 또 그 배려는 학생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해야 할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