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비상

확진자가 남긴, 잠시도 못 멈춘 고된 삶의 동선

2020.03.13 06:00 입력 2020.03.13 07:36 수정

‘장거리’ 녹즙 배달원 40대…‘투잡’ 배송·서빙 20대…‘14시간 근무’ IT회사 30대

[‘코로나19’ 확산 비상]확진자가 남긴, 잠시도 못 멈춘 고된 삶의 동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잠시 멈춤’이 강조되고 있지만,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감염병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투잡’을 뛰면서 생계를 이어갔고, 누군가는 밤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반복했다. 그에 따라 이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종종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12일 각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한 확진자 이동경로를 보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감염병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전날 서울 여의도 증권가는 긴급 방역을 실시했다. 증권사 사무실 녹즙 배달원이 코로나19 확진자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배달원은 집단감염이 발생한 구로구 콜센터 직원이었다. 그는 매일 오전 5시30분쯤 여의도로 출근해 증권가 사무실마다 녹즙을 배달하고, 오전 7시50분쯤 다시 구로구의 콜센터로 두번째 출근을 했다. 보통 출근 시에는 저렴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사내 휴게실에서 점심을 해결했으며, 걸어서 퇴근했다.

경북 구미의 20대 남성 확진자 역시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투잡을 뛰었다. 오전 11시부터는 슈퍼마켓에서 배송 업무를 했고, 오후 5시부터는 음식점에 출근했다. 다음날 새벽 3시까지 그는 요리와 서빙을 담당했다. 이들에게 ‘잠시 멈춤’과 ‘사회적 거리 두기’는 먼 얘기일 뿐이었다.

재택근무와 유급휴가는커녕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 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개 감염병 이전부터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았던 업종들이다.

경기도 집에서 서울에 있는 게임회사로 출퇴근하는 30대 여성은 확진 판정 1주일 전까지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오전 10시쯤 회사에 출근해 오후 11시40분쯤 귀가했고, 그 다음날은 오전 9시쯤 출근해 오후 11시52분쯤 집에 도착했다. 감염병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게임회사 특유의 장시간 노동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의 20대 여성 대학원생 역시 대학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보통 오전 9시부터 연구실로 출근해 오후 10시까지 일했다. 증상을 느끼고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은 다음날에도 그는 12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냈고, 토·일요일도 없이 연구실에 나갔다.

공장 노동자들의 동선을 보면 상당수는 증상을 느껴 조퇴하고 병원 진료를 받은 이후에도 다음날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누구도 마음대로 잠시 멈출 수 없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감염병은 사회에서 특히 그늘진 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삶에서 확보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며 “정부의 권고만으로는 부족하고 유급휴직·유급돌봄휴직의 제도화와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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